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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체험르포]전경출신 기자, 다시 진압복 입다

등록 2006-12-07 19:38수정 2006-12-08 08:33

경찰 진압복을 입은 전진식 <한겨레> 기자(왼쪽)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퇴계로 명동 입구에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의경 대원들 바로 뒤에 서서 취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경찰 진압복을 입은 전진식 <한겨레> 기자(왼쪽)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퇴계로 명동 입구에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의경 대원들 바로 뒤에 서서 취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찬 겨울밤 몸싸움은 시작됐다
뭔가가 날아들고 방패로 내리찍고…
“목소리 크게 해!”

전의경 대원들의 빠른 고함소리에 곁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한 기자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돌아봤다. “뭐? 복수 할게?” 시끄러운 시위 현장에서 대원들의 빠른 고함이 ‘바깥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들려 오해를 사는 예다. 이런 ‘고함’만 듣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제3차 범국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 6일. 기자는 어렵사리 서울경찰청의 협조를 얻어 7년8개월 만에 다시 진압복을 입었다. 뻑뻑한 진압복 지퍼를 가슴까지 올리니 긴장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가빴다. 오전 10시, 방패 대신 취재수첩을 움켜쥔 채 경찰버스에 뛰어올랐다.

충돌 예상 지점인 서울 종로구 이화네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좁은 버스 안과 길바닥에서 3분 만에 도시락을 ‘까먹는다.’ 이어 불심검문과 경비 근무. 찬바람 속에 세 시간 남짓 ‘장승’처럼 서 있는 동안 시위대가 3∼4m는 될 법한 죽봉과 낚싯대에 깃발을 꽂고 지나간다. 5중대 1소대원들의 한숨이 터진다. “저게 다 무기로 바뀔 텐데 …”라며 준비해간 고글(보호안경)을 써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분리대에 놓인 대리석 조각들, 가로수를 받치는 지지대 등이 공포에 불을 붙인다. 언제든 시위대의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제대를 두 달 앞둔 최고참 장우진 수경은 “시위대가 앞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면 몸이 떨릴 만큼 긴장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얄미운 행동’도 있다. 소대원들은 진압 헬멧을 들어올린 뒤 주먹으로 때리거나, 술 취한 채 방패에 기대 쉬는(?) 것을 꼽았다.

부대를 떠난 지 8시간 만인 저녁 6시께, 크리스마스를 앞둔 화려한 전등불 아래 시위 군중과 맞닥뜨렸다. 기자는 상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다섯번째 줄에 섰다. 몇몇 시위 참가자가 대원들 헬멧을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툭툭 내리쳤다. 대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이다.

그러다 돌연 방패를 잡아당기면서 본격적인 몸싸움이 시작됐다. 하늘에서는 눈 대신 생수병과 정체 모를 플라스틱이 날아들었다. 왕복 6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막던 중대가 급격히 뒤로 밀렸다. 밀리지 말라는 말을 거듭 토해내는 무전기 소리, 대원들의 고함과 시위 참가자들의 꽹과리 소리, 여기에 욕설까지 마구 뒤섞였다.


흥분한 몇몇 대원이 시위대를 방패날로 위협하고 내리찍는 모습을 철망 사이로 목격할 수 있었다. 대원들 사이엔 시위대를 겨냥해 “저 XX, 당장 검거해!”라는 빠른 고함소리가 잇따랐다. 고현주 1소대장은 “아무리 인내·평화 대응을 대원들에게 교육해도, 혼란스런 현장에서 일순간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이날 시위의 주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실체는 정확히 몰랐다. 다치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26명 소대원의 3분의 2 정도가 농민이나 노동자, 회사원의 아들이지만, 막상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시위 군중은 ‘우리’가 아닌 ‘진압 대상’으로 비치기 쉽다. 때문에 “동시대를 사는 시민이지, 절대 적이 아니다”라는 이재성 5중대장의 ‘교양 사항’도 어느 순간 무력해진다.

