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배옥병 대표. 김미영 기자
[인터뷰] 배옥병 학교급식네트워크 대표 ‘아줌마의 힘’
“유효기간이 지난 수입 식자재가 섞인 식사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 자식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방치해야 합니까?”
4일 여의도에서 만난 배옥병(49)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대표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광주광역시 한 여자고등학교의 ‘계란탕 급식’ 이후 학교급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찾는 곳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시 구로구의회가 ‘학교급식지원조례안’을 부결시킨 데 항의하기 위해 7시간에 걸쳐 ‘3보1배’를 했고, 이날은 <한국방송> ‘세상의 중심’ 프로그램에 출연해 학교급식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안 제정’의 중요성을 알렸다. 7시간 ‘3보1배’의 여파로 다리를 절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배씨가 2002년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schoolbob.org)를 만들었을 당시 무관심에 비춰보자면 지금은 ‘행복한 시달림’이다.
“계란탕 급식에서 보듯, 전국 700만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먹거리는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반찬에서 벌레가 나오고, 2500원을 급식비로 내지만 실상 식재료비를 따져보면 700~800원을 넘지 않아요.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성장기 학생들이 소아 당뇨나 아토피, 비만에 노출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어요? 절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 첫째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95년 학교급식운동에 눈떠
평범한 주부였던 배 대표가 이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첫째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95년부터다. 학기 초 학부모회에 참석했는데 엄마들이 한목소리로 학교급식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에 “한 번 알아나 보자”고 제안했던 것이 출발이었다.
“처음엔 학부모들이 개선을 요구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봤는데, 학교장이나 교사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해결되려니 했는데,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모든 학교가 겪는 문제였어요. 결국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급식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이때 그는 ‘시스템’에 눈뜨기 시작했다. “우수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학교급식법을 제정하는 것 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도록 유도해 저질·저가의 수입 식재료가 식단에 오르지 못하도록 해야 했어요. 워낙 다급한 사안이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추진력’이 발동하더군요.” 2002년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한 뒤 다음해 99개 시민단체와 함께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실시라는 3대 핵심사항을 요구하며 급식개선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이때부터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함께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토대를 다졌다. 또 지방자치단체들의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도록 유도해 현재 제주·전남·인천광역시 등이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조례안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북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자체단체와 10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급식조례를 제정하도록 유도했다. “학교급식 운동은 엄마들이 참여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전형이에요. 전국 170여만명이 조례안 제정을 위해 주민발의에 서명을 했어요. 하지만 ‘학교급식에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할 경우 증액 부분을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주민의 염원이 담긴 조례안을 각하시킨 은평구나 부결시킨 구로구의 사례에서 보듯 지자체나 정치권은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에 무관심하니 안타깝죠.” 여기에는 정부(행정자치부)의 탁상행정도 한 몫 했다. 학교급식에 관심을 갖고, 예산이나 시설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제동을 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경기·충북·경남·전북에서 제정된 조례안의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문구를 두고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위반했다고 대법원에 제소했고, 급식조례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9월9일 대법원은 전북도 조례안에 대해 ‘WTO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때문에 배 대표는 ‘우리 농산물 사용’ 대신 생산자나 생산자 단체를 명기하는 내용의 급식법 개정안의 수정안을 마련, 지난해 12월말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과 EU, 일본 등은 학교급식법에 자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예외규정을 인정받아 자국산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어요. 과연 정부가 학생들의 건강을 지킬 의욕이 있는건지 묻고 싶어요. 예산을 들먹이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6% 교육재정만 확보해도 초·중·고교의 무상급식이 가능하거든요.” ◇ ‘학교급식법 개정안’ 뼈대는…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학교급식법에 담겨 있는 내용은 크게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실시 등 세가지다. 이를 위해 학교급식에 필요한 값싸고 품질 좋은 식자재의 안정적인 공급과 직거래 확대를 위해 지역별로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만드는 한편 지자체, 교육청 및 학교 관계자,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학교급식심의위원회를 만들도록 했다. 또 현재 중·고등학교의 90%가 위탁급식인 점을 들어, 장기적으로 직영급식을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고등학교에서 식중독이나 메뉴, 위생의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위탁급식에 의존하기 때문이에요. 이윤추구를 목표로 삼고 있는 기업이 급식과정에 간여하다보니 급식비의 60%만을 식자재 구입비로 사용하지만, 직영으로 전환하면 급식비 전액을 식자재 구입비로 쓰기 때문에 영양이나 품질 면에서 한층 나아질 수 있어요.” 직영으로 전환하면 1억원 미만의 시설개보수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영양사나 조리사(조리원)의 인건비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학교가 ‘직영’ 전환에 소극적이다.· ◇ 급식 개선엔 학부모들의 역할이 제일 중요 배 대표는 지금 이 상황에서 학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자재 구입이나 배식상태 등에 대한 모니터링만 확실히 해도 부실한 식단을 어느정도 개선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만 제대로 되어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상당수는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학교급식을 학교급식소위원회에 맡길 것이 아니라 학부모회가 중심이 되어 배식이나 식단 구성에 있어 모니터를 해야 해요. 