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왼쪽)이 지난 17일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오른쪽)과 함께 서울 영등포교도소를 찾아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역수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영등포교도소 노역수형자를 만나다
그들을 찾게 된 데에는 정몽구, 김승연 두 재벌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소식이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하다. 지난 17일 오후 영등포교도소를 찾았다. 정몽구, 김승연 두 회장이 우리 사회의 ‘유전무죄’를 여러 언론을 통해 화려하게 증언해주었다면, 그들보다 죄질이 낮아 벌금형을 받았지만 벌금을 못내 갇혀 있는 노역수형자들은 ‘무전유죄’를 온몸으로 증언해준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금형 매년 느는데 종이 붙이기 단순노동만
“나가면 또 뭐하지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우리나라 형법은 “벌금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납부해야 하는데 납부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벌금형 선고가 늘면서 미납 사례와 노역장 유치 집행 건수도 따라서 늘고 있다. 통계를 보면, 노역 종료로 출소한 사람의 수가 2002년 6234명, 2003년 9634명에서 작년 1만5876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 숫자는 지난해 총 출소자 8만100명의 20% 가까이 된다. 워낙 부족한 구금교정시설이 노역수형자들로 더 어려운 조건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총무과장을 비롯한 교도소 관계자들과 짧은 면담을 했다. 마침 김명곤 작업과장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노역장유치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쓴 저자이기도 했다. 현재 영등포교도소엔 114명의 노역수형자가 수용돼 있는데 그 가운데 15명만이 노역(취업)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취업율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교도소 쪽은 △수형기간이 한 달 이하의 단기수형자가 많고 △질병을 지닌 수형자가 많으며 △곧 출소할 수 있다면서 취업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고 △노숙 등으로 장기간 무질서한 생활을 한 탓에 작업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벌금을 못낸 노역수형자들 대부분은 노역을 하지 않고 그냥 갇혀 있다. 자유를 빼앗긴 대가로 하루에 보통 5만원씩 치는 벌금을 몸으로 갚고 있는 셈이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 생전 처음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려니 조금 긴장됐다. 교도관들의 안내를 받아 노역수형자 13명이 일하는 작업장이면서 일반 거실로 쓰는 큰 방에 들어갔다. 마침 운동시간이라 5명만 남아 종이봉지 붙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각각 갇힌 지 60일, 96일, 5개월, 1년6개월 됐다는 수형자들은 “나간 뒤가 더 문제”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형자(33)는 5년 동안 일한 백화점에서 해고되었다며 울상을 지었고, 다른 수형자(41)는 사회봉사로 대신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1년6개월 동안 오로지 종이가방 붙이는 일만 해왔다(!)는 또 다른 수형자(42)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벌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종이봉투 한 장당 8원, 한 달 평균 6천원의 작업상여금을 받는다고 한다. 내주기에 바쁜 재벌 회장들과 달리, 가두기에만 급급할 뿐 그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벌금형 집행 과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벌금형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됐고 노역수형자들의 실태와 함께 대안이 논의됐다. 영등포교도소 김명곤 과장도 그의 논문에서 연납·분납제, 집행유예제, 조기납부시 할인제의 도입, 벌금의 과태료 전환, 사회봉사 명령, 전자감시제, 전문노역장 유치시설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들이 들렸던지 마침내 정부도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형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벌금 미납자들에게 사회봉사 기회를 주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그 전에라도 재벌 회장이 내는 사회공헌기금으로 노역수형자들의 벌금을 우선 대납해주고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공장에서 일해 갚는 길을 마련할 수 없을까? 한낱 몽상가의 몽상이겠지만.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나가면 또 뭐하지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우리나라 형법은 “벌금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납부해야 하는데 납부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벌금형 선고가 늘면서 미납 사례와 노역장 유치 집행 건수도 따라서 늘고 있다. 통계를 보면, 노역 종료로 출소한 사람의 수가 2002년 6234명, 2003년 9634명에서 작년 1만5876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 숫자는 지난해 총 출소자 8만100명의 20% 가까이 된다. 워낙 부족한 구금교정시설이 노역수형자들로 더 어려운 조건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총무과장을 비롯한 교도소 관계자들과 짧은 면담을 했다. 마침 김명곤 작업과장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노역장유치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쓴 저자이기도 했다. 현재 영등포교도소엔 114명의 노역수형자가 수용돼 있는데 그 가운데 15명만이 노역(취업)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취업율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교도소 쪽은 △수형기간이 한 달 이하의 단기수형자가 많고 △질병을 지닌 수형자가 많으며 △곧 출소할 수 있다면서 취업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고 △노숙 등으로 장기간 무질서한 생활을 한 탓에 작업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벌금을 못낸 노역수형자들 대부분은 노역을 하지 않고 그냥 갇혀 있다. 자유를 빼앗긴 대가로 하루에 보통 5만원씩 치는 벌금을 몸으로 갚고 있는 셈이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 생전 처음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려니 조금 긴장됐다. 교도관들의 안내를 받아 노역수형자 13명이 일하는 작업장이면서 일반 거실로 쓰는 큰 방에 들어갔다. 마침 운동시간이라 5명만 남아 종이봉지 붙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각각 갇힌 지 60일, 96일, 5개월, 1년6개월 됐다는 수형자들은 “나간 뒤가 더 문제”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형자(33)는 5년 동안 일한 백화점에서 해고되었다며 울상을 지었고, 다른 수형자(41)는 사회봉사로 대신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1년6개월 동안 오로지 종이가방 붙이는 일만 해왔다(!)는 또 다른 수형자(42)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벌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종이봉투 한 장당 8원, 한 달 평균 6천원의 작업상여금을 받는다고 한다. 내주기에 바쁜 재벌 회장들과 달리, 가두기에만 급급할 뿐 그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벌금형 집행 과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벌금형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됐고 노역수형자들의 실태와 함께 대안이 논의됐다. 영등포교도소 김명곤 과장도 그의 논문에서 연납·분납제, 집행유예제, 조기납부시 할인제의 도입, 벌금의 과태료 전환, 사회봉사 명령, 전자감시제, 전문노역장 유치시설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들이 들렸던지 마침내 정부도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형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벌금 미납자들에게 사회봉사 기회를 주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그 전에라도 재벌 회장이 내는 사회공헌기금으로 노역수형자들의 벌금을 우선 대납해주고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공장에서 일해 갚는 길을 마련할 수 없을까? 한낱 몽상가의 몽상이겠지만.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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