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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 찾아서] 서슬퍼런 탄압, 변호사인들 예외랴 / 한승헌

등록 2009-03-01 18:10수정 2009-03-01 23:50

1975년 1월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사퇴 거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이병린 변호사가 그해 3월 소 취하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오고 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그는 인권 변호와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지금도 후학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1975년 1월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사퇴 거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이병린 변호사가 그해 3월 소 취하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오고 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그는 인권 변호와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지금도 후학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39
내가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빚어진 여러 시국사건의 변호에 골몰하자 ‘몸조심’을 권하는 말들이 귀에 들려왔다. 진심으로 나의 신상을 걱정해주는 사람,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견제 내지 협박의 효과를 노리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었다. 미운 자를 변호하는 자도 밉다는 감정 논리라면 나는 미움의 대상이자 탄압의 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는 정보·수사기관의 감시 대상이 되어 도청·미행·문의·방문의 ‘객체’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초기에는 몰래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내놓고 했다. 사무실로 찾아오거나 밖에서 좀 보자고 하는가 하면, 내 차가 움직이면 따라붙기도 했다. ‘남산’에 연행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나에게는 피하거나 비켜설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다가왔다. 이번에는 이병린 변호사 구속사건이 터졌다. 이 변호사님은 일찍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존경받는 법조계 원로이자 재야 반독재운동에도 앞장서 오신 지도자였다.

1975년 1월, 그가 난데없이 구속 수감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곧장 나는 서울구치소로 가서 접견을 했다. 이 변호사님 말씀은 이러했다. 구속 전날, 기관원이 찾아와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을 사퇴하라며, 만일 불응하면 내일 간통죄로 구속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 이 변호사님은 그런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뒤에 알아보니, 간통죄 구속영장을 웬일인지 시국사건 비밀영장 담당 판사가 발부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법원으로 가서 일을 보고 ‘이 변호사님 구속 건에 관해서 뭐 좀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잠시 기자실에 들렀다. 그런데 기자들이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하기에 이 변호사님과 접견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뜻밖에도 일부 언론에 내 말이 기사화되어 나가자 곧장 풍파가 일어났다. 어떤 신문에서 ‘한승헌 변호인 전언’이라는 부제까지 달아놓은 탓인지 금방 ‘남산’의 기관원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상부에서 난리가 났다면서 몇 가지 따지는 식으로 묻기에 나도 냉랭하게 대답을 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인 21일 저녁 퇴근길에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연행되었다. 집에 들어가 알려주고 가야겠기에,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내가 실려 간 곳은 ‘마(魔)의 남산’이었다.

음침한 지하실에는 조사관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도대체 뭣을 조사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궁금해진 나에게,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아 보란다. 그중에서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유심히 읽어 보던 그 요원이 묻는다. “이 명단이 뭡니까?” 거기엔 이 나라의 지도자급 명사를 비롯하여 각계 인사 5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 혹시 이것이 또 무슨 조직의 명단인가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눈치였다. 하나, 그 이름들은 한달 전인 74년 12월에 나온 <위장시대의 증언>이라는 내 신간을 기증하기 위한 명단이었다. 그러자 그는 ‘그 책이 이거냐’며 서랍에서 바로 그 <위장…>을 꺼내 보인다. 그러고는 그 책 속의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을 가리키면서, 간첩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때에야 나는 ‘이번에는 나를 반공법으로 몰려고 하는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간첩으로 처형된 김아무개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피의자 신문이 진행됐다.

나는 참 어이가 없었다. <여성동아> 72년 9월호에 실린 그 글은 사형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에세이였다. ‘간첩’이란 ‘간’ 자도 김아무개의 ‘김’ 자도 없었고, 또 그런 것을 떠올리게 할만한 아무런 표현도 없었다. 그런데도 2년 반 전에 발표된 그 글까지 찾아내서 문제 삼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나를 노리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이병린 변호사의 구속 배경 ‘폭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다니, 참 겉 다르고 속 다른 정보기관의 본색 그대로였다.)

‘잠 안 재우기’ 시달림 속의 문답 설전으로 날이 밝고 나서 더욱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었다. 전날 밤 내가 혐의를 부인한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뒤집고 자백을 받으려는 심산이 보였다. 놀랍게도, 실내에 건장한 젊은이 세 명이 나타나더니, 그중 한 사람은 야구 방망이만 한 몽둥이를 들고 서서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사람이 훗날 자신의 ‘해고무효’ 소송을 맡아달라고 나를 찾아온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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