새벽에 식자재가 들어올 때 신선도나 원산지, 유통기한을 검수하고, 조리시에는 위생적으로 하고 있는지와 화학조미료 등을 사용하고 있는지, 인스턴트 음식이 식단에 오르는지를 감독해야 하구요.” 10년 넘게 ‘학교급식법’ 운동을 펼쳐온 배씨가 처음부터 ‘활동가’는 아니었다. 농민의 딸로 충남 청양에서 자란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현모양처’의 꿈을 키우며 집안 살림을 돕다가 19살 때 ‘여공’을 뽑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관광버스를 탄 계기로 서울의 한 가발공장에 입사했다. 이후 배씨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1980년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감옥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배씨는 2001년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2002년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지난 2월16일 학사모를 썼다. 억척스런 ‘아줌마의 힘’이 우리 아이들의 밥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외침이 되어, 울림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급식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이때 그는 ‘시스템’에 눈뜨기 시작했다. “우수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학교급식법을 제정하는 것 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도록 유도해 저질·저가의 수입 식재료가 식단에 오르지 못하도록 해야 했어요. 워낙 다급한 사안이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추진력’이 발동하더군요.” 2002년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한 뒤 다음해 99개 시민단체와 함께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실시라는 3대 핵심사항을 요구하며 급식개선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이때부터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함께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토대를 다졌다. 또 지방자치단체들의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도록 유도해 현재 제주·전남·인천광역시 등이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조례안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북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자체단체와 10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급식조례를 제정하도록 유도했다. “학교급식 운동은 엄마들이 참여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전형이에요. 전국 170여만명이 조례안 제정을 위해 주민발의에 서명을 했어요. 하지만 ‘학교급식에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할 경우 증액 부분을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주민의 염원이 담긴 조례안을 각하시킨 은평구나 부결시킨 구로구의 사례에서 보듯 지자체나 정치권은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에 무관심하니 안타깝죠.” 여기에는 정부(행정자치부)의 탁상행정도 한 몫 했다. 학교급식에 관심을 갖고, 예산이나 시설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제동을 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경기·충북·경남·전북에서 제정된 조례안의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문구를 두고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위반했다고 대법원에 제소했고, 급식조례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9월9일 대법원은 전북도 조례안에 대해 ‘WTO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때문에 배 대표는 ‘우리 농산물 사용’ 대신 생산자나 생산자 단체를 명기하는 내용의 급식법 개정안의 수정안을 마련, 지난해 12월말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과 EU, 일본 등은 학교급식법에 자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예외규정을 인정받아 자국산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어요. 과연 정부가 학생들의 건강을 지킬 의욕이 있는건지 묻고 싶어요. 예산을 들먹이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6% 교육재정만 확보해도 초·중·고교의 무상급식이 가능하거든요.” ◇ ‘학교급식법 개정안’ 뼈대는…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학교급식법에 담겨 있는 내용은 크게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확대, 무상급식 실시 등 세가지다. 이를 위해 학교급식에 필요한 값싸고 품질 좋은 식자재의 안정적인 공급과 직거래 확대를 위해 지역별로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만드는 한편 지자체, 교육청 및 학교 관계자,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학교급식심의위원회를 만들도록 했다. 또 현재 중·고등학교의 90%가 위탁급식인 점을 들어, 장기적으로 직영급식을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고등학교에서 식중독이나 메뉴, 위생의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위탁급식에 의존하기 때문이에요. 이윤추구를 목표로 삼고 있는 기업이 급식과정에 간여하다보니 급식비의 60%만을 식자재 구입비로 사용하지만, 직영으로 전환하면 급식비 전액을 식자재 구입비로 쓰기 때문에 영양이나 품질 면에서 한층 나아질 수 있어요.” 직영으로 전환하면 1억원 미만의 시설개보수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영양사나 조리사(조리원)의 인건비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학교가 ‘직영’ 전환에 소극적이다.· ◇ 급식 개선엔 학부모들의 역할이 제일 중요 배 대표는 지금 이 상황에서 학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자재 구입이나 배식상태 등에 대한 모니터링만 확실히 해도 부실한 식단을 어느정도 개선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만 제대로 되어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상당수는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학교급식을 학교급식소위원회에 맡길 것이 아니라 학부모회가 중심이 되어 배식이나 식단 구성에 있어 모니터를 해야 해요. 새벽에 식자재가 들어올 때 신선도나 원산지, 유통기한을 검수하고, 조리시에는 위생적으로 하고 있는지와 화학조미료 등을 사용하고 있는지, 인스턴트 음식이 식단에 오르는지를 감독해야 하구요.” 10년 넘게 ‘학교급식법’ 운동을 펼쳐온 배씨가 처음부터 ‘활동가’는 아니었다. 농민의 딸로 충남 청양에서 자란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현모양처’의 꿈을 키우며 집안 살림을 돕다가 19살 때 ‘여공’을 뽑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관광버스를 탄 계기로 서울의 한 가발공장에 입사했다. 이후 배씨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1980년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감옥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배씨는 2001년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2002년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지난 2월16일 학사모를 썼다. 억척스런 ‘아줌마의 힘’이 우리 아이들의 밥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외침이 되어, 울림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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