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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삼성 ‘보이지 않는 군림’ Vs 현대차 ‘2인자 없는 통치’

등록 2006-05-13 09:42수정 2006-05-13 09:54

집중비교 삼성 Vs 현대차 - ⑤ 황제경영
[현대자동차]
“전문경영인은 배신” 1인 경영
틀린 말도 따르는 ‘예스맨’ 득세
충성경쟁 유도에 뒤에선 불만

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인사스타일은 흔히 ‘엘리베이터 인사’로 불린다. “한 임원이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정 회장과 마주쳤을 때 ‘아니, 자네 아직도 회사에 다니나’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목이 잘리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그 사람, 요즘 왜 안 보이나’ 하면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납니다.” 계열사의 한 고위임원은 “직원들 간에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잦은 인사나 ‘깜짝 인사’도 일종의 통치술로 생각하는 듯하다. 정 회장은 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을 때 워낙 짓눌려 지냈다. 형제들은 물론 고 정세영 회장, 가신그룹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지금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은 그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고 현대차 사람들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신임하지 않고 서로 견제·감시하게 하고,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현대차 한 임원)

정 회장은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다. 일 욕심이 많아서 사소한 것도 모두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한다. 전문경영인의 힘이 너무 세지는 것도 경계한다. 누가 회장의 측근이나 실세라는 말을 듣게 되면 오히려 화가 닥친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선친 밑에서 경영을 배울 때부터 전문경영인들은 힘이 세지면 꼭 오너를 배신한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다”며, 현대 출신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이익치씨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정 회장의 이런 ‘통치철학’ 때문에 현대차의 조직은 회장을 중심으로 견제와 감시장치가 잘 작동되도록 짜여 있다. 회사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기획총괄본부 안에는 정책지원팀, 전략기획팀, 사업전략팀, 기획지원팀, 경영기획팀, 투자분석팀, 기획관리팀, 경영정보지원팀 등 구분하기도 힘든 비슷비슷한 이름의 팀들이 몰려 있다. 조직이 엄밀한 업무영역에 따라 나뉘지 않고 서로 중복되는 식이다. 기업이 치밀한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누가 회장실 문을 자주 두드리냐’에 따라 역학관계가 판가름나는 구조다. 이런 경영 방식은 결국 일부 인사들의 전횡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도 회장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환관’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말솜씨가 어눌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번은 임원회의에서 정 회장이 “친제품 개발”이라는 말을 몇차례나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환경제품 개발’이라는 말을 잘못 발음한 것이었다. 우스운 것은 정 회장의 이야기를 듣던 임원들이 그 말을 열심히 수첩에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이다. 회장의 선문답식 발언을 잘 해석해서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 성공하는 풍토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정 회장의 말은 절대로 번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뚝심있게 밀어붙인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다행스럽게도 정 회장이 내린 판단이 그동안은 대부분 적중했다. 한번 결정한 사안을 번복 없이 밀고 나가는 것은 회장말고는 아무도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내 맘대로식’ 경영은 그 자체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정 회장의 ‘통치방식’에 대한 내부 불만이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점은 황제경영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삼성]
회장 어록 1주일 ‘의식화’ 학습
구조본은 “삼성공화국의 청와대”
삼성차 실패 “회장님탓 아니야”

삼성은 치밀한 시스템경영·관리경영으로 현대차와 대비된다. 하지만 황제경영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현대차 이상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 평가다. 삼성의 한 전직 임원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과거 일본의 ‘천왕과 막부 체제’에 비유했다. “천왕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신에 버금간다.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의 권위도 신격화돼 있다. 하지만 직접 통치하지는 않는다. 통치는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한다.” 삼성의 한 직원은 “처음 입사하고 난 뒤 일주일간은 ‘이건희 회장 어록’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계속 틀어주더라. 다 보고 났더니, 이 회장이 마치 종교집단의 교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무섭기는 해도 서민적이고 소탈한 성격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 계열사 임원은 “정 회장이 임직원들과 종종 어울리는데 주로 소주를 마시고, 양주도 12년산 위의 고급은 안 마신다”고 말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다. “이 회장 부부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에이(A)’, ‘에이다시(A′)’로 부를 정도다.” 이 회장이 일상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신비감을 조성한다. 구조본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회의에서 경영 현안보다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동북아 허브’ 등 주로 고담준론을 얘기해서 어느 때는 기업 회의인지, 국무회의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사실 자체가 왜곡되는 경우마저 있다. 삼성자동차 경영실패의 책임을 이 회장 대신 전문경영인들 탓으로 돌린다든지, 반도체 신화의 공적을 이 회장에게 돌리는 게 대표적이다. 삼성 출신 한 인사는 “누가 뭐래도 자동차사업은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고, 반도체사업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삼성 쪽은 “이 회장이 사실은 자동차산업에 반대했다. 선친이 시작한 반도체 산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게 맞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이 회장 일가가 한번 움직이면 삼성의 관련 조직은 24시간 비상상태에 들어간다. 외국 나들이 때는 사전준비나 현지 지원이 대통령의 의전 수준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머무는 호텔방에는 미리 가전제품을 삼성 것으로 바꿔놓기도 하고, 방 구조를 한국의 방과 비슷하게 바꾸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 회장은 가끔 자신의 서울 한남동 집에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파티를 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 삼성 출신 인사는 “식사 자리에 세계적인 성악가와 지휘자가 참석해 공연을 하고, 수백명이 먹을 음식 덮개가 도우미들에 의해 동시에 열리는 장관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장 일가족은 손자까지 모두 헤드테이블을 차지하고, 사장단과 임원들은 모두 아래 좌석에 앉은 모습이 마치 황제와 신하의 관계처럼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의 황제경영이 가능한 것은 구조본이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 구조본을 ‘삼성공화국의 청와대’라고 부른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등으로 구조본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삼성은 지난 2월7일 구조본을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꾸고 일부 조직을 축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 임원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그룹 안에서도 대부분 종전처럼 구조본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황제경영이나 구조본 체제에서는 삼성의 근본적인 변화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한 고위임원은 “황제경영, 환관경영이 계속되면 정말 회사가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의 제1, 2위 기업인 삼성과 현대는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에 대한 현대차와 삼성 쪽의 대답은 이렇다. “정몽구 회장이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다 과거의 일이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끝>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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