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문동만] 직설의 강물 - 實用이를 찾아서

등록 2008-02-25 15:52수정 2008-02-28 10:25

달래강 풍경 ⓒ 박은혜
달래강 풍경 ⓒ 박은혜
문동만

 

실용이란 놈을 찾으러 문경새재부터 달래강까지 숨차게 뛰어다녔다.
실용아 어딨니 실용아! 나보다 300살은 더 먹은 주목에게도 물어보고
새재를 넘는 사람들 굽어보다 일제 때, 송진 강제 공출하느라
몸에 깊은 칼을 맞은 조령 적송에게도 물어보았다.
관문에서 어묵을 파는 아저씨한테도 물어보고 백두대간에서 풍찬 노숙하기를

집인 양 하던 산사람에게도 물어보았다.

 

달래강의 다슬기에게도, 얼음장 밑에 숨은 꺽지에게도
무르팍이나 적시고 말 수심의, 종이배나 띄웠음 적당할
강물에게도 물어보았다. 한결같이 안다는 답이 없었다.
섬진강가에서 잔뼈가 굵은 쌍칼 형님께도 물어보았다.
그 강도 댐을 막으니 물길이 탁하고 물이 줄어 옛날에 비하면 어림도 없더라고
강가의 숫염소처럼 순한 풀을 씹을 뿐이셨으나,
그의 머리에도 단단한 뿔이 돋고 있었다. 여차하면 들이받을 듯,

 

묵언으로 살고 흐르는 것들은 실용이니 참여니 국민이니 독재니
전에도 살았던 것들이고, 저 잡것들이 지저귀 차기 전에도
순명대로 흐르고 살았던 것들이어서 그런지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모래톱은 어떻게 말했던가.
수백만 년 풍화를 겪으며 알알이 밀려 온 모래톱은
실용이란 놈이 모래무지처럼 제 품에 숨은 적도,
품어준 적도 없더라고 하였다.
여차하면 시멘트에 제 몸을 섞어주지 않을 듯하였다.
그래, 모래는 낱낱이 흩어짐으로 산하를 도와줘야 하리라


 

벙어리 삼룡이도 아니고 유령이 實用이!
연암, 다산이 생환하신다면
곡학아세의 표본들을 수원화성 기중기에 달아 삼박 오일 간 북어처럼
말려 때려줄 놈이로다 하실 것을 직감하면서
대답 없는 실용이를 찾아 부르고 불러보았다.

 

혹 그는 짝퉁 이순신이었던가
-짐에게는 하루 12척의 바지선을 운송할 수 있는 운하가 필요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업자들과 토호들의 이익과 정권 유지를 위하여
능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졸지에 물리쳐야 할 왜적인 양 오인 표적된 우리는
실용이를 찾아 족치러 날밤을 새며 쫓아다녔으나 빌어먹을
탄금대에 빠져죽었는지 남한강에 쓸려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단언컨대 아무리 실용적으로 실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실용이는 들어간 만큼 돈을 되돌려줄 자도,
만인을 강물에 띄워 평온히 유람시킬 자도,
물이 썩으면 그 모든 강물을 갈아줄 자도,
똥물을 더불어 마셔줄 자도 아니었으며,
국내산 생수가 떨어지면 에비앙 생수, 바이칼 호수를 공수해 들이킬 자들,
그리하여 실용이는 이 나라 이 산하가 제 것이 아닌 것들.
내가 얼핏 본 실용이는 전봇대 뽑힌 자리에 여전히 전봇대가 있는 줄 알고
'개발'을 높이 들어 조건반사 하듯 오줌이나 갈기는 것들.

 

자신의 멀쩡한 내장을 스스로 파헤쳐 건강하게 살아가는 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작 20년도 못 살 인간의 망상을 비웃으며 강물은 흘러가고
은유가 아니라 직설로 직설로 욕지기를 뱉으며 흘러가고
서정과 정치는 딴 몸이 아니라 꾸짖으며 흘러가고
눈 털어낸 솔잎은 더욱 푸르게 허공을 찔렀다.
그리하여 강물은 곡선이었고 비명은 직설이었다.


문동만 약력 = 시인. 충남 보령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가 있다. <일과시> 동인과 현실주의 작가 네트워크 <리얼리스트100>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현실주의 작가네트워크인 ‘리얼리스트 100’, 문화연대는 한반도 운하 예정지를 답사하며 훼손 우려에 처한 이 지역의 문화와 자연을 시와 산문에 담기로 했다. 이 답사에 참여한 작가들은 운하 건설의 폐해와 환경·문화의 훼손을 알려내고자 하며 지난 1월 23일 출정식을 가진 바 있다. 작가들은 강 주변을 답사하며 운하 예정지의 문화와 자연, 사람들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참여 작가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면서 현실주의 작가 네트워크 ‘리얼리스트 100’ 의 회원인 김하돈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 작가를 중심으로 소설가 안재성(<장편소설 파업>, <경성트로이카>, <이현상 평전>), 소설가 윤동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 소설가 이인휘 (<활화산>, <내생의 적들>, <날개달린 물고기>), 시인 박일환(<시집 푸른 삼각뿔>), 시인 문동만 등이다. <인터넷한겨레>는 이들 작가의 답사기와 사진을 싣는다. 편집자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