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4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이태원 참사 상담사 김경애(왼쪽)정신건강전문요원과 김창훈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태원 참사 이후 일선에서 트라우마 상담을 해온 전문의와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상담이나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진상규명이 이들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지난 24일 서울 광진구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만난 김경애(45) 정신건강전문요원은 “보통 재난 이후에는 ‘내가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생기는데,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은 친한 친구는 죽었는데 내가 살겠다고 상담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며 “개인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재난이었는데도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이라고 자기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점이 다른 재난과 달랐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이태원 통합심리지원단 심리상담 월별 통계’를 보면, 지난해 10월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국가·권역 트라우마센터,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집계한 심리상담 건수는 모두 7141건이다. 대상자별 심리상담 건수를 보면 유가족이 1880건, 부상자 및 부상자 가족이 1198건, 대응인력 196건, 목격자 1818건, 일반 국민 2049건으로 집계됐다.
센터 근무자들은 ‘괜찮다’며 유족 등이 상담을 중단하는 경우에도 한달에 한번씩 문자메시지 등으로 연락하며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창훈(41)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상담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분도 이런 연락으로 다시 연결되기도 한다”며 “이분들에게는 참사 1년이 더 힘든 날이 돼, 다시 연락이 와서 상담받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의 주검이 너무 손상돼 안아볼 수조차 없었던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 흘렸던 유족의 사연을 가장 가슴 아팠던 상담으로 기억했다.
상담 치료조차 받지 못한 유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등 재난 관련 트라우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신속 심층 상담지원 관련 내년도 예산(1억2천만원)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과 전문의 및 상담 전문가 등 민간 풀을 꾸려 고위험군에게 곧장 심리지원을 하는 체계를 운영하는 내용인데, 현장에선 예산을 축소해서라도 채널을 운영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참사 생존자들이 여전히 자책하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국가 재난의 트라우마가 개인 책임으로 축소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이런 사회적 재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유족 등이 심리적인 충격에서 회복하는 것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며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들의 회복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사회적 운동이 아니라 ‘납득과 이해’를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 유족 등에 대한 2차 가해 우려로 댓글창을 닫습니다.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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