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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벽창호 정부’ 넘어 ‘생활혁명’ 준비해야

등록 2008-06-12 14:05수정 2018-05-11 16:26

부모 손을 잡고 ‘6·10 100만 촛불 대행진’ 현장에 온 어린아이가 10일 밤 서울 태평로 거리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부모 손을 잡고 ‘6·10 100만 촛불 대행진’ 현장에 온 어린아이가 10일 밤 서울 태평로 거리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100만 촛불’ 의 의미
“내몸 주인은 나” 공화국 시민 첫경험
안팎 두루 비추는 촛불이 변혁 첫걸음
‘6·10 100만 촛불 대행진’,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광장에 넘실댔다. 21년 전 그날처럼 계층, 세대는 다양했지만 자발성으로 하나가 되었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신군부의 독재를 물리치고 형식적 민주주의의 지평을 연 그날과 다른 점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위협받는 생명권 요구와 촛불의 힘이다. 교복 입은 고등학생,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 직장인, 대학생,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었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성난 민심에 수출입업자들의 자율규제로 답하는 벽창호 정부를 향해 “고시철회, 협상무효!”라는 구호는 “이명박을 심판하자!”로 발전했다. 한달 넘게 지속된 촛불시위, 시민들은 ‘광장엠티(MT)’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누구를 섬기는지 확인하고 있다.

촛불시위의 배후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이명박 정부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 이전에 대운하 계획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의 영어 몰입교육 발상, 4·15 학교 자율화 조처, 의료와 물, 전기의 사유화, 공기업의 사기업화 등으로 정권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시이오(CEO)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나라가 기업이 되었듯이 나라의 공적 부문들이 온통 사익과 이윤 추구의 각축장이 되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불린 ‘강부자’들로 보란 듯이 내각을 구성하더니 국민의 건강권까지 저당잡히려 든다.

‘747(연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이나 뉴타운으로 욕망을 부추기는 것으로 쉽게 권력을 장악한 탓일까? ‘잃어버린 10년’을 되뇔 뿐 준비 없이 권력을 장악한 세력의 오만과 독선이 지나쳤다. 임계점을 넘어 “내 몸의 주체는 나”라는 근대의 기본 명제까지 부정하고 나섰다. 여중·고생들이 먼저 촛불을 든 것은 가장 억압당한다는 점 외에 ‘급식당하는’ 몸의 항거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투표한 국민들까지 ‘몸의 주체성’을 거부당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촛불은 지배세력의 전근대로의 퇴행에 맞선 근대의 몸의 저항이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가 광장에 나선 시민은 두려운지,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와 안국동 들머리에 육중한 컨테이너 철벽을 쳤다. 과거에는 공권력에 맞선 민중이 해방구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쳤는데 오늘은 권력이 스스로 철옹성을 치고 그 안에 숨었다. 바리케이드 없는 해방구, 거기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권력도 조중동의 언론권력도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시민들이 활기차게 노래 불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이 선 지 올해로 60년, 새삼스럽게 울려 퍼지는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마침내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선언하고자 함인가. 그래서 촛불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의 거듭남을 알리는 신호인가?

홍세화와 함께한 ‘시민발언대’

나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남다른 감회가 되어 다가온 것은 다른 공화국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1871년 파리 코뮌 전사들이 페르 라셰즈 묘지 벽에서 정부군에게 총살당할 때 마지막으로 외친 소리가 “공화국 만세!”였는데, 2002년 극우파가 대통령 선거 결선에 나오게 되었을 때 항의 시위에 나선 수만의 고등학생들이 외친 소리가 “공화국을 지키자!”였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무임승차했다. 그나마 역사성을 가진 ‘민주주의’와 달리 ‘공화국’에는 역사성이 전혀 없다. 이명박 정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의식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도에 빚지고 있는데 건강권을 저당잡힌 몸들이 항거의 준거로 민주공화국을 내세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자칭 보수단체들이 ‘법 질서 수호, 자유무역협정(FTA) 촉구 궐기대회’를 열었다. ‘사탄’들에게 ‘거짓 촛불을 끄라’고 요구하는 집회에서 한 연사는 “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그들의 정신 함량은 모든 것을 북한으로 통하게 한다. 촛불 광장 시민과 동시대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게 우리 사회다. 인터넷 생방송과 동영상으로 소통하고 온오프를 오가며 만났다가 흩어지는가 하면 다시 만나는 시대. 나는 팔자에 없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 노릇까지 했는데, 이처럼 발랄, 경쾌하고 자발적인 2.0 디지털과 획일성과 타율성, 단세포의 아날로그가 동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촛불은 탈근대가 전근대에게 근대를 요청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흔히 유럽의 1968년 5월 혁명이 정치혁명으로는 실패했지만 사회문화적 변혁에서는 획기적 성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촛불 물결이 “이명박 물러나라!”고 외치지만 대통령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보는 시민은 많지 않다. 여당이 절대 다수인 국회도 앞으로 4년 동안은 바꿀 수 없다. 정치의 변화가 아직 멀었다면 6월의 밤을 뜨겁게 달군 촛불이 미국산 쇠고기가 불러온 생활의 정치를 넘어 사회문화적 변혁의 지평을 열 수 없을까?
6·10 ‘100만 촛불대행진’ 주요장면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절망해 왔다. 젊은이들까지 천박한 물신주의가 주입한 사적 욕망의 포로가 된 반면, 이웃에 대한 상상력에 기초한 열정이 사라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일신의 안락을 담보해 주리라고 훈육된 물질적 욕망과 그에 대한 자발적 복종으로 보였다. 그것의 반영이 이명박 정부이며 조중동 아니던가. 그것이 놀랍게도 촛불광장에서 여지없이 부정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촛불광장에서 만나는 우리 자신을 보며 서로 놀라고 있다. 설렘과 금방 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조바심으로.

과연 우리는 나와 내 자식의 생명권 요구에 머물지 않고 이웃과 자연의 생명권을 요구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할 줄 아는 진정한 시민이 될 것인가. 그리하여 촛불이 우리의 일상을 바꿔낼 것인가. 대운하를 저지하고 학교 자율화가 아닌 학교 민주화를 획득하는 교두보를 구축하고 조중동 헤게모니를 일상에서도 극복할 것인가. 물, 전기, 의료, 공기업의 사유화에 민주공화국의 공공성으로 맞서는 일상의 혁명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촛불은 바깥을 향하는 동시에 우리 내부를 비춰야 한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계속 촛불”-“지켜 보자” ‘집단 지성’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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