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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1986년 나의 ‘세계 저작권 기행’ / 한승헌

등록 2009-03-26 18:19수정 2009-03-26 20:44

1985년 2월 1일 뉴욕의 미국출판협회를 방문한 필자가 저작권 책임자이자 국제지식재산권연맹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던 리셔 여사(왼쪽), 저작권 전문변호사 스미스(오른쪽)와 면담하고 있다.
1985년 2월 1일 뉴욕의 미국출판협회를 방문한 필자가 저작권 책임자이자 국제지식재산권연맹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던 리셔 여사(왼쪽), 저작권 전문변호사 스미스(오른쪽)와 면담하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58

1985년 가을,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국장 박경서 박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그는 크리스챤아카데미 부원장으로 일하면서 업적과 고생이 아울러 많았는데, 내가 아카데미의 여러 모임과 활동에 참여하면서 서로 절친해진 사이였다.

박 박사는 세계교회협의 지원 프로그램을 알려주면서 내 의향을 묻기에, 두말없이 저작권의 국제적 흐름을 알고자 국제기구와 여러 선진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박 박사의 배려로 나의 ‘세계 저작권 기행’은 성사되었다. 그때가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주로 미국)의 저작권 보호 압력이 본격화한 시점이었고, 한국으로서도 당시의 국제적 흐름에 대응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저작권 기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맨 처음 방문한 곳은 제네바에 있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였다. 86년 1월 10일 오전, 현지의 박경서 박사와 동행해 그 기구를 찾아갔더니, 저작권국장 (M.)피셔 박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헝가리 출신 변호사인 그는 내가 준비해 간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을 해주었고, 우리는 국제 저작권 보호의 일반적인 이야기에서부터 폐쇄회로·통신위성·포르노 복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의견 교환을 했다.

이어서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간 나는 1월 15일 오후 독일서적협회를 방문해 상근 변호사인 (K.)뮐러와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서독 특유의 ‘녹음·녹화기 제조업자에 대한 부과금 제도’와 저작권 집중관리 제도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로마에는 사전 협의가 되지 않은 채 도착하여 걱정이 되었는데, 우리 대사관의 각별한 노력으로 일이 잘 풀렸다. 1월 22일 아침, 그곳에 유학중인 김종수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총리실 공보·저작권·출판국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대화를 했다.

이틀 뒤에는 파리의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를 찾아갔다. 현지의 한국 특파원 한 분이 섭외를 잘 해놓아서 순조롭게 관계자 면담이 이루어졌다. 저작권국의 (K.)바삭 국장(유고)과 (A.)아므리 보좌관(튀니지), 두 분 다 변호사여서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진행되었다. 나는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세계저작권조약(UCC)에 있는 소위 ‘개발도상국 조항’의 실효성에 관해서 물었고, 이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나, 시원한 결론은 얻지 못했다.

28일에는 런던의 영국출판협회를 찾아가 저작권 책임자인 (I.)테일러를 만났다. 그는 서울에도 몇 번 다녀간 터여서, 우리는 구면답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서울 교보문고에서 나온 리프린트 목록(책자)을 내놓으면서 계속 질문을 하기에, “오늘은 내가 면담을 요청하고 찾아왔는데, 당신이 이렇게 질문을 계속하는 것은 영국의 신사도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고 견제구를 던졌다. 그는 금방 “미안하게 됐다”고 웃음 띤 사과를 하고 나서 내 말을 경청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는 한국에서 리프린트 출판이 성행하고 있을 때여서 난처했지만, ‘불원간 시정될 것’이라는 말로 ‘국익 차원’의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달픔과 보람을 안고 저작권 기행은 이어졌다. 대서양을 건너간 나는 1월 31일, 미국의 저작권 행정을 관장하는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을 방문해 저작권국 정책기획 자문관인 (C.A.)마이어 변호사를 만났다. 그와 나는 한-미간의 저작권 분쟁, 이른바 저작권 소급 보호 문제, 미국의 저작권 정책 등 광범한 논의를 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기행’의 마지막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워싱턴에서의 일정과 내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뉴욕의 미국출판협회 방문이 하루 미뤄진 것이다. 그쪽에선 나의 사정을 이해한다며,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쉬는 날인데도 만나자고 했다. 미국 출협의 저작권 책임자인 (C.A.)리셔 여사(그는 미국 저작권산업 8개 단체로 구성된 ‘국제지식재산권연맹’의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었다)와 저작권 전문 변호사인 (E.H.)스미스(그는 한-미 지식재산권 협상 때 미국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 서울에 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이 외국의 저작권 보호에 나서 주기를 역설했고, 나는 개인 자격이라는 전제를 걸고 몇 가지 내실 있는 방안을 설명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약속을 어긴 사람일지라도 휴일에도 나와서 만나는 그들의 자세는 본받을 만했다. 내 첫번째 ‘저작권 기행’은 제법 많은 성과를 거두고 이렇게 끝났다.

두번째 기행은 그해 4월 독일행으로, 세번째 기행은 그해 11월 일본행으로 이어졌다. 나에게는 다시없는 지구촌 학습의 기회였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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