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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선진화냐 경제민주화냐’ 날선 공방

등록 2007-06-18 10:47수정 2007-06-18 14:02

6.10 항쟁 좌담회에 참여한 이병천(왼쪽부터), 이정우, 박세일, 김유배 교수가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6.10 항쟁 좌담회에 참여한 이병천(왼쪽부터), 이정우, 박세일, 김유배 교수가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성장 잘하면 분배도 가능” - “승자독식 심화”
박세일 “투자없이는 성장도 복지도 안된다”
이병천 “지난날 혜택받은 집단은 양보해야”
이정우 “지역불균형 이렇게 심한 나라 없다”

이번 좌담에서는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보수적 담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박 교수의 주장을 진보 논객인 이병천 교수와 이정우 교수가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먼저 발제에 나선 박 교수는 “성장을 잘하면 분배 문제의 반은 풀린다”며 “그래도 안 풀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적인 복지나 분배 문제가 같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라마다 속도와 방법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개방은 해야 한다고도 했다. 선진화론과 관련해서도 “대한민국을 투자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생산적인 투자활동이 많이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요약하고, 이를 위해 교육 경쟁력과 도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먼저 교육 경쟁력. “교육 경쟁력을 살리지 못하면 선진화는 안 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수월성과 자유경쟁 위주로, 획일성보다 다양성 위주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능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양질의 교육 기회를 못 찾는 분들은 바우처 같은 제도를 통해서 문제를 풀면 된다”고 했다. 나아가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세계 최고의 교육을 시켜서 세계 최고와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정부는 자기 국민을 버린 정부”라고까지 했다.

도시 경쟁력에 대해서는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에 대단히 문제가 많다”며 “이 세상에 균형발전이란 없다. 각 부분이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로 조화와 균형이 되는 것이지, 균형을 목표로 하면 균형도 발전도 다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두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투자허브가 될 수 없고, 투자 없이는 성장도 복지도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병천 교수가 “박 교수 얘기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금 상당한 정도로 성장 중심주의로 추진해 왔고, 개방을 엄청나게 한 경제다”라고 반박하고 나서자, 박 교수가 다시 말허리를 끊고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 성장률이 왜 세계 경제 성장률을, 왜 아시아의 다른 나라 성장률을 못 따라가나?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에서 60년대 후에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에 못 따라간 건 지난 4년간이다.”

이 교수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그것은 평등주의 때문이 아니라 97년 체제의 근본적 문제 때문이다. 미국을 따라가려는 시스템이 투자 기준을 단기주의로 압박하고, 그 틀에 못 올라가는 중·하위층에서는 투자가 부진하고, 이런 틀이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더 성장 우선으로 가고 더 도시집중으로 가면 투자는 더 안 된다. 새로운 한국 경제 성장 모델을 찾을 때 지난날의 불균형이나 양극화를 교정하면서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가 어떤 식으로 조화하면서 갈 수 있느냐가 우리의 고민이다. 박 교수의 선진화론은 이런 고민을 주변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세계화, 지식기반사회라고 하면서도 오랜 성장제일주의, 불균형 성장 담론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불균형, 양극화 속에서 혜택을 받은 집단은 이제 양보를 해야 한다. 희생의 교대, 그 기반 위에서 성장할 때 노동자도 따라가고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고, 일단 키워야 된다는, 너무 오래된 담론은 우리가 신뢰하지 못한다. 그런 주장은 승자 독식을 더 심화시키지 않을지 우려된다.”

이정우 교수도 가세했다. 그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에서 방금 박 교수의 얘기 정도라면 충분히 동의한다”면서도 “내가 반대하는 건 분배를 너무 무시하고 성장 일변도로 가는 정책이다. 그러나 성장이 된다고 빈곤이 해소되고, 분배가 개선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성장이 잘될 때 분배가 좋았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 문제에 대해선 “현재 하향 평준화가 아니다. 한국 학생들만큼 수학 성적이 높고 편차가 적은 나라가 없다. 고교까진 상향 평준화가 잘 돼 있다. 문제는 대학이다. 잘못된 대학입시를 바꿔야 한다. 대학이 자기 대학에 좀 더 똑똑한 애들을 뽑으려고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 대학의 입시 이기주의가 근본문제다.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교육부도 반쪽의 책임이 있다. 박 교수의 처방은 현 상황에서의 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니다. 다양성과 수월성이 필요하지만, 풀어가는 과정에서 너무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균형발전에 대해서도 “역대 정부가 말로만 지방발전 했지, 진정성을 가지고 (말)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방의 방치였다. 시장에 맡겨놓으니까 수도권으로 몰린 것이다. 그러니까 신도시를 지어서 더 비대화시키고 더 팽창시킨다.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못 된다. 신도시 정책 자체가 문제가 많다.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지방을 살리는 정책을 한번이라도 진정성을 갖고 해봤냐고 오히려 묻고 싶다. 이렇게까지 불균형 발전한 나라는 없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나라는 없다. 서울은 과잉투자된 시멘트 덩어리다”라고 했다.

김유배 교수는 “성장과 분배 문제는 어떻게 적정하게 조화시키냐이다. 순위와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대 정권마다 극단적으로 성장을 우선했다가 다음에는 성장을 전혀 도외시하는 부분이 원인이 아니었냐”고 지적했다.

[좌담회] 선진화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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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교수가 다시 반론을 폈다. “선진화론을 이 시대의 담론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시각 없이 과거에 대한 논쟁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성장이냐 분배냐가 아니라, 이제는 미래 비전의 담론을 갖고 구체적인 정책개발로 넘어가야 된다. 그러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서로의 경험을 종합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간헐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나라나 성장 않고 분배만 하는 나라가 있을 수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국가를 발전시키고, 백성들을 좀 더 편안하고 공정하게 잘 먹고 잘살게 만들 거냐는 쪽으로 논쟁을 끌고 가야 한다. 거기서 비전과 새로운 구체적인 방안을 만드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합의하고, 국민들의 공감이 따르고 그러면 정치세력이 우리나라를 그쪽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선진화론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논란은 이어졌다.

이병천=미래 비전의 공유가 잘 안 된다. 선진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할 때도 한 얘기인데 박 교수가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쟁점은 선진화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느냐는 거다.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냐는 얘기로 번지고 있다. 또 보편적 복지는 어떻게 되나. 박 교수의 책엔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온다.

박세일=복지정책에 대한 얘기는 나온다.

이병천=복지라는 말은 나오는데, 보편적 복지의 망을 깐다는 말은 없다.

박세일=사회안전망(있다).

이병천=사회안전망 가지고는 안 된다. 보편적 복지냐, 잔여적 복지냐. 이게 (선진국과 후진국이) 갈라지는 거다. 결국엔 성장 중심으로 가고 나중에 남으면 복지 한번 해보자는 것 아니냐. 이게 선진국으로 가는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느꼈다.

박 교수가 “민주주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생각하는 게 있다”며 “복지부분은 오늘 시간이 없어서 얘기 못하겠지만 (이 교수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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