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진압복을 입은 전진식 <한겨레> 기자(왼쪽)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퇴계로 명동 입구에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의경 대원들 바로 뒤에 서서 취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찬 겨울밤 몸싸움은 시작됐다
뭔가가 날아들고 방패로 내리찍고…
뭔가가 날아들고 방패로 내리찍고…
“목소리 크게 해!”
전의경 대원들의 빠른 고함소리에 곁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한 기자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돌아봤다. “뭐? 복수 할게?” 시끄러운 시위 현장에서 대원들의 빠른 고함이 ‘바깥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들려 오해를 사는 예다. 이런 ‘고함’만 듣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제3차 범국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 6일. 기자는 어렵사리 서울경찰청의 협조를 얻어 7년8개월 만에 다시 진압복을 입었다. 뻑뻑한 진압복 지퍼를 가슴까지 올리니 긴장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가빴다. 오전 10시, 방패 대신 취재수첩을 움켜쥔 채 경찰버스에 뛰어올랐다.
충돌 예상 지점인 서울 종로구 이화네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좁은 버스 안과 길바닥에서 3분 만에 도시락을 ‘까먹는다.’ 이어 불심검문과 경비 근무. 찬바람 속에 세 시간 남짓 ‘장승’처럼 서 있는 동안 시위대가 3∼4m는 될 법한 죽봉과 낚싯대에 깃발을 꽂고 지나간다. 5중대 1소대원들의 한숨이 터진다. “저게 다 무기로 바뀔 텐데 …”라며 준비해간 고글(보호안경)을 써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분리대에 놓인 대리석 조각들, 가로수를 받치는 지지대 등이 공포에 불을 붙인다. 언제든 시위대의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제대를 두 달 앞둔 최고참 장우진 수경은 “시위대가 앞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면 몸이 떨릴 만큼 긴장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얄미운 행동’도 있다. 소대원들은 진압 헬멧을 들어올린 뒤 주먹으로 때리거나, 술 취한 채 방패에 기대 쉬는(?) 것을 꼽았다.
부대를 떠난 지 8시간 만인 저녁 6시께, 크리스마스를 앞둔 화려한 전등불 아래 시위 군중과 맞닥뜨렸다. 기자는 상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다섯번째 줄에 섰다. 몇몇 시위 참가자가 대원들 헬멧을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툭툭 내리쳤다. 대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이다.
그러다 돌연 방패를 잡아당기면서 본격적인 몸싸움이 시작됐다. 하늘에서는 눈 대신 생수병과 정체 모를 플라스틱이 날아들었다. 왕복 6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막던 중대가 급격히 뒤로 밀렸다. 밀리지 말라는 말을 거듭 토해내는 무전기 소리, 대원들의 고함과 시위 참가자들의 꽹과리 소리, 여기에 욕설까지 마구 뒤섞였다.
흥분한 몇몇 대원이 시위대를 방패날로 위협하고 내리찍는 모습을 철망 사이로 목격할 수 있었다. 대원들 사이엔 시위대를 겨냥해 “저 XX, 당장 검거해!”라는 빠른 고함소리가 잇따랐다. 고현주 1소대장은 “아무리 인내·평화 대응을 대원들에게 교육해도, 혼란스런 현장에서 일순간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이날 시위의 주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실체는 정확히 몰랐다. 다치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26명 소대원의 3분의 2 정도가 농민이나 노동자, 회사원의 아들이지만, 막상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시위 군중은 ‘우리’가 아닌 ‘진압 대상’으로 비치기 쉽다. 때문에 “동시대를 사는 시민이지, 절대 적이 아니다”라는 이재성 5중대장의 ‘교양 사항’도 어느 순간 무력해진다. 하지만 시위 군중이 물러가면 웃음꽃이 다시 핀다. 박동진(21) 상경은 “전북 익산이 고향인데 말입니다, 요즘 조류독감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도 안 놀아줍니다”라며 억울해한다. 지난해 겨울 농민 시위대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던 일’이 농담거리가 되는 것도 이런 때다. 대원들이 대열을 갖춰 맛나게 피우는 담배연기가 옛 시절 최루탄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밤 10시, 촛불문화제가 끝나 ‘상황’이 끝나는 동시에 대원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날 5중대에서는 ‘다친 사람’도 ‘다치게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보다 유쾌하게 ‘집’(부대)으로 돌아가는 길, 컴컴한 버스 안에서 이따금 들리는 무전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흥분한 몇몇 대원이 시위대를 방패날로 위협하고 내리찍는 모습을 철망 사이로 목격할 수 있었다. 대원들 사이엔 시위대를 겨냥해 “저 XX, 당장 검거해!”라는 빠른 고함소리가 잇따랐다. 고현주 1소대장은 “아무리 인내·평화 대응을 대원들에게 교육해도, 혼란스런 현장에서 일순간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이날 시위의 주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실체는 정확히 몰랐다. 다치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26명 소대원의 3분의 2 정도가 농민이나 노동자, 회사원의 아들이지만, 막상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시위 군중은 ‘우리’가 아닌 ‘진압 대상’으로 비치기 쉽다. 때문에 “동시대를 사는 시민이지, 절대 적이 아니다”라는 이재성 5중대장의 ‘교양 사항’도 어느 순간 무력해진다. 하지만 시위 군중이 물러가면 웃음꽃이 다시 핀다. 박동진(21) 상경은 “전북 익산이 고향인데 말입니다, 요즘 조류독감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도 안 놀아줍니다”라며 억울해한다. 지난해 겨울 농민 시위대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던 일’이 농담거리가 되는 것도 이런 때다. 대원들이 대열을 갖춰 맛나게 피우는 담배연기가 옛 시절 최루탄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밤 10시, 촛불문화제가 끝나 ‘상황’이 끝나는 동시에 대원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날 5중대에서는 ‘다친 사람’도 ‘다치게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보다 유쾌하게 ‘집’(부대)으로 돌아가는 길, 컴컴한 버스 안에서 이따금 들리는 무전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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