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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겨레 죽인 등빼기 ‘10월 유신’ / 백기완

등록 2008-12-02 18:30

삽화 민정기 화백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43
아무리 잘 익은 감이라고 할지라도 입을 쩍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려 보았자 아니 떨어지는 것이 누룸(자연)의 흐름이다. 하지만 이 땅 갈마(역사)의 흐름 위엔 감이 하나 떨어졌다. 떫든 어쨌든 입속으로 똑 떨어졌다.

그거이 1972해 ‘7·4 남북 함께불기(공동성명)’였다. “누구의 짓낌(간섭)도 안 받고 싸우지도 않고 냇길(이념)과 짠까(제도)를 너머 우리 겨레끼리 하나 되자”는 ‘7·4 남북 함께불기’를 본 나는 괜히 바빴다. 걸었다. 밤이 깊어가자 어느 술집에 들어가 밤새 먹고 새벽에 나오면서 이제 곧 한나(통일)를 일궈갖고 와서 술값을 치루겠다고 하니 멱살을 잡는다. “때려라, 죽여라, 죽여서 발가벗겨라. 그래도 나는 한나를 일궈내고야 말겠다.”

“어? 이거 백기완 언니(형) 아니십니까?”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지, 나도 중학교 때 언니와 나무심기를 하질 않았소. 돈은 생각 말고 통일이나 지고오소.”

신이나 집엘 오니 여러 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 좀 듣자고 달려간 데가 들랭이(재야)들의 한자리.

나도 입을 열었다. ‘7·4 불기(성명)’는 한 줄도 빼고 더하고 할 수가 없는 통일의 할대(원칙)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고개를 저어야 할 게 있다. 첫째, 박정희가 그런 ‘불기’를 낼 제참(자격)이 있는가. 없다. 입때껏 박정희는 우리를 짓밟기만 한 것이 아니다. 통일이란 ‘통’ 말도 못 쓰게 주리를 틀어왔다. 그런 박정희가 통일을 말했다고 해서 가슴을 내놓을 수가 있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통일이란 무언가 말이다. 검뿔빼꼴(제국주의)의 짓밟기를 때려부수는 댄검(반제) 싸움의 이어나감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일제의 앞잡이이되 매우 무서운 앞잡이 짓을 한 것으로 보면 전혀 제참이 없다.

둘째, 박정희는 8·15 뒤 군대 안의 공산당 조직에 있다가 그것을 까밝힘으로써 여러 백 사람을 죽게 하고는 저만 살아나왔다고 한다. 이건 냇길(이념)은 어쨌든지 사람답지 못하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통일의 알기(중심)가 될 제참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셋째, 박정희는 ‘4달 불쌈(혁명)’을 깔아뭉갠 등빼기(배신)이니 어찌 통일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참 ‘7·4 함께불기’는 그런 박정희를 통일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서 통일 달라(명제)를 쥐여준 꼴이다. 그게 바로 우리네가 살고 있는 오늘의 바투(현실)다. 그러니 도마에 올려진 그가 내려오질 못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7·4 함께불기’를 뒤로 물리질 못하게 하고 어쨌든지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인가. 남을 짓밟는 검뿔빼꼴을 부셔(적)로 매기는 일이다. 나아가 남의 빠꾼(군대)들이 쳐놓은 금을 우리의 빼발(국경)로 치고 있는 억은 맑티(문화)를 없애고 마녘(남)과 노녘(북)이 서로 죽이기로 한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갈라서기를 도리어 아름다운 것처럼 거짓꾸민 갈라서기맑티(분단문화)도 몽땅 걷어내는 것이다. 이런 꼭짓(점)에서 ‘7·4’를 밀자. 그것을 미끼로 속임수를 쓸 수가 없게끔 밀자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는 안 될걸.” 그런다. 어렵긴 하다. 그러나 갈라섬은 어쨌든 죽음이요, 따라서 하나 되기는 목숨을 살리는 거라, 해야만 되고 또 하면 될 것이다.

그 뒤 갈마(역사)란 곧 불림(진보)이라는 걸 믿고 있는 이들과 앉은자리에서였다. “열나(만약)에 백기완이가 만들어도 ‘7·4 함께불기’를 그렇게 했겠느냐?” “아니다, 한 꼭지는 더 붙였을 것이다. 이 땅은 남북으로만 갈라진 것이 아니다. 모랏돈(독점자본)과 사람이 갈라서 있고, 착한 사람과 거짓뿌렁하고 갈라서 있다. 따라서 이제부턴 곧맴(양심)이 통일의 알기(주체)가 되도록 하자는 말을 넣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7·4 함께불기’가 나온 지 석 달쯤 지나고 나자 ‘유신’이 불쑥 하고 말었다.

나는 피를 게웠다. 이건 박정희의 네술째 등빼기(배신)다. 일제 때 한술, 8·15 뒤에 한술, 4달 불쌈 뒤에 한술, 그리고 이참의 등빼기. 하지만 이참 등빼기엔 땅불쑥하기(특징)가 있다. 박정희 스스로에게 들이댄 등빼기다. 아니 우리 겨레의 하제(희망)까지 죽이는 등빼기라. 목숨을 걸고 깨트려야 한다고 다지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참말로 이 땅엔 사람이 없구나. 뉘우칠 건 있어도 뉘우쳐야 할 사람은 없구나. 통일을 팔아 또다시 등빼기 짓을 하다니, 오천 해 갈마(역사)에 그런 등빼기가 또 있었던가!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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