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경찰국장이 지난해 2022년 11월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맨 뒷자리에 앉아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귀싸대기, 넘어지면 발길질, 박달나무인가 뭘 하나 갖다 놓고 겁박했습니다.”
대학 운동권 시절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이른바 ‘밀정 의혹’을 받는 김순호 치안정감(전 경찰대학장·전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지난 3월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관 앞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김 치안정감은 당시 군 복무 중 영장 없이 연행돼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분실 또는 예하 보안부대에 구금된 상태에서 학생운동 전력에 대해 반복적인 조사를 받았다. 진술은 또 이어진다.
“‘내 입에서 한 가지 나올 때마다 응징당할 줄 알아라’, ‘군대생활 하다가 병신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죽어서 나가도 모른다’는 등 협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제가 모르는 것까지 다 알고 저를 심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한 사람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 사람 이름을 대면서 때리고, 또 한 사람 이름이 그 조사관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한 대 맞고 다시 쓰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모두 알고 있었어요.”
10월31일 제65차 전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의결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2)’의 심의·의결 보고서를 보면 김순호 치안정감이 처했던 상황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보안대 수사관으로부터 “여기서 죽어서 나가도 모른다”는 협박 속에 운동권 동료의 이름을 대라는 요구를 받았고, 제대로 답하지 않을 때마다 폭행을 당했다. 보고서는 “대상자들이 심사 명목의 조사 과정에서 폭언·협박·구타·고문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 심사실에 구금된 상태에서 야전침대봉이나 각목으로 폭행을 당하고,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순호 치안정감은 당시 성균관대 동아리 ‘심산연구회’ 회장으로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1983년 3월31일 오전 서울 당산동에 있는 누이의 집에서 연행돼, 바로 다음 날인 4월1일 101보충대로 인계되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예비검속에 의해 강제징집된 김순호 치안정감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경찰은 1983년 3월30일을 기해 같은 해 4월 중순경까지 전국 주요 대학의 시위주도 예상자들을 연행하는 일종의 예비검속을 실시하고 모두 강제징집했다. 김순호 치안정감도 징병검사조차 받지 못한 채 불법적으로 군대에 끌려가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후 그는 경찰공무원으로 특채돼 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을 거쳐 지난해 12월 치안감(행안부 경찰국장)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대학장을 지내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과거 경찰 프락치로 활동하면서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 활동정보를 치안본부에 넘기고 대공특채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강제징집 뒤 학내 서클 동향 등을 보고했다는 보안사령부 존안자료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순호 치안정감의 진술내용을 접한 김형보 강제징집 녹화 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녹화공작 피해자들이 다 겪는 절차다. 그가 강제징집 피해자라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라면서 “씁쓸한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경찰 입직 경로가 희한하지 않은가.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 폭행당한 일과 경찰 입직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제 김순호 치안정감은 말해야 한다.”
김 치안정감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 후보자로 오르던 지난해 8월 자신의 운동권 시절 ‘밀정’ 의혹이 제기되자, 오히려 자신이 군사정권 녹화사업(강제징집)의 피해자라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1월 1차로 187명이 신청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공작 사건’ 진실규명을 했고, 이번에 2차로 김순호 치안정감을 비롯한 101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김 치안정감은 지난 26일 경찰청 고위직 인사가 단행되면서 경찰대학장에서 물러난 뒤 현재 휴가 중으로, 올해 말 정년퇴임한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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