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안에 있는 정수장학회 사무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유족 소송 걸면 ‘국가소유 땅’ 포기도 고려
1962년 국가에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재산 환수와 관련해 정부에서 교육부의 장학회 설립허가 취소를 통해 국고에 환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현재 국방부가 소유한 부산 땅 3만8802평은 원소유주였던 고 김지태씨의 유족이 소송을 내면, 소송 과정에서 국가의 소유권을 적극 주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0일 “정수장학회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유족한테 돌려주는 것과, 유족이 소송을 내면 국가가 항변권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돌려주는 방안이 현재 검토 중인 해법 가운데 하나”라며 “복잡한 법률적 문제가 있어 현재 법무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사위(거짓을 꾸며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설립 허가를 받은 때’는 공익법인의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일장학회 원소유주였던 김지태씨는 1962년 문화방송 주식 100%와 부산일보 주식 100%, 부산 땅 10만147평을 ‘국가’에 강제 헌납했지만 이 재산은 곧 다른 법인인 ‘5·16 장학회’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부일장학회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후 국가는 소유권 등기 등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이 틈에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 장학회가 이 재산을 가져간 것은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소유로 넘어간 땅에 대해서는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돌려주는 것은 어렵고, 유족이 소송을 내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 문제와 함께, 국가가 소송 과정에서 소유권 주장을 포기한 사례가 없어 정부는 고민하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의 시효는 국가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 이런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여러 방안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하라고 지시했다”며 “정수장학회의 설립 허가 취소와 항변권 포기는 소멸시효의 문제 등 법리적으로 살펴봐야 할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도 “국가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항변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1973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의문사한 고 최종길 교수 사건 때도 국가가 상고를 포기했을 뿐 항변권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 교수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판단은 법원 몫이어서, 정부 뜻대로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신승근 고나무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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