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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일본의 지문 강제는 ‘차별 낙인’ / 한승헌

등록 2009-03-24 18:04수정 2009-03-24 19:45

1985년 5월 8일, 재일동포 청년 이상호씨가 외국인에 대한 지문찍기를 거부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가와사키시 직원노동조합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필자도 참석한 이 모임에서 이씨의 부인이 “내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외쳐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985년 5월 8일, 재일동포 청년 이상호씨가 외국인에 대한 지문찍기를 거부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가와사키시 직원노동조합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필자도 참석한 이 모임에서 이씨의 부인이 “내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외쳐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6
1985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재일동포의 ‘지문인권’ 문제를 다룬 한-일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 행사는 두 나라의 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으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지문찍기 강제’를 반대하는 운동의 하나였다. 거기서 나는 ‘재일외국인 지문압날(押捺) 제도와 일본의 국익’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하였다.

앞서 84년 9월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재일한국인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그때까지 교회협에서는 국내의 민주화·인권 문제에 대응하기에 골몰한 나머지, 일본 등 외국에 사는 동포들의 인권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범한 기구가 재일한국인위원회였다.

나는 그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서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 당시는 여권을 내는 일이 고난도에 속했다. 이 나라 역대 군사정권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해외 나들이를 못하게 막았으니, 참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때, 17년 만에 여권을 발급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 번밖에 못 써먹는 ‘단수여권’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본 정부에서 입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넉 달 동안이나 밀고 당긴 끝에 그해 5월 7일부터 열리는 그 행사에 겨우 참석할 수가 있었다.

52년 외국인등록법 개정으로 입법이 된 일본의 외국인 지문강제 제도는 말이 ‘외국인’이지, 실인즉 그 94%(법이 시행된 1955년 당시는 87%)를 차지하는 한국·조선인을 규제하기 위한 차별적 조처였다.

나는 준비해 간 논문을 통해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그런 차별과 강압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런 잘못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일본의 명예와 이익에도 부합된다고 역설했다. 한국인을 마치 범죄자처럼 다루는 데 대한 분노는 비단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의 양심세력들도 목소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준법거부 선언과 지문찍기 반대 투쟁이 확산되었다. 재일동포 한종석씨의 지문찍기 거부가 도화선이 된 전국적인 싸움에는 이인하·최창화·강영일·배중도 등 한국인 목사와 김경득 변호사 등이 앞장섰고, 일본의 종교계·언론계·학계·법조계의 양심적 인사들도 적극 참여했다. 놀랍게도 지문등록사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과 많은 지방의회에서도 외국인 지문제도 반대에 목소리를 같이했다. 심지어 전일본자치단체직원노동조합은 중앙정부에서 영달되는 지문 수당의 수령 거부(또는 반납)를 결의하기까지 했다. 나는 일본 공직자들과 양심적 인사들의 그런 움직임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심포지엄의 둘째 날 오후에는 이상호라는 재일동포 청년이 우리 모임에 와서 지문찍기 거부자로서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씨가 거주지인 가와사키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 모임 참가자들은 예정을 바꾸어 가와사키에서 열리는 항의집회에 참가했다. 그 집회의 주최자는 재일한국인 단체가 아닌 가와사키시 직원노동조합이었다. 뜻밖이었다. 시 노조의 대표자는 “… 이것은 일본의 수치다. 그러므로 우리 일본인이 선두에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집회장 안팎의 열기는 대단했다. 재일동포들뿐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로 만원을 이룬 가운데 이씨의 부인이 어린 아기를 안고 단상에 올라가자 장내는 열렬한 박수로 떠나갈 듯했다.

그 부인이 “나는 옳은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다가 잡혀간 내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일본 체류 중에 나는 유력 일간지인 <아사히신문>의 의뢰를 받고 ‘외국인 지문 강제의 철폐가 일본의 국익에도 합치된다’는 지론을 즉석 원고로 작성해 보냈다.(5월 15일치 조간 ‘논단’에 실림.)

서울에 돌아온 뒤, 역시 <아사히신문> 사회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일에도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는다고 하는데, 왼손 인지를 5년에 한 번 찍는 일본을 한국이 비난할 수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본 언론에 유도당하기는 싫어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일본이 하필이면 인권 후진국인 한국과 지문 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그리고 우리는 차별을 문제 삼는데, 한국에서는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더라도 일본처럼 내외국인 간의 차별은 하지 않는다.”

일본의 외국인 지문강제 악법은 2000년에 와서야 겨우 철폐되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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