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몽골 이주노동자 자녀가 9일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동방과후학교’에서 오전 한국어 수업을 마친 뒤 몽골식 점심을 먹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주노동자 자녀에 한끼라도 밥다운 밥을
밥 냄새가 솔솔 돈다.
“쎈베노(안녕)!” 복도와 교실 안팎에서 몽골어와 한국어로 시끌벅적하던 몽골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9일 점심 차림은 돼지갈비찜. 몽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다니는 장안동 방과후학교의 식탁에선 하루 돼지고기 스물다섯근(15㎏)이 뚝딱 사라진다. 육류를 주로 먹는 몽골 식습관 때문이다. 하루 50~60명치 밥값으로 매달 300만원이 들지만, 아이들은 덕분에 밥 먹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5~19살인 아이들은 여기서 밥을 먹지 않으면 끼니를 거르거나 홀로 때워야 한다. 부모들이 공장과 막노동판을 뛰다가 밤 10시를 훌쩍 넘겨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가정 어린이들의 결식 문제가 심각하다. 부모들은 종일 집을 비우고, 방치된 아이들은 끼니를 건너뛰거나 인스턴트식품으로 연명해 건강마저 해치고 있다.
몽골 소녀 ㅋ(15·중1년)양은 툭하면 음식을 토한다. 위벽이 심하게 헐어 있는 탓이다. 4년 전 한국에 왔지만 서울 동대문 봉제공장에 매인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ㅋ양의 식사를 챙겨줄 수 없었다. 보통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ㅋ양 같은 아이들은 위장병을 안고 산다.
불법 체류자인 ㅈ(11·초등3년)양은 유난히 키가 작다. 초등학교 1학년 이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미싱사인 어머니는 잔업으로 늦게 오는 일이 잦고, ㅈ양은 세살배기 동생과 둘이서 저녁을 때운다. 몽골 청소년학교에 가면 제대로 된 밥을 주지만 월세 대기도 벅찬 어머니한테 차비를 받지 못해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다.
불법체류 부모들 일하느라
식사 못 챙겨 영양 불균형 심각
성동구, 동대문구등
실태파악 급식지원 나서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결식 우려가 커지면서 서울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실태 파악에 나섰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8월 말 외국인 거주자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지원하도록 지침을 내려보낸 데 따른 것이다. 지침은 불법체류자를 지원 대상에서 뺐지만, ‘민간단체 활용 등을 통해 기본적인 인권 보장이 되도록 노력하라’며 융통성을 줬다. 지자체들이 이주노동자 가정 지원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한달 미만의 방문 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부모와 함께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 일이 많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은 집 안에 갇혀 영양 불균형이 심각하다. 서울 성동구 가정복지과의 김형곤 팀장은 “불법체류 가정은 신분 노출을 겁내 결식 아동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을 정도로 어리면 결식 우려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달부터 학교를 중심으로 파악된 이주노동자 자녀 60여명의 환경을 조사해 식사를 지원하는 한편, 미취학 어린이들은 현장조사를 통해 챙기기로 했다. 체류 합법성은 묻지 않고 결식 우려만 살핀다. 또 동대문구는 성동구와 함께 장안동 방과후학교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급식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민간단체만으론 예산도 부족하고,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단체의 지원 프로그램에 이슬람계 가정이 적응하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가 생기는 상황에서 약간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장안동 방과후학교의 황태경(40) 간사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도맡고 일찍 철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정부가 체류 합법성을 묻지 않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면 민간단체와 결식 어린이 정보를 공유해 좀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몽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9일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동방과후학교’에서 오전 한국어 수업을 마친 뒤 몽골식 점심을 접시에 담아 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불법체류 부모들 일하느라
식사 못 챙겨 영양 불균형 심각
성동구, 동대문구등
실태파악 급식지원 나서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결식 우려가 커지면서 서울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실태 파악에 나섰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8월 말 외국인 거주자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지원하도록 지침을 내려보낸 데 따른 것이다. 지침은 불법체류자를 지원 대상에서 뺐지만, ‘민간단체 활용 등을 통해 기본적인 인권 보장이 되도록 노력하라’며 융통성을 줬다. 지자체들이 이주노동자 가정 지원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한달 미만의 방문 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부모와 함께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 일이 많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은 집 안에 갇혀 영양 불균형이 심각하다. 서울 성동구 가정복지과의 김형곤 팀장은 “불법체류 가정은 신분 노출을 겁내 결식 아동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을 정도로 어리면 결식 우려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달부터 학교를 중심으로 파악된 이주노동자 자녀 60여명의 환경을 조사해 식사를 지원하는 한편, 미취학 어린이들은 현장조사를 통해 챙기기로 했다. 체류 합법성은 묻지 않고 결식 우려만 살핀다. 또 동대문구는 성동구와 함께 장안동 방과후학교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급식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민간단체만으론 예산도 부족하고,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단체의 지원 프로그램에 이슬람계 가정이 적응하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가 생기는 상황에서 약간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장안동 방과후학교의 황태경(40) 간사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도맡고 일찍 철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정부가 체류 합법성을 묻지 않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면 민간단체와 결식 어린이 정보를 공유해 좀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9일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동방과후학교’에서 고생하시는 황태경 간사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황태경 간사가 모자라는 반찬을 골고루 나눠주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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