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60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메인화면.
명칭 변경에도 정부의 ‘건국60주년’ 행사 의지 확고
다음 아고라 청원 잇달아…청와대·행안부 비판 봇물
다음 아고라 청원 잇달아…청와대·행안부 비판 봇물
“8.15를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변경하는 것은 패배와 좌절 대신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기리자는 의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
8.15를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현경병 한나라당 의원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취지다.
8월15일까지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건국 60년 및 제63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으로 8.15 행사를 치르려던 정부가 반대 여론에 부딪쳐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으로 명칭을 바꿔 행사를 진행했지만,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광복회 등 독립유공단체와 역사학계는 “정부가 주도하는 ‘건국 60년’ 기념사업이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려는 시각을 가진 뉴라이트 학자들과 특정인을 ‘국부(國父)’로 만들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편향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민과 누리꾼은 광복절을 ‘건국 60년’ 기념행사로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공청회와 여론수렴 과정 없이 강행하는 것이 불만이다.
명칭 변경에도 불구 정부기관의 홈페이지와 정부청사 등을 보면, 정부의 ‘건국 60년’ 기념행사 강행 의지가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청와대 홈페이지를 열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큰울림 한강축제’ 행사안내가 팝업창으로 뜬다. 행사를 주관하는 행안부 홈페이지 위쪽에는 ‘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경축 대한민국 건국 60년’ 문구가, 행안부뉴스 코너에는 ‘미리 가본 건국 60주년 중앙경축식’ 안내글이 올려져 있는 등 노골적으로 ‘건국’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 도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광화문 복권공사 현장 가림막 주변에 대형 무궁화와 태극문양이 ‘건국60주년’을 뜻하는 숫자와 함께 걸려 있다. 정부 종합청사 건물 앞에는 ‘대한민국 건축 60경축’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인근 가로등에 ‘60 대한민국, 63주년 광복 기념’이라는 걸개에서, 유독 크게 인쇄된 ‘60’만 눈에 잘 들어온다.
▶ ‘식민통치 정당화·이승만 국부·박정희 찬양’ 등 뉴라이트 주도
김대중 정부 때 ‘정부수립50주년’ 기념행사 때는 잠잠하다가 이제와서 ‘건국60주년’ 논란이 이는 이유는, 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 대한 편향성 때문이다. 이들은 식민통치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고도 산업화를 찬양하고 있다. 이들이 이명박·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여기에 ‘건국60주년’이 강조될 경우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남과 북을 한민족으로 보고 있는 시각,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다.
진보신당이 14일 낸 논평에서 “보수우파의 식민지근대화론에 탯줄을 대고 있는 ‘건국60주년’은 항일 독립운동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이승만이 건국하고 박정희가 발전했다는 논리를 확대하려는 현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건국60주년엔 민족·남북의 역사·임시정부 등 의미 없어”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는 8월15일 광복절까지 ‘건국60주년’ 행사를 비판하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전은경씨는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일본과 중국에게만 뺏길 줄 알았는데, 광복절 이전의 역사를 정부에게 뺏기게 생겼다”고 꼬집었다. 임진성씨는 “광복절에 건국60주년 행사를 하는 이유가 뭐냐”며 “1948년 이전 역사는 없는 거냐? 지난 60년 만이 대한민국 역사냐?”고 물었다.
행안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장윤성씨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단군에서 출발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수립된 상하이 임시정부부터 사용한 것”이라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과 국호를 기준으로 본다면 ‘건국 60년’은 말이 되지 않는 논리”라고 주장했다. 김정미씨는 “헌법 전문에 따라 임시정부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인 만큼 개국년은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건국60주년’을 ‘정부수립60주년’으로 고치라는 청원(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7748)이 진행중이다.
누리꾼 ‘하군’이 13일 “정부가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건국60주년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깎아내리고 있다”며 “60년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이라면, 일본의 다케시마란 주장도 틀린 소리가 아니며, 중국의 동북공정도 인정하는 꼴”이라며 청원을 제안했으며, 15일 오전까지 149명이 참여했다.
‘jasmine’는 “헌법 정신을 저버리고 건국60주년이라고 사기치는 일을 중단하라”고 했고, ‘Soulmusician’는 “8월15일은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가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도심에서 만난 시민들도 ‘건국절’ 행사 추진에 비판적이었다.
김은영(26·상계동) “건국 60주년보다 광복 63주년을 더 크게 기념해야 한다. 명칭을 바꾸려 했다면 당연히 공청회를 했어야 했다”며 “일방적인 정부 정책 추진의 또다른 예가 될 것인데, 제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아무개(40·경남 마산시 내서읍)씨는 “광복 이전의 역사와 남한 정부 수립을 떼어서 볼 수 있나.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역사가 싹 사라져서는 안된다”며 “논의나 국민적 합의 없이 갑자기 이러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김진석(28·북아현동)씨도 “건국 60년을 기념하면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특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논할 때 남과 북을 떼어 놓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반면 황태훈(24·등촌동)씨는 “건국 60년이 더 의미 있다”며 “광복절을 기념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60년이 더 의미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건국절 행사에 반대해왔던 광복회는 정부의 8.15 기념행사 중 광복절 기념행사에는 참여하지만 건국절 기념행사에는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55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7일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와 그 주요 사업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63주년 광복절은 2008년 8월15일 끝나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미영 허재현 기자 kimmy@hani.co.kr
▶ ‘식민통치 정당화·이승만 국부·박정희 찬양’ 등 뉴라이트 주도
‘대한민국 건국60년 큰울림 한강축제’를 홍보하는 청와대 홈페이지 팝업창 화면.
‘건국60주년’을 ‘정부수립60주년’으로 명칭을 변경하라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는 다음 아고라 이슈 청원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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