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리퍼
[한겨레가 만난 사람]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첫 외국인 이사장 스티븐 리퍼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첫 외국인 이사장 스티븐 리퍼
2년뒤 NPT 무효화 가능성 커
한·일, 과거보다 미래 말할때 “운명의 여름, 오전 8시15분. 아침의 정적을 깨는 B-29기의 폭음. 푸른 하늘에 낙하산이 떨어졌다. 그리고 섬광-굉음-정적-아비규환.” 63년 전인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작은 소년(리틀 보이)’이라는 별명을 지닌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의 참상을, 지난해 8월6일 발표된 히로시마 평화선언은 첫머리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로 히로시마는 쑥대밭이 됐고, 그로부터 1년 안에 14만여명이 숨졌다. 이제까지 이 사건으로 20여만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 가운데 재일동포도 2만여명이나 포함돼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로 신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피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감정은 그리 동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일본이 자기들만의 피해만 강조하고 있지, 그 근본원인인 침략은 외면하고 있다며, 일본 쪽의 자세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4월 원폭 피해자인 히로시마 시민의 처지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반핵·평화운동을 주업무로 하는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이사장에 처음으로 외국인이 기용됐다. 그 주인공인 스티븐 리퍼(61·사진·미국)를 현지에서 만나, 한국인의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최근 한국과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난 미라 스타우트가 쓴 <천그루의 밤나무>라는 책을 봤다. 그 여성 작가는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가 20대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 가운데 한국의 식민지 시대의 일과, 한국전쟁 때의 얘기가 나온다. 그 책을 읽고 일본이 한국에 정말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일본의 악행을 규탄하는 한국인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도 있다는 듯, 유창한 일본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 피폭자들은 거기(일본의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피해의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히로시마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것을 (한국 사람이)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일본이 한 짓을 알지만, 이것이 일본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쁜 것은 전쟁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핵 사용을 다시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없애야 한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사람들의 시각과 다르다. 미국과 일본도 원폭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하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역사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 감정적이 되기 쉽고 분노가 일어난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여유가 없다. 핵무기, 환경파괴, 온난화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모두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위험을 피해 살아남느냐가 중요하다. 세계가 모두 힘을 합쳐 핵과 자연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매달리기에는 미래를 위해 핵무기를 완전 폐기시키는 게 더욱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북한 적대시 말고 대화해야
통일·핵 포기도 이룰 수 있어 “201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까지 앞으로 1~2년 사이에 핵무기가 없어지느냐, 핵무기를 사용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2010년 회의에서 군축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다면, 조약이 무효화할 가능성이 많다. 그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핵무기로 이란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쟁을 해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두 가지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핵폐지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전쟁 때부터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친한 친구다. 친구가 함께 나서 전쟁을 반대하고,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면 미국이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세계의 여러 나라도 한국과 일본을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미국이 그런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북한 핵에 대한 해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평화센터에는 적이 없다. 일본과 한국에는 (북한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북한을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전기도 없고 식량도 없는 약한 나라, 어려운 나라다. 그런 나라를 도와야 한다. 한국도 도와야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적대감을 계속 가지면 통일할 수 없다. 사이좋게 지내면 통일할 수 있다. 북한을 적대시하면 핵 포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팔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포기 대가로 평화보장이나 경제지원 받는 방식으로 할 움직임도 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국엔 1965년 처음 갔었다”는 그는 “지난해 가봤더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첫 방문 때 한국의 여인숙에서 자고 있는데 도둑이 들어와 놀라서 깨자 창문으로 도망갔다. 그 당시는 한국의 모든 건물에 열쇠가 없었다. 이번에 가보니 너무 근대화됐고 깨끗해졌다.” 그는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함께 핵 폐기 운동을 해나갈 엔지오(NGO) 단체를 찾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마에다 고이치로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장은 그가 온 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세계 무대에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일본인보다 미국인이 하는 게 거부감이 적고 호소력도 큰 것 같다. 시에서 역점적으로 하는 세계평화시장회의도 그가 이사장이 된 뒤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를 이사장으로 한 것은 매우 성공적이다”고 말했다. 글·사진/히로시마 오태규 기자 ohtak@hani.co.kr
■ 스티븐 리퍼 이사장은 원폭 가해국 시민에서 피해국 평화운동가로 스티븐 리퍼 일본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이사장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미국인이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한 가해국 미국의 시민이, 피해자 나라의 시민 편에 서서 국제사회에 반핵평화운동을 펼치는 일을 하다니…. 별 조홧속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의문이 금세 풀린다. 우선, 그의 일본과 인연은 출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만큼 질기다. 한 살 때인 1848년 와이엠시에이(YMCA)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와서 7살까지, 그리고 20대 때 3년간 살았다. 또 84년부터 12년간 히로시마에서 살면서 경영컨설턴트 활동을 하는 등 이제까지 히로시마와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단지 일본에 오래 살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후 일본의 와이엠시에이 활동을 재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7살 때 아버지가 탄 도야마루가 태풍을 맞아 조난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복을 다른 여자에게 벗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살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 관련 일을 하는 일본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탓에 일본에서 내가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도 베트남전쟁 반대 활동을 한 평화 가족이다. 이런 가문과 성장 배경 탓인지, 그도 일본에 살면서 자연스레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마침 지난해 4월 평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회민주당 출신의 아키바 다다토시 시장으로부터 “히로시마와 세계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기꺼이 수락하면서 최초의 외국인 이사장을 맡게 됐다. 오태규 기자
