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과정 기존업체 유리 ‘로비’ 없었을까
지정제 바꾸며 ‘취소업체’ 재선정 의문
지정제 바꾸며 ‘취소업체’ 재선정 의문
도박공화국의 ‘공식 화폐’였던 경품용 상품권 선정 과정의 비리가 성인오락기 심의 부조리와 함께 양대 의혹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상품권 인증제 도입을 뼈대로 한 경품취급 고시를 발표한 지 불과 석달 만에 인증 작업을 끝내고, 이 과정에서 기존 업체에 유리한 심사 조건을 내건 이유가 우선 문제다.
문화부는 2004년 12월 성인오락실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딱지상품권’을 없앤다며 경품 고시를 개정해 경품용 상품권을 인증하는 방안을 추진한 결과 지난해 3월 신청 업체 61곳 가운데 22곳을 선정했다. 그러나 선정 과정에서 심사 배점을 정하며 ‘상품권 유통성’ 항목에 40점(100점 만점)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상품권을 불법으로 발행하고 환전하던 업체들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선정 과정에서 △딱지상품권을 발행했던 업체를 인증해주고 △자본금 평가 및 법인설립일 관련 배점이 잘못 기재되는가 하면 △허위로 가맹점과 회계 기록을 제출한 업체가 상당수이며 △국회의원을 상대로 업체의 로비가 치열하다는 등의 의혹과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심사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문화부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문화부는 떼려는 혹을 앞장서 붙인 격이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도 지난해 4월 심사기준에 대한 논의와 상품권 가맹점 현지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중심으로 문화부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졸속행정을 줄곧 도마에 올렸다. 하지만 때마다 장관과 담당 국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5월엔 문화부 담당 과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품권 선정 업무와 관련해) 국회의원들에게도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특정 업체 선정을 위해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흥사단은 이 문제와 관련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국회의원 35명은 감사청구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여권 의원들이 이 문제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의 빌미를 준 셈이다.
결국 문화부는 전면 재심사에 들어가 지난해 6월30일 상품권 인증을 받은 22곳이 모두 허위로 신청서류를 제출했다며 한꺼번에 취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슬그머니 용어를 달리해 불과 한달 만인 8월1일 7개 상품권을 다시 지정했다. 하지만 이들 상품권 모두 넉달 전에 인증을 받았다 취소된 업체여서 국회와 시민단체로부터 ‘엉터리, 졸속 행정’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당시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국회에서 “상호(인증과 지정) 간에 법적 충돌이 없는 것으로 검토됐다”며 “인증제도 규정은 새로운 제도(지정)에 적용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정 장관은 상품권을 선정한 지 불과 넉달 만에 번복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밝혔으나 후속 조처는 없었다.
이러한 ‘상품권 선정 파동’은 문화부 고유의 업무이면서도 민간단체인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선정 관련 업무를 맡겨 문제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실무를 맡았던 담당자조차 “심사 과정이 어설펐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한다”고 말할 정도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