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674차 목요집회를 열고 감옥에 갇혀있는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민주화 시대’ 보안법·집시법 위반등 수백명 감옥에
8·15특사서도 외면 우려…비리 정치·기업인과 대비
8·15특사서도 외면 우려…비리 정치·기업인과 대비
21명이 생사의 기로엔 선 아프간 인질 사태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으로 이 땅의 양심수들은 8·15 특별사면의 기대는커녕 더욱 ‘망각의 늪’으로 빠질 운명에 놓였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은 미디어의 포로가 된 지 오래다. 가령 미국에서 60년대의 베트남 반전운동에 견줘 오늘 이라크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군·산·언’복합체로 군산복합체와 한 몸이 된 미디어가 스스로 통제해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데 있다. 우리의 의식세계는 미디어에 의해 한정될 뿐만 아니라 가치관도 미디어의 잣대로 규정된다. 오늘 우리는 재벌 회장이 구치소에서 수면제 몇 알을 먹고 잠드는지 알 수 있지만, 1년 전 포항건설노조 점거투쟁의 관련자 9명이 2년6월~3년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지금 이 시간 감옥에 갇혀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국제앰네스티가 양심수로 선정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오종렬(69)·정광훈(68) 두 공동대표에 대한 1차 공판 소식을 나에게 전한 것도 보도가 아니라 〈한겨레〉 생활광고였다.
‘민주화된 시대’에 구속 노동자와 국가보안법·집시법 위반 양심수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이 모순된 현실에 대해 사회 구성원은 잘 모르고 있고, 잘 모르니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그나마 살아 있던 구성원 사이의 연대의식과 사회 정의의 요구는 약해진 반면, 물신주의 가치관이 팽배해지면서 이웃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무관심의 벽은 점차 두꺼워졌다. 지난날 양심수였거나, 양심수를 변호했던 오늘의 위정자들의 얼굴 두께도 그만큼 두꺼워졌다. 이 무관심의 벽 앞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꺼내들기조차 쑥스럽다.
실제로 그랬다. 지난 8월2일 청와대의 한 나들목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8·15 양심수 사면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 1천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모두 1937명인 서명자 명단에 낀 나는 그 자리에서 별 수 없이 기자가 됐다. 명색이 기자회견인데 관심을 갖고 찾아 온 기자가 별로 없어 펼침막 안쪽에 서기도 민망했다. 그렇지만 바깥쪽에 서기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권오헌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8·15 특별사면이 없다고 발표했는데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이나 경제인 대상이라면 맞지만, 양심수는 애당초 구속 대상이 아니다”라며 “우리 민족이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난 광복절에 양심수를 모두 사면 복권하라”고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 취임 뒤 특별사면은 일곱 차례였다. 그 가운데 양심수 사면은 단 두 차례다. 그나마 취임 사면을 빼면, 참여정부에서 구속된 양심수 석방은 2005년 광복절 60돌에 12명 석방과 일부 양심수 사면 복권이 전부다. 그동안 폭넓게 이뤄진 불법·비리 정치·경제인들에 대한 사면과 비교되는데, 그래서 아직 800여명의 ‘신념(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73명의 양심수가 ‘민주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잘 보이지 않을 뿐.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아직 1년여의 형기가 남은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의 부인 임경옥씨는 시민사회를 향해 “양심수 석방을 구호로 내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심수들이 겪는 교도소 생활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리고 그것을 바꾸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쓴소리했다. 프랑스 미셸 푸코는 〈감옥론〉을 쓴 사람답게 후배, 제자들과 함께 ‘감옥 감시대’를 꾸려 수인들의 일상을 개선하려 노력했다. 재소자 인권은 이주노동자 인권과 함께 그 사회의 인권 현실을 정확히 알려주는 가늠자다. 미셸 푸코를 때때로 인용하면서도 감옥 감시대는 꾸리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경청해야 할 소리였다.
“그 집회는 신고했습니까?”
“예,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금지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도 집회를 열었지요?”
“경찰이 금지할 때마다 재신고를 했습니다.”
공판검사의 질문과 피고인들의 답변은 거의 똑같이 반복됐다. 집회 허가제를 금지한 우리나라 헌법 21조는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505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숨바꼭질의 대상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주유엔대사로, 김종훈 수석대표는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된 날,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오종렬·정광훈 공동대표는 피고석에 섰다. 방청석이 40개뿐인 법정을 100여명이 찾아 많은 이들이 통로에 빽빽이 서서 방청했다. 줄줄이 땀이 흘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 민의는 그렇게 후덥지근한 날씨와 한 편의 지루하고도 서글픈 소극 안에 갇혔다.
서울 영등포시장 근처에 사무실을 둔 구속노동자후원회(02-2635-9492) 집계로, 현재 수감 중인 노동자는 63명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노무현 정권 아래 비정규직 구속 노동자는 늘기만 하더니 전체 구속 노동자의 70%를 넘어섰다.
“노동자들이 구속된 뒤에도 사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시민사회의 관심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이광열(39) 후원회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에 대한 실형 판결과 형량이 함께 늘고 있는 최근 경향을 두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