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 찾아서] KNCC 인권위, 그리고 자유언론실천선언 / 한승헌

등록 2009-02-26 18:17수정 2009-02-26 19:13

1975년 12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치하에서 기독교계 인권운동의 중심이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인권주간 연합예배에서 김준영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다.
1975년 12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치하에서 기독교계 인권운동의 중심이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인권주간 연합예배에서 김준영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38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와 인권탄압에 대처하기 위한 상시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종로 5가’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개신교) 쪽에서 제기되었다. 1973년 남산 부활절 예배 사건으로 박형규 목사 등이 구속되자 그런 움직임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해 11월 24일에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문제협의회에서는 교회 안에서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상설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후 기독교 성직자와 청년 학생들의 대량 구속사태에 직면하자 상설기구의 시급성이 절실해져, 마침내 다음해 5월 4일 케이엔시시 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 위원회는 모두 2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는 양호민(언론), 김용준(학계), 조지송(도시산업선교), 이태영·이우정(이상 여성) 선생 등과 함께 전문분야 위원이 되었다. 교회연합기구의 성격상 그 위원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므로 비기독교인이던 나는 처음엔 위원 참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속자나 인권문제를 다루려면 사건 당사자와 재판 현장을 잘 아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이상하게도 기독교인 중에는 시국사범의 변호를 맡은 분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고충을 호소하는 데 끌리어 나는 위원회로 들어갔다.

나는 객원 같은 처지여서 회의에서도 발언을 삼가고 있었는데, 어느 땐가 사회하는 목사님이 나 보고 “한 목사님도 한 말씀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다른 목사님이 황급하게 “목사님 아니에요”라며 바로잡자, “아 참, 죄송합니다. 한 장로님 ….” (장로님? 교인도 아닌데 ….) 이래서 폭소가 터진 일도 있었다.

위원회는 구속·연행자들의 석방을 포함한 인권문제 전반을 다루게 되어, 정부 쪽과 예민한 대결을 벌였는데, 나는 그것을 보람 있는 일로 알고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보다 앞서 같은해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언론에 대한 일체의 외부 간섭 배제, 언론기관에 대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 연행 일체 거부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강경대응의 일환으로 ‘동아’에 광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즉 정부기관이 광고주(기업 또는 단체·기관)에게 압력을 넣어 ‘동아’에 광고를 못하게 하는 보복을 했던 것이다.

이에 국민 각계에서는 ‘동아’를 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격려 광고’ 운동이 벌어졌다. 법조계에서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돈명·홍성우·황인철 변호사 등 몇 사람과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 모여 변호사들을 상대로 ‘동아’ 격려광고 성금을 모으기로 합의하였다. 광고란에 성금을 낸 변호사 이름과 격려 (또는 정부 규탄) 문구를 싣는 방식이었다. 대체로 호응이 좋았는데, 일부 변호사는 돈은 내겠으나 광고란에 이름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신문에는 물론이고, 모금 내용을 적는 내부 장부에도 이름을 적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런 성금이 모여 거의 한 달 동안 법조계의 격려광고가 ‘동아’의 광고란을 채울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 단체는 민족문학, 문학을 통한 현실 참여, 민주화 운동 등을 지향하는 문인들이 뜻을 함께하여 74년 11월 18일 결성되었다. 고은(대표 간사)·신경림·염무웅·박태순·황석영·조해일(이상 간사)씨 등이 주축이 되었으며, 구속자 석방· 기본권 보장·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 헌법 마련 등을 주장했다.

나는 ‘민족문학의 밤’(78년 4월24일), ‘구속문인을 위한 문학의 밤’(79년 4월27일) 같은 행사에 나가서 자리를 메우면서 자작시 낭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이 단체의 회원들은 글로나 집단행동으로 독재정권에 반대하다가 여러 사람이 연행·구금 또는 재판을 받는 등 고난을 당했다. 또, 그해 12월25일에는 ‘민주회복 국민회의’가 결성되었는데, 나는 중앙위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단체는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상임대표위원에 윤형중 신부, 대표위원에 이병린·이태영·김영삼·강원룡·함석헌 선생 등 9명, 운영위원으로 홍성우·함세웅·한승헌·김정례·김병걸·임재경씨 등을 선임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해 3월 필화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이 단체의 활동에는 별로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한승헌 변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