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의 의과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앙또니 레이바(1학년생) 제공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2학년 되기위해 재수·삼수
경영학과도 30%만 진급
교육비 사회가 대줘
사회환원 의식하게 돼 대형 강의실엔 500여명의 학생들로 항상 소란스럽다. 앞자리엔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등교한 ‘범생’들도 있지만, 뒤쪽에선 재수생들이 연신 떠들어대며 수업을 방해한다.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 1289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의 1학년 강의실 풍경이다. 그런데 1학년생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대형 강의실에서 500여명이 수업중이고 부근 도시 님므에 또 다른 500여명이 있다. 그래서 정식 대학 명칭인 몽펠리에-님므 의대에만 1학년으로 등록된 학생이 1800여명이나 되다. 프랑스라고 다를 리 없다.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진 구성원은 워낙 많다.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 ‘생물계열’에 합격한 학생들에겐 진학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니 모든 의대에 1학년생이 넘쳐나게 된다. “어떻게 제대로 공부가 되겠는가? 더구나 의과대학에서!”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는 ‘평준화된 대학’, ‘기회 균등의 원칙’, ‘의사라는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빚은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이다. 이웃 도시 미요에서 온 앙또니(20)는 재수생이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소피아(19)는 지중해 날씨를 찾아 왔는데 외과의사가 꿈이다. 이웃 도시 베지에에서 온 로익(19)은 사설학원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노력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시험을 통과할 작정이다. 의대생들이 파티를 크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파티에 참석하려고 의대에 왔다는 괴짜 장(19) …. 이들 중 누가 2학년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경쟁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대학에 입학하려고 경쟁하는 우리와 상반된다. 대학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입학은 쉽다. 그러나 진급은 어렵다. 고교생까지는 석차나 등급 없이 절대평가를 할 뿐이지만, 대학에선 석차로 일렬로 세우고 가차 없이 낙제시킨다. 이 또한 우리와 반대다. 의대 1년생 가운데 2학년에 진급하는 학생의 비율은 정부가 정한다. 대개 10% 안팎이다. 몽펠리에-님므 의대 ‘2005-2006학년도’의 경우, 1학년생 1700여명 가운데 2학년에 진학한 학생 수는 227명뿐이었다. 진급시험 비중에서도 해부학이 ‘50’인데 견줘 인문사회과학이 ‘75’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런 조건 아래 중도 탈락해 다른 의료 관련 과로 가는 학생, 재수생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삼수생도 있고, 사설학원도 많은데, 1년 수강료가 2천유로(260만원) 정도로 중도에 그만 두는 수강생들에겐 날짜를 따져 수강료를 돌려준다. 2학년에 진학한 뒤에도 낙제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6년 과정을 마칠 때 치르는 국가시험에선 전국 석차를 주는데 전문분야 선택이나 활동 지역 선택이 석차 순으로 정해지므로 끝없는 경쟁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처럼 입학 이후 진급·탈락 경쟁은 의대가 가장 심하지만, 경쟁 없이 진급하는 학문 분야는 없다. 경영학과의 경우 2학년 진학률은 30% 정도다. 프랑스 전체에서 1·2년 과정을 2년 동안에 마치는 학생은 25~30% 정도이고, 3년 안에 2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퇴학이다. 절반 이상이 3학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한다. 무상교육에 따라, 학비가 없는데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진급시킬 이유가 없다. 의과대학도 학비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의대생이 되려고, 또 의대생이 된 이후에도 엄청난 교육비를 지불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보면 분명 다른 세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프랑스의 비교적 탄탄한 ‘보편 의료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의 하나다. 의료인이 되기까지 교육비를 사회가 대줬기 때문에 사회에 되돌려준다는 사회환원의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경영학과도 30%만 진급
교육비 사회가 대줘
사회환원 의식하게 돼 대형 강의실엔 500여명의 학생들로 항상 소란스럽다. 앞자리엔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등교한 ‘범생’들도 있지만, 뒤쪽에선 재수생들이 연신 떠들어대며 수업을 방해한다.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 1289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과대학의 1학년 강의실 풍경이다. 그런데 1학년생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대형 강의실에서 500여명이 수업중이고 부근 도시 님므에 또 다른 500여명이 있다. 그래서 정식 대학 명칭인 몽펠리에-님므 의대에만 1학년으로 등록된 학생이 1800여명이나 되다. 프랑스라고 다를 리 없다.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진 구성원은 워낙 많다.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 ‘생물계열’에 합격한 학생들에겐 진학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니 모든 의대에 1학년생이 넘쳐나게 된다. “어떻게 제대로 공부가 되겠는가? 더구나 의과대학에서!”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는 ‘평준화된 대학’, ‘기회 균등의 원칙’, ‘의사라는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빚은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이다. 이웃 도시 미요에서 온 앙또니(20)는 재수생이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소피아(19)는 지중해 날씨를 찾아 왔는데 외과의사가 꿈이다. 이웃 도시 베지에에서 온 로익(19)은 사설학원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노력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시험을 통과할 작정이다. 의대생들이 파티를 크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파티에 참석하려고 의대에 왔다는 괴짜 장(19) …. 이들 중 누가 2학년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경쟁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대학에 입학하려고 경쟁하는 우리와 상반된다. 대학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입학은 쉽다. 그러나 진급은 어렵다. 고교생까지는 석차나 등급 없이 절대평가를 할 뿐이지만, 대학에선 석차로 일렬로 세우고 가차 없이 낙제시킨다. 이 또한 우리와 반대다. 의대 1년생 가운데 2학년에 진급하는 학생의 비율은 정부가 정한다. 대개 10% 안팎이다. 몽펠리에-님므 의대 ‘2005-2006학년도’의 경우, 1학년생 1700여명 가운데 2학년에 진학한 학생 수는 227명뿐이었다. 진급시험 비중에서도 해부학이 ‘50’인데 견줘 인문사회과학이 ‘75’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런 조건 아래 중도 탈락해 다른 의료 관련 과로 가는 학생, 재수생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삼수생도 있고, 사설학원도 많은데, 1년 수강료가 2천유로(260만원) 정도로 중도에 그만 두는 수강생들에겐 날짜를 따져 수강료를 돌려준다. 2학년에 진학한 뒤에도 낙제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6년 과정을 마칠 때 치르는 국가시험에선 전국 석차를 주는데 전문분야 선택이나 활동 지역 선택이 석차 순으로 정해지므로 끝없는 경쟁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처럼 입학 이후 진급·탈락 경쟁은 의대가 가장 심하지만, 경쟁 없이 진급하는 학문 분야는 없다. 경영학과의 경우 2학년 진학률은 30% 정도다. 프랑스 전체에서 1·2년 과정을 2년 동안에 마치는 학생은 25~30% 정도이고, 3년 안에 2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퇴학이다. 절반 이상이 3학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한다. 무상교육에 따라, 학비가 없는데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진급시킬 이유가 없다. 의과대학도 학비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의대생이 되려고, 또 의대생이 된 이후에도 엄청난 교육비를 지불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보면 분명 다른 세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프랑스의 비교적 탄탄한 ‘보편 의료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의 하나다. 의료인이 되기까지 교육비를 사회가 대줬기 때문에 사회에 되돌려준다는 사회환원의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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