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비판 본격화
‘ 민주화-근대화는 양자택일 관계 아니다
‘ 민주화-근대화는 양자택일 관계 아니다
지난 23일 출간된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공동대표 이영훈·박효종·차상철)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본격화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이 책이 “좌편향에 맞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옹호했다”며 크게 반겼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은 과거 친일·독재 세력의 자기 변호용 책자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한국판 후소사 교과서”=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 한국근·현대사>를 한 마디로 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낸 후소사판 역사교과서와 다를 바 없다고 평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도 “후소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고 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포럼 교과서’가 동학을 보수적인 근왕주의적 농민봉기(반란)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 “몇 가지 구호만 보고 판단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1987년 6월항쟁 직후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10만 노동자가 모여 외친 구호 스무개 중 첫번째가 ‘두발 자유화’였다”며, 한국사회를 바꾼 그 사건을 ‘두발 자유화’란 구호로만 평가하는 게 옳으냐고 반문했다. 한 교수는 또 포럼 교과서가 노비문서 소각과 천민대우 개선 등을 주장한 ‘폐정 개혁안’ 12개조를 ‘일종의 야사’에 지나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안병욱 교수는 포럼의 그런 시각이 결과적으로 일본이 식민지배를 했기에 한국이 근대화될 수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돼 있고, 그것은 “일제가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조선반도 역사의 정체론, 타율성론을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분석했다.
■ ‘민주화-근대화’ 이분법 오류=교과서포럼이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한국 근현대사 주체를 이분하고 그 둘 사이를 “근본적 대립” 관계로 설정한 데 대해 한홍구 교수는 “이는 마치 민주화해서 가난해질거냐, 경제발전해서 잘살거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 둘을 이항대립식 양자택일 관계로 설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 우리 경제가 더 성장하고 세계적 위상도 더 높아지지 않았느냐”며 그것은 ‘양자 모두’이지 양자 택일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 교수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실로 광복 뒤 친일파들이 한국을 장악한 사실을 꼽고, “대응방법은 그런 역사 자체를 무효화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일단 기정사실 아래서 나라를 국민전체를 위하는 쪽으로 바꿔야 하고 그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창의성과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며 “객관성을 가장한 포럼식 역사는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계속 연장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친일세력 자기정당화 작업”=역사학자들은 민주화 세력-근대화 세력의 이항대립적 관계 설정은 좌-우 대립관계 설정과 함께 광복 뒤 진행된 반일-친일(부일) 대립관계에서 불리한 처지에 처한 세력이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고자 사실을 오도한 것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포럼의 민족주의 비판과 관련해 주진오 교수는 “식민지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평가절하와 얽혀 있는 것”이라며 광복 뒤 민족을 부정했던 세력의 자기 정당화요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을 동일한 역사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보론’으로 처리한 포럼 교과서의 북한 배제는 결국 남한 절대화, 반공국가 주의 강화 및 미국, 일본 편향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이와 함께 “포럼 등 뉴라이트 진영의 뒤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있는데, 지금 안 명예교수가 한나라당의 두뇌집단인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사실은 이명박 정부가 포럼 교과서를 교육현장에 실제 적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준다”며 “그럴 경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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