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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립군 후손 평양 내모는 보훈처

등록 2005-04-03 20:29수정 2005-04-03 20:29

1970년대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엄근학(52)씨가 부친 엄윤희(앉아 있는 이)씨와 함께 찍은 사진
1970년대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엄근학(52)씨가 부친 엄윤희(앉아 있는 이)씨와 함께 찍은 사진
보훈처 “중국 서류 못믿어”
8년째 불법체류 신세
서울서 아버지 초등학교 명부까지 뒤졌으나 감감

5개월 만에 다시 만난 엄근학(52)씨는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올해가 광복 60돌이라는데, 관청에서는 우리를 서류 위조범으로 의심하며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씨는 중국 시안(서안)에 본부를 뒀던 독립군 2지대 군의 엄익근(1890~1950·1982년 서훈) 선생의 손자(<한겨레> 2004년 11월8일치 7면)로, 1998년 한국에 들어와 8년째 ‘불법 체류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법무부에 ‘국적 회복 신청서’를 냈지만, 법무부와 국가보훈처가 중국 쪽 호적서류를 믿지 않아 국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기록해 둔 엄익근 선생의 ‘공적서’를 보면, 그는 3·1 운동 이후 조직된 ‘한국청년 전지공작대’에 가입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쫓겨 1920년께 중국으로 몸을 피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그는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된 뒤 ‘왕인석’이라는 가명으로 독립군 2지대 군의로 활동했다.

▲ 1939년 11월17일 광복군의 전신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으로 떠나기 직전 충칭에서 백범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간부들과 찍은 사진. 첫쨋줄 왼쪽에서 네번째 앉은 이가 백범 김구, 둘쨋줄 오른쪽에 두번째 앉은 이가 엄익근.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제공 \

남편이 떠난 뒤 부인 윤을남(1894~1943)씨는 아들 엄윤희(1916~1987)씨와 함께 서울에서 머물다, 1943년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해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피신한 뒤 귀국하지 못했다. 그 사이 엄익근 선생은 독립군 동료였던 송영집(1910~1984·1990년 서훈)씨와 결혼해 광복 이후 귀국하면서 양쪽의 인연이 끊겼다.


엄근학씨는 “보훈처에서 아버지가 엄익근 선생의 아들이란 것을 한국 쪽 서류로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엄익근은 평안남도 용강 사람인데다, 이들이 서울에서 살던 주소를 확인할 길이 없어 호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겨레> 취재진은 “문화대혁명 때 사라진 사진첩 속에 부친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이 있었다”는 엄씨의 증언에 따라 이달 초부터 매동·재동 등 역사가 깊은 서울 시내 초등학교 졸업생 명부와 학적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21일 서울 매동초등학교 25회 졸업생(1933년) 가운데 엄씨 부친과 한자까지 이름이 같은 ‘엄윤희’(嚴允熙·졸업번호 1065)를 찾아냈다. 그렇지만 엄씨 부친의 생일은 1916년 1월17일로 졸업생 명부에 나온 ‘엄윤희’의 생일 1917년 4월23일과 1년 이상 차이가 났다. 매동초등학교 관계자는 “옛날에는 호적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며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가족관계와 주소 등이 담긴 학적부가 발견되지 않아, 더는 추적이 불가능했다.

엄씨는 다음으로 수소문 끝에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1939년 11월17일에 찍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환송식 사진에 엄익근 선생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엄익근 선생과 1970년대 찍은 엄씨 부친을 견줘 보니, 눈매와 콧선이 거의 똑같았다. 영월 엄씨 중앙종친회,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유족회 등에서도 엄씨가 엄익근의 손자라는 사실을 인정해 확인서와 유족증 등을 발급한 상태다.

엄씨는 “보훈처가 말로는 독립 유공자 후손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생각은 안 한다”며 “할아버지가 피흘려 지킨 조국의 홀대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엄씨의 막내 동생은 보훈처가 요구하는 ‘서류’ 증거를 찾기 위해 이달 10일께 평양으로 들어갈 예정이다.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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