한·일, 과거보다 미래 말할때 “운명의 여름, 오전 8시15분. 아침의 정적을 깨는 B-29기의 폭음. 푸른 하늘에 낙하산이 떨어졌다. 그리고 섬광-굉음-정적-아비규환.” 63년 전인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작은 소년(리틀 보이)’이라는 별명을 지닌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의 참상을, 지난해 8월6일 발표된 히로시마 평화선언은 첫머리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로 히로시마는 쑥대밭이 됐고, 그로부터 1년 안에 14만여명이 숨졌다. 이제까지 이 사건으로 20여만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 가운데 재일동포도 2만여명이나 포함돼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로 신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피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감정은 그리 동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일본이 자기들만의 피해만 강조하고 있지, 그 근본원인인 침략은 외면하고 있다며, 일본 쪽의 자세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4월 원폭 피해자인 히로시마 시민의 처지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반핵·평화운동을 주업무로 하는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이사장에 처음으로 외국인이 기용됐다. 그 주인공인 스티븐 리퍼(61·사진·미국)를 현지에서 만나, 한국인의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최근 한국과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난 미라 스타우트가 쓴 <천그루의 밤나무>라는 책을 봤다. 그 여성 작가는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가 20대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 가운데 한국의 식민지 시대의 일과, 한국전쟁 때의 얘기가 나온다. 그 책을 읽고 일본이 한국에 정말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일본의 악행을 규탄하는 한국인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도 있다는 듯, 유창한 일본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 피폭자들은 거기(일본의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피해의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히로시마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것을 (한국 사람이)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일본이 한 짓을 알지만, 이것이 일본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쁜 것은 전쟁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핵 사용을 다시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없애야 한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사람들의 시각과 다르다. 미국과 일본도 원폭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하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역사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 감정적이 되기 쉽고 분노가 일어난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여유가 없다. 핵무기, 환경파괴, 온난화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모두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위험을 피해 살아남느냐가 중요하다. 세계가 모두 힘을 합쳐 핵과 자연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매달리기에는 미래를 위해 핵무기를 완전 폐기시키는 게 더욱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북한 적대시 말고 대화해야
통일·핵 포기도 이룰 수 있어 “201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까지 앞으로 1~2년 사이에 핵무기가 없어지느냐, 핵무기를 사용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2010년 회의에서 군축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다면, 조약이 무효화할 가능성이 많다. 그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핵무기로 이란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쟁을 해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두 가지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핵폐지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전쟁 때부터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친한 친구다. 친구가 함께 나서 전쟁을 반대하고,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면 미국이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세계의 여러 나라도 한국과 일본을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미국이 그런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북한 핵에 대한 해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평화센터에는 적이 없다. 일본과 한국에는 (북한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북한을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전기도 없고 식량도 없는 약한 나라, 어려운 나라다. 그런 나라를 도와야 한다. 한국도 도와야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적대감을 계속 가지면 통일할 수 없다. 사이좋게 지내면 통일할 수 있다. 북한을 적대시하면 핵 포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팔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포기 대가로 평화보장이나 경제지원 받는 방식으로 할 움직임도 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국엔 1965년 처음 갔었다”는 그는 “지난해 가봤더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첫 방문 때 한국의 여인숙에서 자고 있는데 도둑이 들어와 놀라서 깨자 창문으로 도망갔다. 그 당시는 한국의 모든 건물에 열쇠가 없었다. 이번에 가보니 너무 근대화됐고 깨끗해졌다.” 그는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함께 핵 폐기 운동을 해나갈 엔지오(NGO) 단체를 찾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마에다 고이치로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장은 그가 온 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세계 무대에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일본인보다 미국인이 하는 게 거부감이 적고 호소력도 큰 것 같다. 시에서 역점적으로 하는 세계평화시장회의도 그가 이사장이 된 뒤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를 이사장으로 한 것은 매우 성공적이다”고 말했다. 글·사진/히로시마 오태규 기자 ohtak@hani.co.kr
■ 스티븐 리퍼 이사장은 원폭 가해국 시민에서 피해국 평화운동가로 스티븐 리퍼 일본 히로시마평화문화센터 이사장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미국인이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한 가해국 미국의 시민이, 피해자 나라의 시민 편에 서서 국제사회에 반핵평화운동을 펼치는 일을 하다니…. 별 조홧속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의문이 금세 풀린다. 우선, 그의 일본과 인연은 출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만큼 질기다. 한 살 때인 1848년 와이엠시에이(YMCA)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와서 7살까지, 그리고 20대 때 3년간 살았다. 또 84년부터 12년간 히로시마에서 살면서 경영컨설턴트 활동을 하는 등 이제까지 히로시마와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단지 일본에 오래 살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후 일본의 와이엠시에이 활동을 재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7살 때 아버지가 탄 도야마루가 태풍을 맞아 조난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복을 다른 여자에게 벗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살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 관련 일을 하는 일본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탓에 일본에서 내가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도 베트남전쟁 반대 활동을 한 평화 가족이다. 이런 가문과 성장 배경 탓인지, 그도 일본에 살면서 자연스레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마침 지난해 4월 평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회민주당 출신의 아키바 다다토시 시장으로부터 “히로시마와 세계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기꺼이 수락하면서 최초의 외국인 이사장을 맡게 됐다. 오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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