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판결 판사들 이후 진로
참여판사들 반성 목소리…본사, 492명 명단 입수
1970년대 폭압적·초법적 규제인 긴급조치에 따라 황당한 판결이 잇따랐던 현실(<한겨레> 1월25일치 1·4면 참조)에 대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법관들 가운데 부끄러운 심경을 고백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가 당시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판결한 법관 492명의 명단을 입수해 이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는 45명에게 당시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 결과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맡았을 때 깊이 고뇌했다. 사표를 낼 것이냐 판결을 내릴 것이냐를 두고 양심의 갈등을 느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온 학생이나 시민에게 무죄를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판결을 내렸다.”(헌법재판관 출신 ㅂ 변호사) “나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포함한 형사사건이 적은 지방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솔직히 괴롭다. 그때 일은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다.”(대법관 출신 ㅅ 변호사) “현직에서 긴급조치와 관련한 사건을 접할 때는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는 살아 있는 법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판결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우리의 공동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등법원장 출신 이아무개 변호사) 이들의 말에선 현행법을 판결의 준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법관의 반성과 회한이 묻어난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전·현직 법관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관 실명 공개에 대해서도 반대하거나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492명의 법관이 이후 법원에서 어떤 직책을 거쳤는지 일일이 추적해본 결과 현직 고위 법관으로 재직중인 이가 12명에 이르렀으나, 이들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답변을 꺼렸다. 유신시대 이후 고위 법관을 지내다 퇴직한 이는 101명에 이르렀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 1412건의 판결 내용 전부와 판결을 내린 법관의 실명을 공개할 방침을 비쳤으나, 그 적절성을 두고 일부에서 논란이 일자 애초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애초 이번주 목요일께 국회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례보고를 하면서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분석 보고서’를 참고자료로 제출할 예정이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긴급조치 위반사건 주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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