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철 기자
“검사라는 직업이 그렇습니다. 누구를 구속하든 전혀 유쾌하지가 않아요.”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이 지난달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한 말이다. 조사 과정에서는 옥신각신 다투다가도 막상 피의자가 구속되면 착잡한 게 검사들의 심정이라는 얘기다. 성폭력이나 조직폭력 사범, 그리고 죄질이 매우 나쁜 사기범을 구속했을 때는 통쾌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미안한 감정이 들 때도 적지 않다고 검사들은 말한다. 구속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영장을 청구할 때는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국방부의 강제철거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를 대하는 검찰의 태도는 이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검찰은 무려 60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 중 44명의 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검찰이 경솔한 판단을 했다고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다.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단순히 ‘죽봉을 들었다’는 자백만 있는 경우는 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폭력시위 증거로 제출한 사진과 피의자가 일치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법원은 검찰이 뚜렷한 증거 없이 무더기로 영장을 청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장이 청구된 이들 가운데는 대학에 갓 들어간 신입생도 여럿 있었다. 검찰이 인신 구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정책적 판단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굳이 ‘불구속 수사 원칙’이나 ‘법 앞의 평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구속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현실을 검찰은 다시 한번 깊이 새겼으면 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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