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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방북취재 계획에 ‘탈출예비음모죄’ 올가미 / 한승헌

등록 2009-04-07 19:04

1989년 4월 20일 오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 기획 사건으로 구속된 리영희 당시 논설고문(오른쪽 두번째)이 정장 차림으로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변호인단과 부인(왼쪽 두번째)을 만나 안기부 조사 과정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당국은 연행 8일 만의 접견 허용을 이례적이라며 생색냈다. 맨 왼쪽이 필자, 맨 오른쪽이 조영래 변호사다.
1989년 4월 20일 오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 기획 사건으로 구속된 리영희 당시 논설고문(오른쪽 두번째)이 정장 차림으로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변호인단과 부인(왼쪽 두번째)을 만나 안기부 조사 과정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당국은 연행 8일 만의 접견 허용을 이례적이라며 생색냈다. 맨 왼쪽이 필자, 맨 오른쪽이 조영래 변호사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66
“여러 번 한 변호사에게 신세를 진 사건 중에서도 가장 세상에 알려지고 화려하기도(?) 했던 것은 1989년의 이른바 ‘한겨레신문 기자단 방북취재 기획’ 사건이다.” 리영희 교수의 회고담이다. 화려하다? <한겨레신문> 창간 첫돌 즈음한 북한 지도자 인터뷰 구상도 ‘화려’했지만, 기획 단계에서 중단된 일을 국가보안법상 ‘탈출예비음모죄’로까지 꾸며낸 당국의 지략 또한 ‘화려’했다.

한겨레신문사는 그해 1월 초, 창간 첫돌 기획사업의 하나로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취재를 계획했다. 리영희 논설고문, 임재경 부사장, 장윤환 편집위원장, 정태기 개발본부장, 이렇게 네 사람이 의견을 모았다.

당시의 남북간 정세는 노태우 대통령의 이른바 ‘7·7특별선언’ 이후 화해국면이 조성되고 있었다. 그 선언에는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 남북 동포 간의 상호교류를 적극 추진한다’는 대목도 들어 있었으니, 언론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기 미주지사 기자를 관광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들여보내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국내에서 보도한 바는 있었다. 따라서 한겨레신문의 북한 취재 기획은 본사 취재진이 직접 북에 가서 그쪽 최고지도자를 만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실현의 의미는 매우 큰 것이었다.

그해 1월 12일, 리 교수는 일본으로 가서 출판사인 이와나미서점의 전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 상무를 만나 북한 취재 구상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협조를 약속받는다. 그리고 야스에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인 취재 의도와 계획을 밝히고 그 주선을 의뢰하는 내용의 서신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해 3월 5일, 일본인 다카사키 쇼지 교수가 서울에 와서 취재진의 방북 가능성을 비쳤고, 이에 한겨레신문사는 방북 취재단의 구성과 방북 일정(희망 사항)을 전하고 북한 쪽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25일, 뜻밖에도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이 터졌다. 이를 국면 전환의 호재로 삼은 정권의 역습으로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다. 한겨레신문사는 이 시점에서 부득이 방북취재 계획을 접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일은 다시 벌어졌다. 4월 12일 새벽, 공안합수부 요원들이 리 교수를 자택에서 연행해 갔다. 그리고 14일자로 구속했다. 구속영장에 적혀 있는 피의 사실을 보면, 위에서 진행한 일련의 일들이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을 예비 음모한 행위’라는 것이었다.


한번 붙들려 가면 행방도 안부도 혐의도 알 길이 없고, 접견도 ‘불허’하는 것이 당시의 공안풍토였다. 변호인 접견은 어떤 사유로도 막을 수가 없게 되어 있지만, 검찰 송치 전에는 사실상 거부당하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다른 변호인들과 함께 접견을 둘러싼 요구와 항의를 계속한 끝에 마침내 중부경찰서에서 리 교수를 접견할 수가 있었다. 구속자 신분인데도 신사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나와서 오히려 분위기가 깨졌다(?)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리 교수한테서 들었는데, 그날의 중부서 접견을 두고서 ‘안기부가 생긴 이래로 조사과정 도중에 변호인과 가족의 접견을 허가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생색을 내더라고 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앞서도 보았듯이, 7·7선언 이후 남북간의 왕래·교류·보도·출판 등 여러 분야에서 봇물이 터지다시피 되었는데 유독 한겨레신문만, 그것도 단지 타진 의뢰 단계에서 그만둔 일을 국가보안법으로 문제 삼았을까? 한마디로 탄압의 구실로 삼기에 알맞은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리 교수의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방북 계획과는 무관한 언론·저술의 논조에 관해서 여러 문답이 오갔다는 사실, 4월 20일 전후의 한겨레신문사 임원급 간부들에 대한 강압적 연행사태 등에 정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었다. 즉, 리 교수의 반유신·반독재·반외세 논조를 희석시키고, 나아가 한겨레신문사의 민주·민족·통일 지향의 정론에 대하여 보복을 가하는 겹치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반국가단체 지배지역으로의 탈출 예비 음모’는 법적으로나 사회통념 및 형평성에 비추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논리였다. 변호인단의 변론에서도 이 점을 역설했다.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 김창국, 조영래, 박인제, 박원순, 천정배, 이석태, 김형태 그리고 나, 우리는 변호인단이기 전에 무슨 팬클럽 같은 면면이었다. 그해 9월 25일 선고된 1심 판결에서 리 교수는 징역 1년6월에 2년간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몸이 풀려났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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