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만난 사람] 언론개혁 앞장서는 정청래 전 의원
“정부의 방송장악·거대언론의 횡포와 싸울 것”
“‘소통령’ 최시중…KBS 뒤 타깃은 MBC 될 것”
“조선·문화일보 거짓보도 진실가려 책임 묻겠다”
“정부의 방송장악·거대언론의 횡포와 싸울 것”
“‘소통령’ 최시중…KBS 뒤 타깃은 MBC 될 것”
“조선·문화일보 거짓보도 진실가려 책임 묻겠다”
정청래 전 의원([사진])은 17대 국회 내내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2004년 언론의 경영자료 공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문법을 대표발의하는 등 이른바 ‘언론개혁’에 앞장서 온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그의 언론개혁 활동은 4월 낙선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6월부터 저녁마다 <한국방송>(KBS) 앞으로 달려가 “방송장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지난달 7일에는 집회 도중 ‘닭장차’에 실려가는 곤욕도 치렀다.
원외인사가 된 뒤 이제는 ‘거리’로 나선 정 전 의원을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전 의원은 “어제도 100명 남짓 나왔다”며 “정권의 뜻대로 정 사장이 해임되고 이병순 사장이 임명됐지만, 끝이 아니다.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정 전 의원은 한국방송 앞 촛불집회를, 너무 거창하고 이제는 낡아 보이기까지 하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는 모든 게 방송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국적인 촛불시위로 정권이 위기에 빠진 것도 방송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방송을 장악해야 한다고 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한국방송 다음에는 문화방송이 타깃이 될 것”이라며 “최근 거론되는 문화방송 민영화는 이를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민영화가 되면 국회 국정감사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야당의 감시도, 국민의 감시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면 정권이 통제하기 쉬워진다. 엠비시(문화방송)가 민영화되면 엠비(MB) 방송이 된다. 노림수가 거기에 있다.” 그는 “그동안 87년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기 때문에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최근 80년대식 공안정국이 벌어지는 등 곳곳에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되살아나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이병순 신임사장이 정부의 방송장악을 위한 ‘낙하산 인사’라면, 정연주 전 사장은 이른바 ‘코드인사’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 전 의원은 “마타도어”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2003년 애초 한국방송 사장으로 서동구씨가 낙점됐지만, 노조와 시민단체에서 ‘대통령 측근은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서씨가 물러나고 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장추천위가 구성돼 정 사장을 추천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사장추천위가 구성되지도 않았다.” 그는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노무현 정권의 핵심 의제였지만, 그때 한국방송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판하는 방송을 여러 차례 내보내, 국정홍보처와 ‘전쟁’까지 치렀다”며 “‘코드 사장’이라면 정부 정책에 이처럼 반기를 들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전 의원은 정부의 방송장악 기도와 관련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를 주시하라고 경고했다. “최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고, 실제 현 정권의 ‘소통령’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을 통상 2인자 자리로 적합한 총리나 국정원장이 아닌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힌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방송장악이 정권 차원에서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뜻 아니겠느냐.”
정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두 거대 보수신문과 법적 투쟁도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는 4월 총선 직전 정 전 의원이 한 초등학교 앞 행사에서 교감에게 “잘라 버리겠다”고 폭언했다고 보도했다. 선거 5일 전부터 두 신문은 여러 차례 관련 기사로 선거를 앞둔 정 전 의원을 융단폭격했다. 선거에 치명적이었다. 6천 표 남짓 차이로 낙선한 정 전 의원은 두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싸움에서 정 전 의원은 작은 승리를 거뒀다. 지난 7월 검찰조사 결과 두 신문의 보도가 한나라당 당원이 동원한 ‘가짜 학부모’의 진술에 기초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의원은 “그동안의 언론개혁 활동에 대해 날조 기사로 보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기자들이 제보 내용이 허위인 줄 몰랐다’며 기사를 쓴 기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고검에 항고했고,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원에 직접 제정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민·형사 소송, 정정보도 청구소송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반드시 진실을 가려,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론보도청구소송도 지난달 13일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반론보도문을 제목은 고딕체 50포인트 활자로, 본문은 본문 활자로, 사회면 상단에 게재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정 전 의원은 “정말 기뻤다. 거짓과의 오랜 싸움 끝에 첫 법적 승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신문에 반론보도는 아직 실리지 않았다. “조선일보 쪽에서 반론보도문 강제집행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반론보도문이 대문짝만 하게 나가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반론보도문 게재는 일단 항소심 이후로 보류됐다.”
언론과의 불화가 두렵지는 않은 것일까? 통상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인에게 언론과의 불화는 자살행위라고들 하는데. “299명 의원 중 5명만 부당한 언론권력에 맞섰으면 나만 표적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 언론을 무서워한다. 나라고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가 좋겠는가. 그러나 나마저 침묵하면 내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그는 “정계 입문 때부터 조선·동아 등과의 인터뷰 거부를 선언했고 실천해 왔다”며 “굴하지 않고 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의 언론 문제에 대한 관심은 86년 10월 건대사건(대학생 2천여명이 건대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을 결성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으로 400명 남짓 구속기소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보사에서 일했는데, 기존 신문들이 양비·양시론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이 제대로 안 되면 민주주의도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87년 민주화로 가장 수혜 받은 것은 사실 언론계지만 민주화의 열매로 태어난 언론자유가 언론의 횡포, 권력화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봤다”며 “그래서 2002년 ‘국민의 힘’이 언론개혁을 내걸고 시민단체로 출범할 때 공동대표로 참여했고, 정계 입문도 언론개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요즘 상황에 대해 낙관하지 않는다. 그는 촛불 정국에서 새로운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조중동 아웃’ 세력이 자연스럽게 시민들 속에서 나왔다. 언론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국민 세력이 생겨났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대중적 각성을 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뒷이야기
정정래 전 의원은 인터뷰 내내 정부의 한국방송(KBS) 사장 교체를 “방송장악 음모”로 규정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말미에 뜻밖에도 민주당의 태도를 비판하던 끝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시울까지 붉혔다.
정 전 의원은 “민주당이 팔짱만 끼고 촛불집회에 나오지도 않는다”며 “국민과 같이 호흡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지를 바라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전 의원은 이어 “당연히 촛불집회에 함께하며 시민들의 방패막이가 돼 줬어야 한다. 나라도 이번에 낙선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말하곤, 갑자기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경찰의 폭력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원외’의 무력감, 안타까움 같은 것이 복받친 듯 보였다. 정 전 의원 자신도 지난달 7일 경찰에 강제연행되는 수모를 겪었다.
잠시 뒤 마음을 가다듬은 정 전 의원은 “시민들이 처음에는 민주당을 욕했다. 그러나 지금은 욕도 안 한다. 이제 기대조차 없다는 뜻”이라며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4월 낙선 이후에 대해 “낙선 이전 못지 않게 바쁘게 보냈다”고 말했다. “5월 임기 말까지 의정활동을 했고, 이후 촛불집회, 인터넷 글쓰기, 소송 등으로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책도 내고 강연이나 글쓰기 등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을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중국을 알아야 우리가 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달 말 베이징으로 출국해, 인민대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년 동안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박병수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