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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문 목사 방북 사건…분단상황의 ‘재확인’ / 한승헌

등록 2009-04-08 18:50수정 2009-04-08 23:11

1989년 3월 25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문익환 목사가 4월 22일 변호인들과 첫 접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일, 박원순 변호사, 필자, 문 목사, 박용일 변호사.
1989년 3월 25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문익환 목사가 4월 22일 변호인들과 첫 접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일, 박원순 변호사, 필자, 문 목사, 박용일 변호사.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67
‘6공’(노태우 정권) 치하 여소야대 정국에서 ‘5공 청산’의 공방이 치열하던 1989년 3월 25일, 남한의 문익환 목사가 북한 순안비행장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라 안팎을 놀라움으로 뒤덮었다. 도쿄와 베이징을 거쳐 북한 당국이 제공한 특별기 편으로 입북했다니, 사전 교감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나는 남들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걱정되고 심란했다. 먼저 걱정이란, 문 목사님의 방북 행각을 구실 삼아 막 힘겹게 진행되고 있던 ‘5공 청산’ 작업이 물건너가는 것은 물론,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억압정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심란했던 이유인즉, 목사님 귀국 후에 벌어질 재판(변호)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 문 목사님 사건의 변호는 선임 여부가 새삼스러운 ‘자동 케이스’였다. 그럴 만한 사이였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문 목사님이 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는 내가 반공법 유죄판결로 변호사 자격을 빼앗긴 뒤라서 변호를 못했고, 80년 5월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는 문 목사님과 함께 피고인석에 섰다. 그리고 85년 봄, ‘5·3 인천 시위’ 사건 재판에서 처음 문 목사님을 변호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의장 등을 맡아 재야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온 지도자로, 민족문학작가회의에는 둘이 함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문 목사님은 북한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기자회견, 봉수교회 부활절 예배 참석,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와의 협의(허담 위원장과 공동성명 발표)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가장 주목할 만한 방북의 하이라이트였다.

4월 13일 귀국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대로 그는 안기부에 연행·구속되었다. 함께 입북했던 유원호(사업가)씨도 마찬가지였다.(일행으로 갔던 재일동포 정경모 선생은 일본에서 귀국하지 않았다.)

구속 사유에 나와 있는 죄명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북은 반국가단체의 지령에 의한 탈출, 귀국은 같은 지령에 의한 잠입, 방북 전의 연락과 북한 체류 중의 면담 등 언행 일체는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통신·회합, 그밖에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동조 등 여러 죄명이 열거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문 목사의 방북에 대해 연일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서둘러 구성된 변호인단에서는 우선 문 목사의 접견을 신청했다. 안기부가 쉽게 응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반복적인 요구와 항의 끝에 4월 22일 오후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첫 접견이 이루어졌다. 박원순·박용일·천정배·조승형·박병일·이경우 변호사와 내가 자리를 같이했다. 접견장 안팎에서 수사기관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접견에서의 대화는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정부와 여권은 이 방북사건을 크게 문제 삼아 국면 전환에 성공해 5공 청산과 민주화 작업은 맥이 빠지고 말았다.


문 목사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기소하지 말아 달라. 만일 기소를 한다면, 7·7선언과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동반자라고 한 노태우 대통령의 공신력과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어느 시국사건 법정에서도 볼 수 없는 격렬한 논쟁과 충돌이 있었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검찰은 물론이고 재판부와도 격론을 벌였다. 검찰은 문 목사의 방북이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문 목사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자발적인 행위라고 역공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증거 신청을 모두 기각하는가 하면, 예단을 드러내며 불공정한 재판 진행을 계속해 나갔다. 마침내 변호인단은 재판부 기피 신청, 총퇴장 등 강수를 쓰게 되었고, 피고인의 출정 거부까지 겹쳐서 공판이 파행에 빠지기도 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검찰은 문 목사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밀입북의 동기가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항소심 징역 7년, 대법원 상고기각)

문 목사님의 진술 가운데 어록으로 남을 만한 말씀 하나를 소개하겠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찬양·동조해야만 통일이 됩니다. 찬양·동조를 범죄라고 처벌하면 어떻게 남북 합의가 이루어집니까?”

문 목사님은 94년 1월 18일 갑자기 영면하셔서, 우리에게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에 참여하면서 ‘늦봄 통일상’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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