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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옥중 독학’ 저작권법, 강의때 보람과 아쉬움 / 한승헌

등록 2009-03-25 18:30수정 2009-03-25 23:28

1995년 6월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 전공 학생들과 종강 수업을 끝내고 강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나누고 있는 필자.(맨 가운데) 감옥에서 독학한 저작권법 덕분에 많은 제자를 얻은 것은 뜻밖의 보상이었다.
1995년 6월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 전공 학생들과 종강 수업을 끝내고 강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나누고 있는 필자.(맨 가운데) 감옥에서 독학한 저작권법 덕분에 많은 제자를 얻은 것은 뜻밖의 보상이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7

내가 저작권법 공부를 하게 된 특이한 내력을 앞서 이 연재에서 말한 바 있다. 대학 때는 법학과도 아니었지만, 법학과였다 하더라도 저작권 과목은 어느 대학에도 없었다. 법조인이 되고 나서, 아는 사람들의 질문이나 상담에 응하느라 공부를 하다 보니 실력이 좀 쌓였다. 두 번에 걸친 감옥살이에서 면학 분위기가 매우 좋아 집중적으로 저작권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석방 뒤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출판·잡지 전공)에서 1985년 가을학기부터 저작권법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서 저작권법을 맨 처음 독립된 과목으로 채택한 데가 중대 신방대학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나는 중대의 선례를 높이 평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흑석동 언덕바지를 10년 넘게 오르내렸다.

교육 대상이 ‘출판·잡지 전공’이라서, 내가 변호사 자격을 빼앗기고 나서 약 8년 동안 출판인으로 일한 경험이 현장감 있는 교육에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이 저작권법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대학원다운 강의에 어려움이 많았다. 생각 끝에 한 학기의 전반은 저작권법 개론을 주입식으로 강의하고, 후반에 가서 세미나식 수업을 했다.

학생들의 출석이나 수강 태도는 만족할 만했다. 이미 출판사를 경영하거나 중견급 인력으로 자란 학생들도 있어서, 말하자면 철든 사람의 성숙과 예의가 엿보였고, 그에 따라 강의 안팎의 분위기도 좋았다. 야간 수업이 끝난 뒤 음식점이나 맥줏집에 가는 이른바 ‘제3교시’에 자리를 함께한 추억거리도 있었다.

저작권법 전공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저작권에 관한 글도 쓰고, 방송도 하고, 관련 기관·단체에 직분도 맡고, 강연도 하면서 강의까지 하게 되어 보람을 느꼈다. <저작권의 법제와 실무>(1988년 삼민사), <정보화시대의 저작권>(1992년 나남), 이렇게 두 권의 전공서도 냈다.

나는 준비를 충실히 해서 열심히 가르쳤다. 학내 시위로 최루탄 냄새가 가득한 강의실에서도 휴강은 하지 않았다. 98년 봄, 정부 고위직을 맡고 나서도 강의는 놓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병실을 무단이탈(!)하여 흑석동으로 달려갔다. 특수대학원치고는 학생들에게 ‘강행군’을 시킨 셈인데도 모두들 잘 따라와 주었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에는 강의 시작 전, 여학생들이 가슴에 꽃도 달아주고, 꽃다발도 안겨주고, 과 학생들 이름으로 된 선물도 받았다. 그 무렵 대학에서 보기 어려운 ‘미풍양속’이었다. 심지어 졸업하고도 그런 날을 잊지 않고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거나 식사 초청을 하는 ‘제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출판학을 개척하고 한국출판학회를 창립한 서지학자 안춘근 선생, 안 선생의 뒤를 이어 출판학회를 중흥시키고 출판유통론 책도 쓴 범우사의 윤형두 사장 같은 분들이 중대 신방과의 그런 ‘학풍’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송년 동문 모임에서 나는 명예동문증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답사를 했다. “그냥 동문도 명예스러운데, 명예동문이라니 얼마나 명예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10년이 넘자 너무 오래되었다 싶어 중대를 그만두었는데, 어떤 분의 권유로 서강대 언론대학원에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서강대 특유의 분위기도 음미하면서 나름대로 알찬 강의를 계속했다. 전대협 대표로 입북했다고 재판을 받을 때, 내가 변호를 맡았던 임수경양을 강의실에서 반갑게 만난 기억도 새롭다. 짧은 서강대 출강 뒤에는 연세대 법무대학원 강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이 법무대학원은 지적재산권 분야의 교육 연구를 주안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교육기관이어서 나의 저작권 강의에는 적지(適地)이자 명당이었다.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원생들도 많아서 깊이 있는 수업이 가능했다.(나는 몇 해 만에 다시 이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전임교수가 아닌 강사였지만, 대학마다 위촉장에는 ‘객원교수’ 또는 ‘초빙교수’로 예우를 했다.

저작권법이라는 전문분야에 남보다 먼저 입문하여 얼마쯤 이바지를 한 데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더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지 못한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지금도 저작권 내지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기사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이고, 옛날부터 해오던 식으로 가위질을 하고 스크랩을 하는 것이 즐겁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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