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일제 경찰이 한인 16명을 학살한 러시아 사할린주 포로나이스크 현장에 세워진 ‘통한의 비’ 앞에서 7일 오전 동포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태평양전쟁 패전뒤 달아나며
한인16명 스파이로 몰아 학살
위령제 공동대표 법타 스님
“일본 정치인들 반성하길”
한인16명 스파이로 몰아 학살
위령제 공동대표 법타 스님
“일본 정치인들 반성하길”
“동포들 비극적 죽음 기억해 달라”
“일본 관헌에 학살된 부친과 형, 그리고 많은 한국인의 영(靈)을 위로하고 학살된 사실을 전세계인에게 고발코자 이를 기록한다.”(포로나이스크 <통한의 비> 비문 중)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일본 경찰이 달아나면서 러시아의 사할린 동포 16명을 스파이로 몰아 집단 학살한 ‘포로나이스크 한인 학살사건’ 현장에서 7일 오전 61년 만에 숨진 동포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포로나이스크는 사할린주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290㎞ 떨어진 두메다. 이곳에서 1945년 8월17일 일본 경찰은 한인 동포 16명을 ‘소련 스파이’로 몰아 근처 파출소로 끌고 간 뒤 총으로 쏴 죽이고 증거를 없애려 파출소에 불까지 질렀다.
그 뒤 반세기 동안 풍문으로만 떠돌던 ‘학살극의 진상’이 사할린 동포들에게 알려진 것은 1992년. 당시 김수영 한인연합회장과 학살 피해자의 딸인 김경순(76)씨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문서 공개를 요청해 학살사건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조사와 재판 기록을 찾아낸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수사기록에는 일본 경찰에 스파이 밀고를 한 조선인은 이두복(일본 이름 구미모토 도쿠후)이었고 2명의 일본 경찰관이 3·8식 소총으로 동포들을 학살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또 사건 현장에선 자물쇠가 잠긴 수갑과 총탄에 맞은 두개골이 발견돼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만행의 역사’가 최근 고국에까지 알려지는 데는 또다시 14년이 걸렸다.
이날 위령제는 ‘사할린 한인 위령제’ 대표단(집행위원장 몽산 스님) 20여명과 현지 교민 1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1993년, 자비로 ‘통한의 비’를 세우고 사건을 세상에 알린 김경순씨는 위령제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학살 사건으로 아버지 김경복(당시 54살)씨와 오빠 정대(당시 19살)씨를 잃은 김씨는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고 동포의 죽음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위령제를 마친 뒤 대표단 공동대표인 법타 스님은 “민족의 참혹한 비극이 한반도뿐 아니라 이곳 사할린에서도 자행된 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에 김경순씨가 증언한 사건을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려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법타 스님은 또 “아직도 참회를 거부하는 일본 정치인들은 반성해야 한다”며 “재외동포 또한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큰 그림이 완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할린/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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