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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 찾아서] 결국 구치소로…변호인단 129명 / 한승헌

등록 2009-03-02 18:22수정 2009-03-02 19:00

1975년 5월 잡지에 기고한 글 ‘어떤 조사’를 빌미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필자가 법정에 섰다. 전례가 없는 변호사의 필화 사건을 맞아 사상 최대인 129명의 변호인단이 나선 화제의 재판이었다.
1975년 5월 잡지에 기고한 글 ‘어떤 조사’를 빌미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필자가 법정에 섰다. 전례가 없는 변호사의 필화 사건을 맞아 사상 최대인 129명의 변호인단이 나선 화제의 재판이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40
1975년 1월 21일, 이틀 밤에 걸친 철야(잠 안 재우기)조사는 내 체력으로 견디기는 힘든 고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버티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풀려났다. 억지 조작에 맞서서 내 할말을 다 하고 나왔다.

몸은 붙들려 다니면서도 할일은 해야 했다. 광고 탄압을 받고 있던 <동아일보>의 격려광고 성금 모으기를 계속했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문학인 165인 선언’ 발표 현장에도 나갔다.

그런데, 3월 14일 김지하 시인이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하다 2월 17일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는데, 한 일간지에 ‘인혁당 사건 조작’ 운운의 기고를 했대서 출감 27일 만에 다시 구속되었던 것이다. 나는 몇 분의 변호사들과 상의하여 변호인단을 만들고 그 변호인 선임계를 직접 서울지검에 가서 제출했다. 보통 문서 제출은 사무장이 하지만, 혹시 무슨 말썽이라도 생기면 괜히 사무장이 시달릴까봐 내가 직접 들고 가서 제출했던 것이다.

낮 방송에서 김지하 변호인단 구성 뉴스가 나간 직후 ‘중정’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보고 김지하 변호인을 사퇴하라는 요구였다. 내가 한 마디로 거부하자 저쪽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래도 나는 참고, 변호사의 책무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을 하면서 이해를 시키려고 했다. 상대는 다시 잘 생각해 보라는 위협적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날 또 전화가 왔는데, 지난 1월 반공법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받은 일을 기억하느냐면서 강압적인 말을 하기에 나도 냉담한 어조로 짤막하게 응수했다. 변호인 사퇴 요구는 지나친 강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즉 3월 21일 밤, 나는 서울 시내의 한 집회장소에서 잠깐 문 밖으로 나왔다가 대기하던 중정 차량에 실려 ‘남산’으로 압송됐다. 그리고 전에 조사받은 글 ‘어떤 조사’의 용공성 여부를 놓고 다시 설전을 벌인 후 정식 구속됐다. 문제의 글을 쓰기 전에도 나는 생명과 형벌 문제를 다룬 글을 써 왔고, 한국앰네스티의 사형폐지 건의문을 작성하는 등 캠페인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밝혔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몸은 서울구치소로 실려 가서 소위 입소절차를 밟았다. 푸른 수의(囚衣)로 갈아입은 다음 플라스틱 식기와 대나무 젓가락 두 개를 들고 교도관을 따라가서 그가 열어주는 감방문 안으로 들어가자 등 뒤에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이렇게 해서 나의 수감생활은 시작되었다. 가족 접견도 서적 차입도 모두 불허라고 했다. 거기에다 독방이고 보니, 이른바 ‘절대고독’ 그 자체였다. 시간과의 대치상태가 나를 힘들게 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옥중기>에 썼듯이 ‘하나의 긴 순간으로서의 고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회전할 뿐인 시간 그 자체’와 마주해야 하는 운명이 시작되었다.

어느날 밤 늦은 시각, 완전히 폐방된 뒤인데도 인기척이 있어 방문 쪽을 보니, 누군가가 풀라스틱 식기를 들이밀고 사라졌다. 그 안에는 우유에 찐빵 두 개가 떠 있었다. 무슨 미스터리 소설 같은 일이었다. 날이 샌 뒤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사동 끝방에 있는 사형수가 나의 혐의, 곧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글을 썼대서 잡혀 온 것을 알고 감사하는 뜻으로 그처럼 먹을 것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내 글 한 편으로 자기 운명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호의를 표시하다니, 나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검사의 피의자 신문은 구치소 안에서 받았다. 검찰 후배의 조사를 받는 심정은 말이 아니었다. 검사는 예의를 챙기는 듯하면서도 뜻밖의 ‘강경파’여서 마침내 기소가 되었다. 변호인을 통해서 밖에서의 구명운동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한국기자협회, 목요기도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등 여러 곳에서 진정문서를 제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각계 인사 400명이 서명한 탄원서와 1차 변호인단 104명(나중엔 당시로선 사상 최대인 129명)의 의견서도 제출됐다. 동아일보는 나의 구속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는가 하면, 국제앰네스티에서도 나의 석방 운동을 벌였다고 했다.

공판은 4월 8일에 시작되어 모두 열한 번에 걸쳐서 열렸다. 검찰 구치감에서 법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변호인들이 늘어서서 나를 격려해 주었다. 방청석은 가족·친지 외에도 각계 여러 인사 그리고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애쓰는 여러 기관·단체 관계자들로 언제나 만원이어서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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