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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내란정권과 온몸 투쟁 ‘부인 삼총사’ / 한승헌

등록 2009-03-18 18:56수정 2009-03-19 00:34

1980년 ‘5·17 사태’ 구속자 가족들이 그해 10월 미행과 감시의 눈을 피해 동해안에서 ‘비밀 단합대회’를 열고, 바다를 향해 절규도 하고 규탄도 하며 투쟁을 다짐했다. ‘부인 삼총사’로 활약한 이종옥(앞줄 맨 오른쪽), 김석중(작고·두 사람 건너), 박용길(그 뒤쪽)씨 모습이 보인다.
1980년 ‘5·17 사태’ 구속자 가족들이 그해 10월 미행과 감시의 눈을 피해 동해안에서 ‘비밀 단합대회’를 열고, 바다를 향해 절규도 하고 규탄도 하며 투쟁을 다짐했다. ‘부인 삼총사’로 활약한 이종옥(앞줄 맨 오른쪽), 김석중(작고·두 사람 건너), 박용길(그 뒤쪽)씨 모습이 보인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2
구속된 사람들이 끌려가 있는 곳이 최전방이라면, 그 가족들은 후방을 맡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국사건, 그중에서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그런 일반적 도식(圖式)과는 달랐다. 가족들은 후방 아닌 또 하나의 전선에서 싸웠던 것이다.

1980년 5월 17일 저녁을 전후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기습검거작전으로 요원들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일부 가족(대개는 부모나 아내)들은 그들에 맞서 저항하기도 했다. 이후 연행자 가족끼리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고, 여기저기 찾아가서 탐문을 했지만, 가장이나 자식들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얼마나 불안했을 것인가. 거기에다 기관원들의 끈질긴 미행과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가족들은 생각다 못해 국보위에 실종신고도 하고, 국내 인권단체와 종교단체에도 찾아갔다. 미국대사관에 가서 관계자 면담도 했다. 외신기자도 만났다. 선교사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런데도 연행자들이 어디서 어떤 곤욕을 겪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물론 짐작은 했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5·17 사태’ 연행자 중에는 흔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몸통, 즉 김대중 선생과 함께 기소된 24명 외에도 세칭 동교동(김대중 선생의 자택이 있는 곳)의 비서진을 중심으로 한 측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분들의 가족까지 합류하여 서로 위로하고 사태 규명에 함께 나서는 데까지 가족모임은 확대되고 활성화되어 갔다.


이러한 가족모임의 중심에는 당시 ‘부인 삼총사’의 노고가 컸다고 한다. 박용길(문익환 목사 부인), 김석중(이문영 교수 부인), 이종옥(이해동 목사 부인) 세 분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가족모임 활동 전반에 걸쳐서 중추 구실을 하는 가운데 힘든 일,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나중에 또 하나의 ‘삼총사’ 그룹이 등장했으니, 조성우·이신범·이석표 세 젊은이의 어머니들로서, 앞서의 삼총사들에 비해서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다. 바로 그 노인이란 점을 ‘무기’ 삼아 이분들은 여러 집회나 면담 장소에서 또는 법정 안팎에서 공격적인 언동을 감행하셨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한밤중에 끌려간 뒤 생사·행방을 확인할 길이 없던 사람들의 ‘구속 통지서’는 80년 7월 14일, 연행 두 달이 다 되어서야 날아왔다. 그럼, 붙들려 간 그날부터 7월 14일까지는 불구속이었다는 말인가? 가족들 중에는 그런 거 따질 경황도 없이 장탄식을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생사·거처가 확인된 것만도 다행으로 알고 오히려 안도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구속 장소’로 적혀 있는 육군교도소나 서울구치소로 달려가 접견을 요청해, 애절하게 그리던 남편이나 아들과 상면의 길이 열렸다. 가족들은 변호인을 선임하고자 많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3인1조가 되어 법률사무소 순례를 하다시피 했지만, 누구 하나 사건을 변호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찾아가서 만난 변호사 이름을 기록하며 돌았는데, 그 수가 무려 150명이 넘었다.

그런 와중에도 10월 어느 날엔 가족모임의 대부대가 버스 한 대를 내어 동해안 바닷가에 가서 실컷 외치고, 규탄하고, 기도하고 돌아오는 집단행동에 성공했다. 여기서 ‘성공’이라고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가족들에 따라붙는 미행과 감시조의 눈길을 그 많은 가족 전원이 감쪽같이 따돌리고 원거리를 다녀오는 단합행차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군법회의 법정에서도 그냥 방청만 한 것은 아니었다. 법정 내 단상단하의 발언을 녹취하려다 제지당하자 여러 사람이 각자 발언자를 미리 분담하여 귀담아듣고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가 법정 밖으로 나와서 기억대로 ‘복기’를 하여 녹취록을 만들기도 했다.

가족 사이사이에 헌병이 한 사람씩 끼어 앉아 있었는데도, 법정에서 ‘애국가’나 ‘우리 승리하리라’ 같은 노래를 합창했다. 그러다 옆에서 제지하는 헌병과 몸싸움도 했다. 헌병들을 못마땅히 여긴 한 어머니가 “꽃밭에 앉아 있네”라고 빈정대자, 헌병 하나가 “꽃도 꽃 나름이지”라고 즉각 받아치더란다.

항소심 선고가 끝나자 가족들의 항의를 예상했는지, 군용버스에다 가족들을 싣고 법정에서 멀리 떨어진 용산역까지 가서 내려놓은 일도 있었다.

피고인이든 가족이든, 그때 그 ‘전우’들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분도 여럿이고 보니 마음이 아프다. 정치군부의 ‘내란 책동’에 부끄럽지 않게 대응했던 ‘5·17 가족’들은 거의 30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매달 한 번씩 의미 있는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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