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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찰니 문목사’ 그리워 눈물 왈칵 / 백기완

등록 2008-12-09 18:35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자락에 있는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필자(왼쪽부터), 계훈제 선생, 문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씨, 문 목사가 함께했다. 1989년 4월 문 목사가 방북하기 직전으로 보인다.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자락에 있는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필자(왼쪽부터), 계훈제 선생, 문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씨, 문 목사가 함께했다. 1989년 4월 문 목사가 방북하기 직전으로 보인다.
백기완-나의 한살매 48
내가 문익환 목사를 처음 만난 곳은 1975해 8달 18날, 장준하 선생의 집 역울(빈소)이었다. 함석헌 선생이 들어오시며 “어쩌다가 떨어졌담?” 그러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거, 떨어지는 거 봤어요?”

내 말에 역울은 한참 동안 숨소리도 잦아드는데 “나, 문익환 목사요, 그 빛나는 눈에 왜 그리 물기가 젖는 거요. 우리 나가서 목이나 적시죠” 하며 잡아끈다.

역울을 나서 골목을 돌아서자 파리가 왱왱하는 순댓집, 거기서 한 땅지(병) 비우고선 “목사님, 장 선생이 어떻게 죽은 줄 아시오. 멱빼기(암살)입니다. 아주 끔찍한 멱빼기.”

“그래? 어쩌자고 그 짓을 했을까요.”

“긴급조치 9호를 깨뜨리고저 앞장설 이는 장준하밖에 없다, 그렇게 보고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지요. 죽일 놈들, 어쨌든 장 선생이 앞장섰던 일을 누가 이어가야 하는데 ….”

“그야 백 선생이 나서면 되질 않소.”

“난 기독교 그쪽엔 잘 안 닿아서.”

쐬주 한 땅지를 더 비운 다음 나는 마치 푸석 솜에 부싯돌을 대드키 거댔다.


“거, 문 목사가 좀 나서면 안 되겠소?”

“장준하, 백기완의 거리싸움에 날보고 나서라고? 난 그런 일은 해본 적도 없고 성경 메베(번역)만 하느라 맞지도 않고.”

나는 바싹 다가갔다.

“넝감, 넝감하고 가장 가까웠던 찰니(시인) 윤동주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일제가, 그것도 때속(감옥)에 처넣고 멱빼기를 한 거 아닙니까. 그 뒤 넝감하고 가장 두터운 벗은 또 누구요. 장준하 아니요. 그 장준하는 누가 죽였어요. 일제의 앞잡이 박정희이거늘 왜 못 나서겠다는 거요. 혼자만 오래 사시겠다, 그 말씀이오? 아주마이, 거 쐬주 한 땅지하고 사발 둘만 주시오.” 하고 딸딸딸 따룬 다음 나부터 쭈욱 마시고선 “안 하실랍니까?”

“더는 안 되겠는데….”

“술도 못 하시겠다면 나서세요. 그리하면 장 선생을 땅에 묻을 때까진 나, 이 백기완이 울지 않으렵니다.”

“그래, 날더러 나서라?”

이때 슬쩍 웃음을 띠우던 문 목사는 언 땅에서 처음 나온 청개구리처럼 빛났다고나 할까. 나는 눈물겹게 쳐다보다가 “넝감, 그런데 말이요, 걸대(조건)가 하나 있수다. 뭐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목숨? 그거라면 좋다”고 해서 장 선생을 땅에 묻은 다음 나는 아내더러 돈 삼만 원만 달래갖고 어느 개고기 집에서 문 목사에게 내 구두깔창에 있던 글을 꺼내 보였다.

“낱말들이 무섭구먼.” “그야 좀 부드럽게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1976해 3달 첫날, 이른바 ‘3·1짜통(사건)’(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문 목사가 때(감옥)엘 가게 된다. 그 뒤부터 문 목사와 나는 그야말로 언애(형제)처럼 지내게 됐다. 이를테면 문 목사와 나는 갈마의 바투(역사의 현장)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문 목사는 우리말 쓰기를 그리 좋아했다. ‘사거리’가 아니라 ‘네거리’다 그러면 그리 좋아했다. ‘좌우’가 아니라 ‘왼쪽, 바른쪽’이라고 하면 어절씨구 들썩이고, ‘미인’이 아니라 ‘너울네, 나네’라고 하면 가슴을 벌려 활짝 웃고. ‘시’를 ‘찰’이라고 하면 갸우뚱하다가도 시는 짜내는 게 아니다, 찰랑찰랑 넘치는 거, 그래서 찰이라고 하니 무릎을 탁 치고.

백기완
백기완
그렇다, 문 목사는 목사가 아니었다. 찰니(시인)였다. 3·1짜통으로 때엘 가기 앞서 찰 다섯 발(편)을 내주며 어디에 좀 실어 달란다. 나는 <창비> 염무웅 교수한테 주었다. 문 찰니의 바발(작품)이라고.

하지만 문 찰니와 나는 찰을 보는 눈은 좀 달랐다. 긴수레(열차) 속, 젖을 먹이는 아낙에게 드리운 노을을 그렇게 잘 그릴 수가 없는 찰을 두고 “문 찰니, 그 아낙은 곧 내려 석십리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늦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자리에 누워보았자 사내의 성가심을 받다가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 삶의 바투(현실)를 함께 그려야지, 누룸(자연)의 아름다움만 그린다는 건 차라리 군빛(환상) 아닐까요?” “똑뜨름(역시) 백기완인 나와 달라.” 그랬지만 문 찰니의 때속 찰들을 우리 연구소에서 찰묵(시집) <꿈을 비는 마음>으로 꾸렸고, 그 뒤 이런 찰도 있었다.

‘어머니 봄이야 오고 있는데/ 머리맡에선 물이 얼었습니다/ 얼마나 추우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슴은 이렇게 뜨겁습니다/ 이제 일어나 얼음을 깨고 두 손을 잠가/ 손에서 얼음을 빼겠습니다.’

그 얼음은 무엇일까. 손에 박히고 이 땅에 박힌 그 얼음, 아무튼 그 찰은 글나갈마(문학사) 백해를 번쩍 드는 바발(작품)이 아닐까? 때속에서 한가위를 여덟 술(번)이나 보낸 문 찰니를 떠올리자니 눈물이 왈칵한다.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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