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 국제본부의 연례 회의가 열린 16일 저녁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재단으로부터 피아노 선물을 받았던 김수예 양이 연주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소원 들어주는 ‘한국 메이크어위시 재단’
작은 콘서트 열고
동물원 일일 조련사로…
7년간 860명 ‘추억 선물’
웃음이 약이 되지요 “제 별명이 ‘12·12’예요. 헤헤.” 열네살 김수예양이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 ‘12·12’는 12월12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수예 아버지 김경수(41)씨의 억장이 무너진 날이기도 하다. 지지난해 얼굴 가득 열꽃이 핀 수예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김씨는 “백혈병이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핏기 없는 표정으로 피곤해 쓰러져 잠드는 딸을 보며 처음엔 ‘애가 크느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해에만 키가 10㎝ 넘게 훌쩍 자란 터였고, 한의원이나 약국에서도 별다른 조언을 듣지 못했다. 딸의 병을 좀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10년 전 구제금융 사태 때 실직한 뒤 부인과 이혼하고 홀어머니와 둘이서 수예를 키우던 김씨에게, 힘겨운 세상을 살아낼 희망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TAGSTORY1%%] 집이 있는 대전과 서울의 큰 병원을 오가는 동안, 엄마처럼 수예를 돌봐줬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 힘들어하던 수예에게는 비밀로 하고, 김씨는 혼자 병실을 빠져나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김씨는 “나중에 사실을 알고 엉엉 우는 수예를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16일, 그러던 아버지 김씨가 2년 만에 모처럼 활짝 웃었다. 예쁜 옷을 입고 ‘잘 차려진’ 무대에 오른 딸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예는 이날 저녁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 ‘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의 연례회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세계적인 비영리 단체로, 한국 재단 역시 2002년 설립된 뒤 난치병 어린이 860여명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수예는 이 재단을 통해 지난해 피아노를 선물받았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병원 생활을 오래한 수예의 현재 소원은 “아픈 어린이를 치료하고 도와주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아프기 전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도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지만, 병원을 다니게 된 뒤부터 학원을 못 가게 됐고 손가락도 점점 굳어서 꿈을 접어야 했다. 이날 작은 꿈을 이룬 수예는 “호텔에서 밥도 먹고 연주도 했다고 하니 학교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했다”면서도 “즐거운 추억이 생겨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는 어른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메이크어위시 재단 황우진 이사장은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은 우선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순간을 선물하는 것 자체로 면역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2년 전 수예처럼 소원을 이뤄본 경험이 있는 한은애(20·백석예술대 사회복지학과2)씨도 “꿈을 이뤄 봤다는 추억이 병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세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았던 한씨는 2006년 한 동물원에서 일일 조련사로 일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해 막연하게 동경해 오던 일이었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한씨는 “단 하루였지만 조련사 활동을 해보고 매력에 푹 빠졌다”며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학 전공을 택했지만 동물조련사와 사회복지사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할 만큼 좋은 기억이었다”고 말했다. 글/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동물원 일일 조련사로…
7년간 860명 ‘추억 선물’
웃음이 약이 되지요 “제 별명이 ‘12·12’예요. 헤헤.” 열네살 김수예양이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 ‘12·12’는 12월12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수예 아버지 김경수(41)씨의 억장이 무너진 날이기도 하다. 지지난해 얼굴 가득 열꽃이 핀 수예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김씨는 “백혈병이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핏기 없는 표정으로 피곤해 쓰러져 잠드는 딸을 보며 처음엔 ‘애가 크느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해에만 키가 10㎝ 넘게 훌쩍 자란 터였고, 한의원이나 약국에서도 별다른 조언을 듣지 못했다. 딸의 병을 좀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10년 전 구제금융 사태 때 실직한 뒤 부인과 이혼하고 홀어머니와 둘이서 수예를 키우던 김씨에게, 힘겨운 세상을 살아낼 희망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TAGSTORY1%%] 집이 있는 대전과 서울의 큰 병원을 오가는 동안, 엄마처럼 수예를 돌봐줬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 힘들어하던 수예에게는 비밀로 하고, 김씨는 혼자 병실을 빠져나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김씨는 “나중에 사실을 알고 엉엉 우는 수예를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16일, 그러던 아버지 김씨가 2년 만에 모처럼 활짝 웃었다. 예쁜 옷을 입고 ‘잘 차려진’ 무대에 오른 딸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예는 이날 저녁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 ‘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의 연례회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세계적인 비영리 단체로, 한국 재단 역시 2002년 설립된 뒤 난치병 어린이 860여명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수예는 이 재단을 통해 지난해 피아노를 선물받았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병원 생활을 오래한 수예의 현재 소원은 “아픈 어린이를 치료하고 도와주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아프기 전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도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지만, 병원을 다니게 된 뒤부터 학원을 못 가게 됐고 손가락도 점점 굳어서 꿈을 접어야 했다. 이날 작은 꿈을 이룬 수예는 “호텔에서 밥도 먹고 연주도 했다고 하니 학교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했다”면서도 “즐거운 추억이 생겨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는 어른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메이크어위시 재단 황우진 이사장은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은 우선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순간을 선물하는 것 자체로 면역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2년 전 수예처럼 소원을 이뤄본 경험이 있는 한은애(20·백석예술대 사회복지학과2)씨도 “꿈을 이뤄 봤다는 추억이 병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세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았던 한씨는 2006년 한 동물원에서 일일 조련사로 일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해 막연하게 동경해 오던 일이었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한씨는 “단 하루였지만 조련사 활동을 해보고 매력에 푹 빠졌다”며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학 전공을 택했지만 동물조련사와 사회복지사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할 만큼 좋은 기억이었다”고 말했다. 글/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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