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들의 수다’
7년8개월 전과 다르지 않았다. 6일 아침 찾은 서울청 1기동대 5중대 내무실에는 5m가 훌쩍 넘는 높은 천정에 양쪽으로 2층침대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잠자리에서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아래로 떨어졌던 ‘그 대원’이 문득 생각났다.
경북의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90년대 말 무렵, 내무실 바닥은 ‘시리도록’ 차가운 콘크리트였고, 잠자다 아래로 추락했던 ‘그 대원’은 날개가 없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멀쩡했던 기억이 났다.
이곳 바닥엔 매트리스가 깔려 한기와 충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재성 5중대장은 댓바람에 “시설이 너무 열악해 보이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얼마 전 근처 자원봉사단체에서 꾸며줬다는 휴게실이 대단히 소중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정작 이곳에서 2년을 살아야 하는 대원들은 별다른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박동진 상경은 “한밤에 3번 정도 방열기가 작동하는데 금세 내무실 안이 후끈 달아오른다”고 말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가 돌아가고 나면 인터뷰 내용을 ‘또박또박’ 보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변한 것도 있었다. 구타·가혹 행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말랑말랑한’ 침대 위에서 ‘원산폭격’을 하고 쪼그려뛰기를 하는 일은 많이 사라졌다. 또 시위대가 코를 마주 대는 ‘1선 방패’ 자리를 고참과 졸병이 나란히 맡고 있었다.
도시락도 푸짐해졌다. 단가가 보통 3500원인 전의경 도시락은 7년 전보다 반찬 가짓수도 많고 맛도 좋아졌다. 그런데 먹는 시간은 더 짧아졌다. 버스와 길바닥에 앉은 대원들이 점심을 마치기까지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기자는 점심을 3분의 1도 먹지 못했다. 아침도 걸러 배가 고팠다.
하지만 ‘대원들의 수다’는 그 시간이 더 길어졌다. 단골 화제인 여자친구·휴가 얘기를 거쳐 시위대에 몰매 맞았던 기억, 두달 뒤면 ‘아버지’가 되는 21살 ‘미혼 소대원’의 사연에 이르렀다. 그들의 수다는 지루함과 긴장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다. ‘군기반장’ 박영현 상경은 시위대와 충돌 때 대원들에게 고함을 많이 지른 뒤 목이 쉬었지만 그 역시 수다자리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아침 10시 부대를 떠나 시위대와 맞닥뜨린 저녁 6시까지 무려 8시간을 ‘장승’처럼 서 있기 위해서다. 추운 겨울엔 더더욱 그렇다.
‘님’의 침묵?, 아니 호통!
“이영재님, 휴가 언제 가십니까?”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아니다. 기동5중대원들은 자신보다 고참을 ‘아무개님’이라고 부른다. 아무개상경, 아무개수경 하는 호칭에 익숙한 기자로선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 이 호칭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참을 부를 때 ‘님’를 붙여야 한다면 아무개수경님보다 아무개님이 더 경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급박한 시위 현장에서는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공교롭게 이들은 이경부터 수경까지 계급장이 ‘무궁화 이파리 하나’로 같기도 하다.
사랑스럽기만 할 것 같은 그 ‘님’이 ‘남’처럼 매몰찰 때가 바로 시위대가 맞닥뜨려 한판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일 때다. 온갖 욕설이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진압 헬멧을 주먹으로 두드려대는 소리가 시위대의 꽹과리 소리 못지않다. 거친 욕설이 하얀 입김과 함께 옆 대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대로 전입한 지 6달이 채 안 되는 대원들은 시위대보다 고참들이 더 무서운 경우도 있을 정도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겪는 또다른 공포다. 이같은 풍경은 대원들이 부딪히는 상황이 훈련이 아니라 언제나 ‘실전’인 탓이 크다. 때문에 흡연율도 여전히 높다. 경찰청은 지난 10월 전의경 흡연율이 59.3%라고 밝히면서 그 수도 줄곧 줄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6일 만난 5중대 1소대원들 26명 가운데 20명 이상이 담배를 피웠다. 7년 전도 그랬듯이 지금도 전의경들에게 두달 꼴로 한번씩 돌아오는 외박·휴가와, 담배는 격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무기’로 쓰이고 있었다.
☞바뀔 때가 됐습니다
△ 화장실 가기는 정말 어려워=기자는 6일 12시간 동안 한번밖에 ‘그곳’을 못 갔다. 괴로웠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화장실을 못 가고 참는 것도 기동대원들에게는 ‘인내 대응’의 하나일까.
△ 그때만큼은 마주보지 말자=가끔 독자들도 목격했을 것이다. 대원들이 경찰버스 옆에 나란히 두 줄로 선 채 마주보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고참들은 대원들이 나란히 줄맞춰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을지 모르나,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 따뜻한 방바닥은 여전히 금기?=시위 진압 과정은 그 자체가 격투기에 가깝다. 때문에 대원들은 잦은 근육통에 시달린다. 전의경 모든 대원들에게 온돌방을 허하라!
※지난 6일 취재를 도와준 서울경찰청 1기동단 1기동대 5중대 대원 여러분과 이재성 중대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겨레>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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