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UNHRC)가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구를 세우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조사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겨레가 5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한국의 5차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가 보고서’를 심의한 결과를 담은 최종 의견서를 보니, 위원회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원인 규명을 위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효과적인 구제책이 제공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관 설립 △유책자 사법 처리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적절한 배상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 이어 “정부 관계자들이 추모집회에서 과도한 공권력을 사용하고, 추모집회에 참여하는 인권활동가들을 조사하는 등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력을 방해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한국 정부(법무부)는 “참사 직후부터 경찰의 특별수사본부 수사, 검찰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루어졌다”며 “65개의 재발 방지 대책이 포함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그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한국 정부와 국가 보고서를 심의하면서 나눈 대화를 보면, 위원회는 159명이 핼러윈 축제 중에 목숨을 잃은 참사에 대해 ‘충분히 예견 가능하고 예방 가능했던 사회적 참사’였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위원은 “왜 사건 직후에 응급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인파가 몰린다는 보고가 네 시간 전에 있었음에도 왜 정부가 대응에 실패했는지”를 따져 물으며 “정부는 참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피해자와 유족들을 참여시키는 독립조사기구를 세우기 위한 특별법 마련 등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독립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내용이 담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야당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8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었지만, 여당의 반대 속에 3개월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위원회는 이 밖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 비범죄화, 공공부문에서 여성 대표성 강화, 헌법재판소 판단 이후 낙태권 보장 관련 후속 조처 마련, 높은 자살률을 낮출 근본 대책 마련, 사형선고 폐지 등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또 “건설노조에 대한 여러 차례에 걸친 압수수색, 무거운 과징금, 노조원에 대한 수사, 구속·징역형 등 사법적 괴롭힘과 낙인찍기를 포함한 심각한 탄압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며 한국의 노동권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위원회의 최종 견해가 발표되자마자 위원회의 주요 권고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참여연대는 “정부는 위원회의 권고를 충실히 검토해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은 1990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을 비준한 뒤, 자유권 현황에 대해 위원회의 정기적 심의를 받아왔다. 위원회는 규약 비준 당사국 선거로 선출된 전문위원 18명으로 구성된다. 한국인은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위원(임기 2024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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