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출감…그러나 ‘깃발’을 내린 건 아니다 / 한승헌

등록 2009-03-19 18:58수정 2009-03-19 21:34

1980년 ‘5·17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이듬해 5월11일 풀려나 집에 돌아온 필자. 봄의 절정을 맞아 만개한 철쭉꽃의 화사함과 복역중 삭발했던 필자의 짧은 머리카락이 대조적이다.
1980년 ‘5·17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이듬해 5월11일 풀려나 집에 돌아온 필자. 봄의 절정을 맞아 만개한 철쭉꽃의 화사함과 복역중 삭발했던 필자의 짧은 머리카락이 대조적이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3
‘80년 5·17’에 끌려간 중년이 거의 1년 만에 풀려 나왔다. 그것도 소년교도소에서. 결국 나는 서울구치소, 육군교도소, 소년교도소를 두루 순례하고 돌아왔으니, 우리나라의 교도소 네 종류 중에서 세 군데를 거친 셈이다. 못 가 본 한 군데는 청주여자교도소. 거기 가는 건 하느님 소관사여서 내 힘으로는 갈 수가 없다. 미아동의 한빛교회에서 석방자 환영 예배가 끝난 뒤에도 나의 소년교도소행은 화제가 되었다. 수감 교도소 이름만 보면, 나는 소년 때부터 문제아로 자라서 군에 가서도 사고나 치고, 어른 된 뒤에도 일이나 저지른 상습범처럼 되어 버렸다.

진상이야 어떻든, 전과 2범이 되어 금쪽같은 40대에 6년이나 본업을 잃고 실업자로 살아가자니,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여러분이 도와주시는 은덕으로 기본생활은 꾸려가게 되었다.

그 무렵, 청와대에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 할 만큼 널리 알려진 민정수석 이아무개씨였다. 그는 ‘내란음모사건’ 조사 때 남산 지하 2층 내 방에도 들러 김대중 선생과 연관된 문제를 묻고 간 적이 있어서 초면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집 형편을 걱정해 주면서, 기업의 고문변호사를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기는 하나 수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 자격도 빼앗긴 사람이 고문변호사 노릇을 할 명분이 없으니, 내 변호사 자격을 빨리 회복시켜 주는 것이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날의 만남은 외형상 화기애애하게 결렬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서신이 날아왔다. 봉서를 열어보니, 서울시 법률고문 위촉장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모르는 분도 아니고 해서 정중한 회답을 보내 사양의 뜻을 전했다.

실업자 시절 <기독교사상>에 쓴 ‘우리(감옥) 속의 우리들’이란 글이 생각난다. “1, 2년도 아니고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가시지요?”라는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성경 말씀에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쳐다보아도 서울 하늘엔 날아가는 새도 안 보이더군요.’ 막막한 현실을 비유했을 뿐인 이 대목이 정작 잡지에 실린 글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잡지 편집부의 박아무개씨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기상천외의 답이 돌아왔다. 기관원의 검열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이었다.(그때엔 <씨알의 소리>나 <기독교사상> 같은 잡지조차도 기관의 검열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삭제 이유는 더욱 걸작이었다. 한 변호사는 글을 묘하게 돌려서 쓰는 사람이어서, ‘서울 하늘에 날아가는 새도 안 보인다’는 말은 ‘서울이 세계에서 공해가 제일 심하다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검열자의 기막힌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그런 사고를 가진 마수가 이 나라 언론에 빨간 줄을 작작 긋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나는 1978년에 시작한 ‘삼민사’(출판사) 일에 복귀했다. 그동안 확보해둔 원고 외에 나를 성원하는 뜻으로 원고를 내 주신 분들도 계셔서, 그럭저럭 명맥을 되살렸다. 그러다가 나중엔 내가 쓴 글 모음을 간행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책 뒤에 붙는 판권지에는 ‘지은이 한아무개, 펴낸이 김아무개’ 이렇게 우리 내외의 이름이 나란히 찍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책 이름은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로 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는 4·19 시에서 따왔다. 표지 디자인은 그 분야의 일인자로 알려진 정병규님이 맡아 주었다. 그 시절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깃발> 머리말을 펼쳐 보니,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아, 그 10년! 역사에 대한 수모와 민족의 아픔이 날로 처절해 가던 그 통한의 시기에 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고, 써야 할 것을 쓰지 못했다.(중략) 나라에 어려움이 겹치고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오는 시대에는 머리에 ‘먹물’ 든 사람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입을 열어야 하는지-가 너무도 자명하다.”

수감자들을 위한 책 보내기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전엔 변호사로서, 앰네스티 운동의 하나로 책을 보냈는데, 이제는 출소한 석방자의 도리로서 하기로 했다. 내가 출판사를 경영한 지도 몇 해가 되고 보니, 출판계에 친분도 넓어지고 해서 책 모으기에 호응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하루는 지식산업사의 김경희 사장께서 손수 두 손에 책 묶음을 들고 오셨다. 한국사 책이었다. “책이 얼룩져서 미안합니다. 창고에 침수가 되어서 책이 좀 젖었지요.”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말했다. “미안하다니요. 한국 역사가 여러모로 얼룩졌으니, 한국사 책이 얼룩진 것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한승헌 변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