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41
‘조국 근대화’라는 달라(명제)를 마치 쇠몽뎅이처럼 휘두르던 박정희 막틀(독재)이 70해름(년대)에 들어서는 “대망의 70해름” 그랬다. 일자리가 없고 가진 게 없어도 누구나 70해름에는 벅찬 하제(내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총칼로 때려 몰던 개망나니가 슬쩍 거짓부리는 맑티꾸럭(문화조작), 이를테면 뻔뻔스러운 놀투(장난)였다.
구만 리 높이 떠가는 수리의 앞길은 쭈욱 뻗어 있는 것 같애도 알로는(실지로는) 구름만 보인다. 하지만 한 치를 가는 데도 한낮이나 걸리는 지렁이에겐 일구어야 할 캄캄한 땅만 보인다고, 나는 나름으로 보이는 게 있어 ‘겉돌이글나(형식문학) 끝장의 밤’을 열자고 으르고 다녔다. 막틀(독재)의 꾸럭(조작)에 맞서려면 글나부터 온몸으로 꾸리는 ‘말림’이어야 한다. 나부터 이야기를 ‘말림’으로 꾸릴 터이니 누가 없는가. 소리도, 찰(시)도, 그림도, 찬굿(영화)도 온몸으로 빚어내자 그거였다. 하지만 늘 혼자만 떠도는데 오랜만에 민창기를 만났다. 창기는 나보다는 좀 밑이라 언애(형제)처럼 지내면서 나무심기꺼리(운동), 씨갈이꺼리(농촌운동)를 같이 해온 벗이다.
“난 말이요, 드락(무대) 위에서 마음껏 뽑다가 죽는 게 바램이거든요.” 늘 그러던 불덩어리였다. 그 불덩어리가 “잘 만났소, 내가 동양굴대(티브이·당시 동양방송)에서 아침 때결(시간)을 맡고 있으니 좀 나와 주시오” 그런다. “굴대(방송)둘레마저 가본 적이 없는 날더러?” “언니의 그 ‘말림’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해 부스스한 꼴로 나갔으나 굴대마루라는 게 엔간칠 않었다.
불빛이 뜨거웠다. 땀만 뻘뻘 흐리고 앉었는데 한 서넛이 마주앉아 찬굿(영화) <팔도식모>(전우열 감독, 박노식·김동원·김희준 출연)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찬굿 팔도식모?’ 내 먼개(차례)가 오자마자 나는 그 찬굿 도틈(제목)부터가 잘못됐다고 했다. 식모란 밥띠기와도 다르다. 일하는 이를 아주 깔보고 하는 말이다. 더구나 팔도식모라니, 식모라는 게 고장마다 다르다는 건가. ‘찬굿이 그래선 안 된다.’ 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내 말의 떠방(반응)이 좋다. 또 나와 ‘양담배 들여오기’에 마주해(대해) 말을 하자고 한다. 함께 했던 심련섭(<신아일보>)은 돈 주고 사는 사람 마음대로 하기로 하자, 그래야 담배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안 된다, 그리 되면 담배 씨갈이꾼(농사꾼)이 다 죽는다. 또 우리 담배 만드는 일꾼들의 하루일은 열넷 때결, 너무 고되다. 그것을 쭐쿼야 담배 맛을 좋게 할 거라고 하고 일어서며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나가리라’ 했다.
그런데 이참엔 민창기가 아니고 다른 이가 ‘70해름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도틈이 좋아 갔더니 굴대를 이끄는 이가 ‘대망의 70해름’이란 정부 뜻에 흠이 안 가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뭐라고? 나는 꼭 물찌(물똥)에 앉은 것 같았다. 더구나 누구 하나 할 말을 않고 있다. 끝머리쯤 가서야 내 먼개가 오기에 ‘에라’ 하고 거침없이 쏟아버리고 말었다.
“나에게 70해름은 대망(희망)이 아니었다. 갑자기 와르르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드라. 또 타당탕 소리에 번쩍, ‘정인숙’이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고, 또 아그그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일꾼 ‘전태일’이 온몸에 불을 질렀다고 하드라. 돌아가는 꼴이 이 꼴인데 뭐가 어째서 ‘대망의 70해름’인지를 모르겠다.” 하고 밤 열두 때결쯤 집에 들어서는데 창기가 바쁜 목소리로 알려준다. “언니(형), 빨리 비키세요. 언니의 굴대(방송)를 박정희가 보고 펄쩍 뛰고 있답니다.” 몇 날을 숨어 지냈다. 창기가 또 알려왔다. 다시는 날 못 나오게 하는 것으로 하고 매듭지었으니 만나잔다.
“언니, 언니가 우리 굴대에 조금만 더 나올 것이면 언니의 이름은 그야말로 조선팔도에 날렸을 겁니다. 해야 할 말을 못하게 하는 것도 대망의 70해름입니까, 개새끼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날릴지 모르나 백기완이의 알곳(실체)은 없어지질 않았을까….
나는 새벽마다 남산에 올라 ‘말림’을 했다. “풀나무 여러분! 사람들이 칼을 들어 여러분들의 목은 쳐도 뿌리는 못 칩니다. 아니 뿌리는 캐낼 수 있어도 훨훨 날아다니는 씨앗은 어쩌지 못하나니, 이제 여러분들은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스스로 몰아쳐야 합니다. 온몸의 말림으로 말입니다.” 나는 그때 <연합신문>(문화부장 정충량)에 찰(시)도 써 보냈다. “캄캄한 새벽/ 아각 남산을 깨우는 저 소리는 누구던가/ 쩌렁쩌렁/ 잠 못 드는 이들을 일으키는 저 소리” 이 때문에 굴대엔 다시 못 나갔지만…. 통일꾼

백기완
나는 새벽마다 남산에 올라 ‘말림’을 했다. “풀나무 여러분! 사람들이 칼을 들어 여러분들의 목은 쳐도 뿌리는 못 칩니다. 아니 뿌리는 캐낼 수 있어도 훨훨 날아다니는 씨앗은 어쩌지 못하나니, 이제 여러분들은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스스로 몰아쳐야 합니다. 온몸의 말림으로 말입니다.” 나는 그때 <연합신문>(문화부장 정충량)에 찰(시)도 써 보냈다. “캄캄한 새벽/ 아각 남산을 깨우는 저 소리는 누구던가/ 쩌렁쩌렁/ 잠 못 드는 이들을 일으키는 저 소리” 이 때문에 굴대엔 다시 못 나갔지만…. 통일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