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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삭발노동자 “힘들지만 옳기에…” 사회정의 위해 ‘비정규직’ 해결을

등록 2008-01-03 20:33수정 2018-05-11 15:54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뒷문에서 ‘비정규직 부당해고 철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올해 증권선물시장 개장 기념 행사장으로 종이비행기 등을 던지고 있다.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뒷문에서 ‘비정규직 부당해고 철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올해 증권선물시장 개장 기념 행사장으로 종이비행기 등을 던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시장 만능주의등 ‘거센 파도’
코스콤·이랜드·대학강사…
양극화 해소등 싸움 연대 필요

새해 벽두다. 새 집권세력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살려야 할 것은 한국 경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다. 많은 입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국민소득 2만달러’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회 양극화’가 명백한 증거로서, 병든 것은 한국 경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 질병의 핵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자리’인가가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노동자의 절반을 넘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지 않고는 사회양극화 해소든 사회통합이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망이 어둡다. 참여정부보다 더 시장만능주의, 성장주의에 기운 정권이 법과 질서를 강조한다. 그 법과 질서는 위장과 탈법의 이명박 당선인 스스로 증언하듯이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 이 명제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신분 ‘질서’의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태동한 근대 공화국의 핵심 요체다. 사회정의가 이루어진 곳에서 법과 질서는 지켜지지만 법과 질서가 강조될 때엔 항용 사회정의의 요구를 압살한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공화국의 기본정신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건국한 지 60년을 맞는 오늘까지 정착되지 못했다. 사회정의가 죽은 사회에서 약자는 굴종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이 굴종에 맞서 싸운 사람은 항상 소수였다. 그리고 그 소수에 의해 세상은 이나마 바뀌어왔다. 농성 100일째 되는 날 70여명의 다른 조원들과 함께 삭발한 코스콤비정규지부의 정인열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벌써 실망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싸움 시작하면서 환상에 차서, 희망에 차서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예상했어요. 옳은 것이 먼저예요. 제가 노동조합을 하게 된 것도 ‘이것이 옳은 것이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회피하면 안 된다’라는 거였거든요. 그 옳은 것을 해야 제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지금 자신은 하지 못하지만 이 투쟁이 오래 가도 끝까지 할 것 같아요.”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같은 인간인데 이럴 수는 없다.” 옳지 않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금력에는 힘이 있지만 정의에는 힘이 없다. 사회 진보란 따지고 보면 정의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은 어렵고 더디다. 실로 힘겹고 더딘 싸움을 옆에서 지켜본 사회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하면서 싸우는 소수의 편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싸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면 점차 불편함에 익숙해지거나 불편함을 덜기 위해 그 힘든 투쟁을 나무라면서 눈을 돌린다. 사회 구성원의 무관심과 냉대. 기륭전자, 이랜드 뉴코아, 코스콤, 지엠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대학강사 등 ‘비정규 장기투쟁’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싸움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특단의 해법은 없다. 다만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정의의 싸움에 연대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에게 이것 말고는 무기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지 않고 사회 진보를 기약할 수 없다면, 새해를 맞아 시민사회는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후원하는데 나서야 하지 않을까?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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