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청사 앞에서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항의집회’를 열자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오른쪽)이 손팻말을 뺏으려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지법 “국가존립 해악 위험” 징역2년·집유3년
“우리 사회 건강성·자정능력 간과한 것”비판
“우리 사회 건강성·자정능력 간과한 것”비판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취지의 글을 언론매체에 게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강정구(61)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진동 판사는 26일 강 교수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교수직을 박탈하는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강 교수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교수직을 잃게 된다.
강 교수에게 적용된 죄명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와 이적표현물 소지죄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6월 토론회에서 “6·25는 통일전쟁으로 분단을 주도한 미국이 전쟁의 원인 제공자이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400만 사상자가 안 생겼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지난해 3월 한 인터넷 언론매체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우리 민족을 죽이려는 전쟁 주범이 미국이며 우리나라는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 하에 있다”고 주장하고 △2002년 한 계간지에 “북방한계선은 냉전성역이며 1차 서해교전에서 선제공격한 것은 남한이다. 서해교전의 근본원인은 북방한계선의 위배 및 불법성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2001년 8월, 방북 당시 김일성 생가에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기는 등 친북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헌법상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국가의 존립 등에 실질적 해악을 가할 위험성이 있을 땐 제한이 가능하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강 교수의 주장과 행위는 대한민국의 존립에 실질적 해악을 가할 위험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과 체제 경쟁의 우위에서 포용할 수 있는 표현의 폭이 넓어져 강 교수의 주장이 사상의 경쟁시장에서 검증한다면 해악을 시정할 가능성이 높고, 유죄 선언만으로도 처벌의 상징성이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강 교수의 주장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해악을 끼친다”며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일종의 ‘타협’을 선택한 셈이다.
전국교수노조는 “이번 판결은 법적으로는 유죄가 될지 모르지만 역사적, 사회적으로는 정당한 판단이 아니며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권리가 위축되는 과정으로 생각돼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김세균 대표도 “이번 판결은 학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발전하고 남북이 화해 협력으로 나가는 시대적 조류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 사건은 국내 사법 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 파동을 일으키는 등 큰 파장을 낳았다. 지난해 10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할 것을 지시했고, 총장은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진 사퇴했다. 김태규 고나무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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