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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노가바’까지 탄압한 공안정권 / 한승헌

등록 2009-03-23 18:42수정 2009-03-23 22:12

1983년 ‘8·15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필자는 8년 만에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서울 태평로의 새 변호사 사무소 집들이하는 날, 축하객으로 온 ‘으악새’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김상현 전 국회의원, 리영희 교수, 필자 부부, 윤형두 범우사 사장, 장을병 교수, 이상두 논설위원(작고).
1983년 ‘8·15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필자는 8년 만에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서울 태평로의 새 변호사 사무소 집들이하는 날, 축하객으로 온 ‘으악새’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김상현 전 국회의원, 리영희 교수, 필자 부부, 윤형두 범우사 사장, 장을병 교수, 이상두 논설위원(작고).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5

1983년 광복절에 내 변호사 자격도 늦게나마 광복을 했다. 실직 8년 만에 복권이 되어 변호사 사무소를 다시 열게 되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며, 한아무개 변호사가 복권되었다고 하자, 한 교인이 “복권요? 얼마짜리 복권인데요”라고 묻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내 복권이 얼마짜리냐고 물었다는데, 비싼 복권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를 잡아넣을 때는 정부 관계기관마다 서로 자기들의 뜻이 아니라고 발을 뺐다. 그런데 복권 때는 앞을 다투듯이 서로 먼저 알려주려는 기색이 보였다. 생색이었다. 복권 통보의 선착순은 1등 청와대, 2등 안기부, 3등 법무부였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가장 신중하고 또 보안을 잘 지키느라 등수에서는 그렇게 밀렸을 것이다.

태평로의 한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재개업 집들이를 했다. 각계의 많은 분들이 여러 형태로 축하를 해주셨다.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축하·격려의 선물도 많이 들어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명품’은 한 기독교 인권단체에서 가지고 온 전자계산기였다. 그 대표자께서 당부하는 말씀인즉, 제발 이제부터는 이 전자계산기를 활용해야 할 만큼 돈 좀 많이 벌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의 당부에 내내 부응하지 못해 전자계산기 보기가 미안했다.

앞으론 정부에 밉보이는 시국사건은 맡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하는 분도 계셨다. 그것도 다 나를 염려해 주시는 말씀이라고 고맙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끊고 맺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일반 소송사건을 맡기는 당사자들이 제법 있어서 내심 다행이다 싶었는데, 어느 날 참으로 희한한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변호 의뢰가 들어왔다.

피고인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지음)의 실제 주인공인 허병섭 목사였다. 그는 반공법도 아닌 저작권법 위반으로 이미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를 해놓은 상태였다. 세칭 ‘노가바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허 목사는 당시 노동 현장에서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바꾸어 부르는 ‘유행’에 주목하여 노동자들에게 편리하도록 ‘노가바’를 모은 소책자를 만들었다. ‘노가바’란 예컨대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라는 노래의 가사를 “못 견디게 잠이 와도 자지 못 하고/ 오는 잠을 깨워가며 일하는 신세/ 사장님이 알아주랴, 사모님이 알아주랴/ 돌아라 미싱아, 밤이 새도록” - 이렇게 노랫말을 재미있게 바꿔서 부르는 것이었다.

허 목사가 만든 <노동과 노래>라는 ‘노가바’ 소책자는 단지 노래 연구모임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이었는데, 경찰은 허 목사의 그런 행위가 작사자와 작곡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하여 입건·송치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저작권 사건이라면서도 1982년 여름 어느 날 허 목사는 경찰 아닌 안기부에 처음 연행당했으며,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가 사건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본질이 허 목사의 민중선교 활동에 대한 탄압이 아니고서야 안기부나 공안 검사가 저작권법 사건에 나설 까닭이 없었다.


나는 그 사건의 항소심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시인 신경림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나와 신경림 증인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법정 문답이 오갔다.

(문)“방송에서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를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던가요? 벌을 주던가요?” (답)“많은 박수와 함께 푸짐한 상품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벌 받았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문)“그런데 이 사건의 피고인은 왜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노동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가바에는 현실비판적인 노랫말을 붙인 것이 많아서 정부가 탄압하는 줄로 압니다.”

70·80년대 이 나라 노동자들의 의식화에 힘을 기울여 오던 허 목사는 노동자들이 재미 삼아 부르는 ‘노가바’를 정리하여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슨 죄라는 것인가?

88년 10월 14일 선고된 항소심 판결은 ‘무죄’였다.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판결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거의 3년이나 사건을 묵혀 두었다가 91년 8월 27일 파기환송을 하는 바람에 결국은 ‘유죄’로 끝이 났다.

나는 어이없는 그 판결을 보고 “대법관들의 식견과 안목에 실망했다”고 쓴 바 있다. 허 목사는 그 후 시골 벽지에서 대안학교를 설립·운영하는 등 사서 고생하는 성직자의 길을 줄곧 걸어왔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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