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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분단 극복’ 북으로 간 확신범들 / 한승헌

등록 2009-04-09 18:45수정 2009-04-09 21:10

1989년 6월말 전대협 대표로 북한에 들어갔던 한국외대생 임수경(오른쪽 두번째)씨가 그해 8월 15일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파견한 문규현(맨오른쪽) 신부와 함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돌아오고 있다. 임씨의 방북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더불어 90년대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이었다.
1989년 6월말 전대협 대표로 북한에 들어갔던 한국외대생 임수경(오른쪽 두번째)씨가 그해 8월 15일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파견한 문규현(맨오른쪽) 신부와 함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돌아오고 있다. 임씨의 방북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더불어 90년대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68

내가 변호한 시국사건은 거의 남북 분단 상황으로 말미암아 생긴 ‘범죄’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일련의 방북사건은 가장 반응이 예민하고 파장이 컸다.

방북사건을 날짜순으로 보자면, 지난번 살펴본 문익환 목사 방북 닷새 전인 89년 3월 20일, 작가 황석영씨가 먼저 평양에 들어갔다.(다만 그는 5년간 국외 체류 뒤 94년 4월 29일에 귀국한 관계로 국내에서의 수사·재판은 그만큼 늦어졌다.) 이어서 전대협 대표 임수경(한국외대 불어과 4년)씨가 같은 해 6월 30일(그를 데리러 북에 간 문규현 신부는 그해 7월 25일) 입북하는 등 89년은 남쪽 인사 방북 러시의 해가 되었다. 한편, 서독 거주 송두율 교수는 91년부터 94년 사이 네 번에 걸쳐 북한에 다녀왔고, 2003년 9월 귀국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나는 이상 네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인으로서 적은 힘을 보탰다.

임수경씨는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평축)에 남한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서 단신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를 데리러 간 문규현 신부와 함께 그해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왔다. 물론 즉각 구속되었다. 우리 변호인단은 임씨 접견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고 나서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였다. 그의 건강과 안전을 확인하고 조사 내용을 알아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본안재판 못지않게 장시간 임씨와 문답을 했다. 머지않아 치러야 할 ‘메인 게임’(정식 재판)의 리허설이었다.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북한에서 조선학생위원회 명의로 된 초청장이 왔을 때만 해도, 노태우 대통령은 ‘평양축전을 교류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는가 하면, 남북학생교류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 ‘평축’ 참가 문제를 협의할 회담을 북쪽에 제의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정부가 하룻밤 사이에 표변하여 평축 참가를 불허한다는 발표를 했다. 임씨는 법정에서 매우 담백한 어조로, 그러나 단호하게 자기 행위의 이적성을 부인했다. 판결은 1심에서 임수경 징역 10년, 문규현 8년, 항소심에선 두 사람 다 징역 5년이었다. 92년 성탄절 전야에 두 사람이 동시에 석방되었다.

나는 법정에서는 변호인으로, 학교(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는 교수로, 그리고 결혼식에서는 주례로 임수경씨와 인연을 이어 나갔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는 분단 고착 이후 북한에 들어간 최초의 남한 작가였다. 그는 방북했다 바로 귀국하지 않고 국외에 머물면서 다섯 번 북한에 들어갔고, 일곱 번 김일성 주석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방북 활동이 알려지자 국내 문인이나 지식인들은 두 파로 갈라져서,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석방운동을 하는가 하면, 보수 색채를 띤 일부 인사들은 ‘용공 규탄’을 외치기도 했다.

나는 그해 10월 일본 펜클럽 초청으로 ‘투옥 작가의 날’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해 황석영 사건의 진상과 의미 그리고 법적 평가에 관해서 발표를 했다. 1심에서는 징역 8년, 2심 6년, 대법원 파기환송, 재항소심 징역 7년, 이렇게 숫자가 오르내렸다. 북에서 황씨 이모 장례식에 조문을 온 연형묵 총리를 맞은 것을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죄’로 처벌한 것은 너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송두율 교수는 2003년 9월 ‘37년 만의 귀국’에 감격할 사이도 없이 안기부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검찰은 10월 22일 송 교수를 구속해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소장을 보면, 그는 73년 북의 노동당에 입당한 이래, 유학생의 포섭 및 주체사상 선전활동을 했으며, 91년 5월엔 김일성 주석과 면담도 하였고,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것 등이 공소사실의 핵심이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1심 판결은 그런 공소사실을 거의 그대로 인정하고 송 교수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 혐의와 저술활동 및 김일성 조문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시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북한으로 가려고 하다가 미수에 그친 채 구속된 사람도 있었다. 89년 3월의 ‘남북작가회담’ 사건으로 시인 고은씨가, 94년 7월 김일성 주석 조문 시도 사건으로 범민련 남쪽 대표 강희남 목사가 구속되어 피고인석에 선 적이 있었다. 모두 서울에서 육로로 판문점을 향해서 가다가 붙잡힌 ‘불능범’들이었다. 휴전선까지 갔다고 해도 철책을 뚫는 것은 절대에 가까운 불가능이었으니까.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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