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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태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정부·경찰·구청 ‘우리가 왜?’

등록 2023-10-26 05:00수정 2023-10-26 13:48

[이태원 참사 1년]
지난해 10월29일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21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의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10월29일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21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의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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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9일 발생해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는 누가, 어떤 잘못을, 실수 또는 고의로 저질러 벌어진 일일까. 1년이 지난 지금도 답은 명확지 않다.

국회는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소추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기각했다. ‘탄핵당할 만큼의 잘못은 하지 않았다’는 논리였다. 감사원은 참사 1년을 코앞에 두고서야 ‘재난·안전관리체계’ 감사를 위한 자료 수집 등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 운영 등 국민적 관심을 끈 사건이라면 즉시 감사에 착수하던 것과 대조된다.

조사하지 않으니 징계받은 이도 없다. 그나마 수사를 맡은 경찰이 지난 1월 ‘범죄에 이르지 않는 직무상 비위가 발견된’ 서울시·용산구청 공무원과 경찰·소방 등 15명을 해당 기관에 통보한 게 전부다. 아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사실상 유일하게 진행 중인 게 형사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이다. 검찰은 지난 1월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의 몇몇 실무자를 기소했다. 아직 1심 재판 중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5일 한겨레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 3월부터 진행된 용산경찰서·용산구청 관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재판 관련 기록을 살펴보니 기소된 이들은 하나같이 ‘참사의 최종 책임자는 윗선’이라며 방어막을 치고 있었다. 용산서 경찰관들은 서울경찰청을, 용산구청장과 직원들은 행정안전부와 서울시를 책임자로 지목하며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삼풍백화점 등 참사에서 실무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된 판례를 들며 용산경찰서·용산구청 실무자들의 형사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다는 것은 예견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고 발생까진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인식 없는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인식 있는 과실’에 이르지 않아도 과실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알았는데도 아무 조처를 안 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므로 고의범으로 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피고인들은 “우리가 (이태원의 인파 관리를) 왜 해야 했느냐”며 맞서고 있다. ‘업무상 과실’ 여부를 따지려면 ‘인파 관리=나의 업무’라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는데, 피고인들은 이 전제부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임재 전 서장 쪽은 “다중 운집 행사 관리에 필수적인 경찰관 기동대는 전적으로 서울경찰청장의 소관”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경찰청장의 업무상 과실이라는 뜻이다.

핼러윈 데이 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두 차례나 ‘거리두기 해제로 인한 인파 운집이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정작 경비기동대 파견을 결정하지 않았으므로 김 청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특히 2020년, 2021년 방역을 위해 경찰관 기동대를 파견한 것도 “용산경찰서의 요청에 의한 게 아니고 서울경찰청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스스로 투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서장 쪽은 참사 당일 “대형 집회 현장에 직접 갈 것을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명령받았고 이에 대응해야 했다”는 의견도 냈다. 당시 용산경찰서는 대통령실 인근 집회 관리로 이태원 일대 인파 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사실상 그러한 기조를 만든 건 서울경찰청장이란 뜻이다.

실제 이 전 서장은 무전상 ‘압사’라는 단어를 듣고도, 실무자가 “특이사항은 없다고 한다”고 보고하자 금세 관심을 거뒀고, 대신 대통령 관저 근처 교통 상황을 챙겼다. 대형 집회가 끝난 뒤에도 이태원 일대를 살피는 대신, 저녁 식사를 하며 “큰 집회를 잘 마무리했다”, “영전하겠다”는 말만 주고받았다. 그간 인파 관리 대책을 마련했던 경비과는 대통령실 이전 이후 집회·시위 관리로 역할이 바뀌었다.

박희영 구청장 쪽 전략도 ‘윗사람에게 미루기’다. ‘용산구 관내 모든 재난에 대한 최상위 재난책임기관의 장인 것을 전제로 한 기소는 부당하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사실상 구청은 행정안전부, 서울시가 정한 인파 관리 지침의 범위를 벗어나 계획을 세울 수 없고, 따라서 당시 용산구청 안전재난과는 지침에 따라 다중 인파보다는 시설물 안전 관리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쪽이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은 왜 공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는가” 하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검찰은 ‘윗선’ 기소에 미온적이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김광호 서울청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불구속 송치했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수개월째 기소 여부를 판단 중이다. 검찰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되는지 지켜본 뒤 ‘윗선’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유족 등에 대한 2차 가해 우려로 댓글창을 닫습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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