하지만 시위 군중이 물러가면 웃음꽃이 다시 핀다. 박동진(21) 상경은 “전북 익산이 고향인데 말입니다, 요즘 조류독감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도 안 놀아줍니다”라며 억울해한다. 지난해 겨울 농민 시위대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던 일’이 농담거리가 되는 것도 이런 때다. 대원들이 대열을 갖춰 맛나게 피우는 담배연기가 옛 시절 최루탄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밤 10시, 촛불문화제가 끝나 ‘상황’이 끝나는 동시에 대원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날 5중대에서는 ‘다친 사람’도 ‘다치게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보다 유쾌하게 ‘집’(부대)으로 돌아가는 길, 컴컴한 버스 안에서 이따금 들리는 무전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전쟁터 같은 충돌… 그래도 평화로운 집회를 꿈꾸는 까닭

지난달 22·29일과 지난 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가 서울과 지방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여느 때처럼 집회·시위의 성격과 영향, 경찰의 대응 태도가 대다수 언론의 보도 내용이었죠. 하지만 취재 관행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경찰의 ‘중간’에 서서 격한 충돌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더불어 교통 상황과 양쪽의 움직임 등을 나열하는 식이니까요. 이런 태도를 ‘중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기자는 시위 군중과 경찰, 어느 쪽으로도 온전히 뒤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체를 보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달라지지 않는 ‘시선’에서 새로운 ‘뉴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때문에 좀더 다가서서 귀기울이고 싶었습니다.

그들 속으로

지난달 22일 서울역 광장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첫 집회 때는 ‘전통’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집회 참가자와 시민, 경찰의 반응을 차례로 묶어나가는 방식이죠. 집회가 열린 이유를 따져보지 않고, 교통 불편과 시위의 불법성 등을 꾸짖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하루 뒤 기자칼럼으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보기]. 하지만 갈증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지난달 29일 열린 두번째 집회 때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농민과 동행하면서 육하원칙의 마지막인 ‘왜’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기사보기] 그리고 지난 6일 집회에서는 진압복을 입고 기동대원들과 하루를 함께 보냈죠. 기동대원들의 입장에 쏠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국내 언론 사상 처음 시도한다는 설렘이 마음을 잡아끌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진실의 몇 퍼센트를 전달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네요. 현장에 모든 해답이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지 않는다면 진실을 찾기는 더욱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추위의 두 얼굴

추위가 몰아닥친 초겨울에 세 차례 대형 집회가 열리면서 기자들의 취재 환경도 덩달아 열악해졌습니다. 취재수첩에 끊임없이 사실을 기록하자면 두꺼운 장갑은 ‘무용지물’일 때가 많기 때문인데요. 겨울철 집회·시위 취재는 기자에게 언제부턴가 ‘3디 취재’의 하나가 돼 버린 듯합니다. 만나는 기자들마다 한두가지 불평·불만이 따라붙으니까요. 날씨에 따라 변수가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집회의 경우, 애초 예상했던 밤 9시보다 한 시간 가량 빨리 ‘상황’이 끝났습니다. 물론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시위 군중이 견디기 어려웠던 건 사실입니다. ‘내 귀가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매서운 추위 아니겠어요? 거꾸로 지난 6일 집회는 밤 10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바람도 잔잔하고 기온도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정도여서 ‘적절한 조건’이 만들어진 탓일 것으로 봅니다. 올해를 마감하는 집회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 건 물론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취재진도 대형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신문·방송에서 전해지는 날씨를 꼼꼼히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희망을 볼 때가 되지 않았나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자리는 날카롭습니다. 쇠파이프와 대나무봉 등이 쓰이지 않아도 두 대열이 부딪치는 자리엔 욕설과 고함, 땀과 입김이 뒤섞이게 마련이니까요. 서로가 밀리지 않으려는 자존심도 이런 풍경을 한몫 거드는 요인입니다. 또 상대를 자극하는 언행이 사라지지 않는 탓도 크죠. 때문에 아직도 시위 현장의 충돌 상황은 ‘전쟁’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폭력·과격이란 낱말이 시위 또는 경찰 대응과 어울려 보도되는 빌미를 주는 셈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7년 전 기자가 전경으로 군복무를 할 때보다 상황은 분명 나아졌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가까운 장면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겠죠. 지난달 22일 만난 한 농민은 기자에게 지난해 12월 필리핀에서 참가했던 시위를 말하면서 “그곳 경찰에게 오히려 보호를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지난 6일 경찰기동대의 한 소대장은 “시위대와 끊임없이 마주서야 하는 집회·시위 임무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대원이 여럿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는 건강과 결혼, 집안 살림 등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평화로운 집회·시위도 꿈꾸게 되는 까닭입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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