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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촛불 시민’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었다

등록 2008-08-14 21:53수정 2008-08-14 22:53

촛불, 100일을 말하다
1. 촛불은 내게 무엇이었나
2. 새로운 광장을 열다
3. 직접민주주의를 배우다
4. 통제와 권위를 뛰어넘다

5. 촛불은 왜 미완인가

촛불 집회에는 충만과 결여의 두 얼굴이 있다. 열망은 가득했으나 성취는 부족했다. 100여일의 촛불 집회를 현장에서 지켜봐 온 세 사람이 ‘미완의 촛불’에 대해 말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하면서 촛불 광장을 지켰다.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팀장은 촛불을 통해 진보정치를 실험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찍부터 촛불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왕성하게 촛불 담론을 펼쳤다. 이들 세 사람은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세 시간여 동안 토론을 벌였다. 13일에는 각 참석자들이 서면으로 다시 의견을 보탰다. 그 내용을 간추려 지면에 밝힌다. 좌담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 따로 싣는다.

지난달 5일 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석한 학생ㆍ시민들이 대형 촛불소녀 모형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지난달 5일 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석한 학생ㆍ시민들이 대형 촛불소녀 모형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촛불 100일이 낳은 최고의 열매는 ‘촛불 시민’의 탄생이다. 이 점에 대해 좌담자들의 의견 차이가 없었다. “예를 들어 촛불에 참여해본 ‘유모차 부대’ 여성들이 앞으로 촛불 이전처럼 살 수 있겠는가. 이들은 이미 세상에 대해 불편해져 있다. 계몽과 각성을 이룬 개인의 탄생은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김호기 교수의 분석이다.

김민영 처장도 “공동행동으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각성한 시민들이 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 조직이 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준 팀장은 “인터넷 소통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고 결의를 이끌어 내는 ‘낯선 행동 양식’ 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이번 촛불보다 더 명확한 대안을 지닌 운동이 솟구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촛불은 막힌다. 촛불 시민은 탄생했지만, 그들을 담아낼 조직적 그릇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응을 보면서, 촛불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없을 때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김 교수의 회고다.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이 표현하는 정치적 열망을 제대로 실현할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촛불 정치 세력’의 부재는 촛불 집회의 양상까지 규정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지만, 과거의 낡은 것이기도 했다. “촛불 집회조차 서울에 모든 사람을 동원해 참가시키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 팀장의 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초한 참여가 많았다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역 생활 세계에 소통 공간이 없으니까 온라인 카페가 발전된 측면이 있다.”

진보정당·시민운동 큰 도전
먹거리·교육 생활이슈 미완
비정규직문제 싸고 균열도

생활 이슈를 표현·소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온라인 참여가 활성화됐지만, 이를 오프라인에서 대변해줄 정치세력은 여전히 없고, 그것이 답답해 거리에 나섰더니 서울 중심의 대규모 집회만 벌였을 뿐 정작 생활 영역의 혁신에는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상에서 비롯한 먹을거리·교육·민영화 등의 생활 이슈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고 좌담자들은 평가했다.

기존 시민운동과 진보정당은 이 점에서 강력한 도전에 처해 있다. 촛불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인 김 처장과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장 팀장 모두 위기의식을 토로했다.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받은 첫 번째 대상이 진보정당이고, 그다음이 노동운동이고, 세 번째가 시민사회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장석준) “시민운동은 새로운 현상 앞에서 낡은 운동으로 전락할 것인지, 변화의 흐름을 타고 스스로 변신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김민영)

이들이 촛불 100일의 모든 면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 시민들이 ‘생활정치의 전면화’를 몰고 왔지만, 정작 그 핵심 의제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정규직 문제는 촛불 집회에서 제기된 여러 의제에 끼지도 못했다”고 장 팀장은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이른바 ‘진보세력’과 ‘개혁세력’ 사이에 넘어서기 힘든 균열이 존재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잠시 화제가 됐다. 김 처장은 “주경복 후보의 경우, 반대와 폐지로 일관하면서 대안을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며 “이것이 현재 진보·개혁 세력의 실체”라고 말했다.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촛불 정치가 이명박 정부의 강공에 의해 사그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지그룹을 결집시키고 나머지 집단은 배제하는 방식의 ‘두 국민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때의 ‘두 국민’을 5대5가 아니라 1대9 또는 2대8의 비율로 나눠 대단히 협소한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광범위한 국민을 배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바로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이번 촛불 집회보다 더한 통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 처장은 “그런 잠재된 불씨들을 촉발시켜낼 만한 능력을 갖추고 폭넓은 신뢰를 받는 정치·사회 조직이 새로 탄생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촛불 시민에 뒤이은 촛불 조직이 문제라는 것이다. <끝>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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