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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억압 뚫고 늠름하게 자란 ‘청년 민변’ / 한승헌

등록 2009-04-02 18:31수정 2009-04-02 23:23

1988년 5월 28일 창립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민변 사무실에 걸려 있는 현판. 필자가 직접 쓴 붓글씨를 목판에 새긴 것이다.
1988년 5월 28일 창립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민변 사무실에 걸려 있는 현판. 필자가 직접 쓴 붓글씨를 목판에 새긴 것이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63
‘민변’이라는 약칭으로 널리 알려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창립된 것은 1988년 5월 28일이었다. 그 전해 6월민주항쟁에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가 야권 분열로 말미암아 노태우 정권을 등장시킨 뒤의 허탈한 시기였다. 민변의 창립 회원은 51명, 오랜 군사독재 아래서 시국사범의 변호에 나섰던 변호사들의 면면이 거기 망라되어 있었다. 조준희 변호사가 대표간사로 선출되어 가동되기 시작한 민변은 86년 5월 창립된 정법회(정의실천 법조인회)를 모태로 삼은 조직이었다. 정법회는 70년대부터 정치적 사건 또는 시국 사건의 변호에 나섰던 소위 ‘시니어 그룹’과 80년대 이후에 나타난 ‘주니어 그룹’에 속하는 변호사들이 하나로 합친 모임이었다.

개별 활동에 익숙해진 변호사들도, 국가권력의 조직적 억압에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목표에 동감하고,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발족한 정법회는 김근태씨 고문 사건,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말지(보도지침) 사건, 이돈명 변호사 구속 사건, 노무현·이상수 변호사 구속 사건 등의 변호를 통해서 주목을 받았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에 들어가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등 주요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와 변협 ‘인권 보고서’(1년간의 인권 상황을 정리·평가하는 간행물)의 집필에도 적극 참여했다.

87년 6월항쟁 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에 참여한 변호사들 중에 정법회 소속 변호사가 많았다는 것은 지난번 언급한 대로인데, 그처럼 탄압과 저항이 교차되는 국면을 거치면서 정법회는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었다. 좀 더 체계적이고 공개적이며 지속적인 변론활동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법률과 제도의 개폐, 연구와 조사 등 다양한 사회의 법률적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좀 더 결속력이 강한 새로운 조직을 갖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단계에서 종래의 정법회 회원들과 20~30대의 젊은 변호사 그룹이 합류하여 노·장·청을 두루 아우르는 민변으로 발전적 변모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본시 ‘단체 선호형’이 아니어서 집단의 형성에는 소극적인 사람이지만, 정법회나 민변의 시동에는 적극 찬성이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군사독재의 암울한 기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변호사모임의 출범 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87년 7월 7일, 정동 배재빌딩에 민변 사무실을 마련하고 개소식을 하던 날, 민변의 현판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걸어 준 것뿐이었다. 간판 글씨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거라도 해서 ‘맨손’(수수방관)을 면하자 싶어 서툰 붓글씨나마 정성 들여 써 가지고 인사동에 가서 판각을 해서 들고 갔던 것이다. 지금도 그 현판은 서초동 민변 사무실 문지방에 그대로 걸려 있다.

그리고 민변 발족 직후의 첫 공개 행사로 그해 6월 15일 열린 ‘양심수 문제 공청회’에서 내가 ‘정치 상황과 양심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한 일이 기억난다. 훗날 5·18 진상 규명·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거리시위(95년 10월 16일), 안기부법·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항의농성(96년 12월 30일) 같은 집단행사 때는 젊은 변호사들과 대열을 함께하고 자리를 지켰다. 또한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과 임수경양 방북 사건(1993년) 등 재판에서 나는 민변 회원들과 함께 공동변호의 강점을 보이기도 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민변은 억압과 변화의 복판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변호사가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 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서 그런 역사적 고민과 고역을 함께 했던 변호사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다만 역대 회장(한때는 대표간사)직을 맡아 고생하신 조준희, 황인철, 홍성우, 고영구, 최영도, 송두환, 최병모, 이석태, 그리고 현 회장 백승헌 변호사의 이름만이라도 거명을 해야겠다. 또한 애통하게도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신 유현석, 황인철, 조영래, 이해진, 김응조 변호사님을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 민변의 큰 어른이신 이돈명 변호사님, 사회활동의 지평을 넓혀 가며 존경을 받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도 민변의 이름을 더욱 값지게 해 주고 있다. 한때 정부 요직을 맡았던 회원들 중에서 그 경력을 업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나는 다행스럽게 여긴다.

지난해 5월, 민변 창립 20돌 기념대회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민변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사서 하는 고생 좀 더 합시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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