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11일 아시아 감사원장 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필자(왼쪽)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현 주석)을 만나 두 나라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3
감사원에는 외국 감사원에서 오는 손님도 적지 않았고, 원장인 내가 외국에 나가 참석할 회의나 만나보아야 할 인사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감사원에 대한 외국 감사원 내지 국제사회의 평가는 상당히 높았다. 편의상 두루 ‘감사원’으로 통칭하지만, 회계검사권만 갖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인 데 비하여 우리나라처럼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권까지 행사하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 이 점을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외국의 감사인들도 적지 않았다.
취임한 뒤 맨 처음 참석한 국제회의는 1998년 9월 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최고감사기구(ASOSAI) 이사회였다. 국제회의 첫 무대였지만, 한국 감사원의 위상 덕분에 모두 우호적이었고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중국의 리진화 심계서장, 일본의 히키다슈로 회계검사원장과 3자회동을 갖고, 한·중·일 세 나라 감사기구가 공동으로 부정부패 척결방안을 협의·연구하자는 제의를 했다. 다행히도 두 분은 내 제의에 공감한다며 동의를 했고, 그 후 매년 3국 감사기구의 당무자회의가 정례화되었다. 나는 그 이사회 마지막날 저녁 환송행사에서 참가국 원장들을 대표해 고별연설도 했다.
회의가 끝나는 그날로 중국 감찰부가 우리 일행을 인수(?)하였고, 원수급 국빈 숙소로 알려진 조어대에 우리 내외를 머물게 했다.
9월 11일 오후에는 중국 인민대회당으로 후진타오 국가 부주석(현 주석)을 예방했다. 이미 ‘차기 국가주석’으로 알려진 실권자와의 면담이 이루어진 데는 하용 감찰부장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잠깐 악수하고, 차 마시면서 의례적인 말을 나눈 뒤 사진 찍고, 이런 ‘일사천리’를 예상했는데, 그와는 달리 장시간의 면담이 되었다. 나는 후 부주석이 시종 정중하고 우호적으로 응대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내게 부탁하신 인사말씀을 먼저 전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홍수 때 인민해방군이 몸으로 재해를 막고 인명 구출에 나서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보고 크게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금방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와 작별을 하고 같은 인민대회당 안의 만찬장으로 가면서 면담시간이 50분이 넘었다고 한 간부가 말했다. 그날의 면담은 중국 중앙방송(CCTV)과 <인민일보>에 보도되었다.
중국 남부 지방도시를 둘러보고 베트남으로 넘어갔다. 호치민(호찌민) 대통령 묘소 참배, 전쟁박물관 관람 등 상례적인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17일)에는 응우예떤중 제1부총리를 방문했다. 두 나라 대표단이 마주앉은 회의 석상에서 나는 베트남 정부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한다는 답례의 말을 하게 되었다. 서두 발언에 이어서 나는 <호치민 평전>의 한 대목을 언급했다. “위대한 호치민 선생께서는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베트남 고위 관리들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잡더니 긴장하는 표정이 역연했다. “호치민 선생께서는, ‘나의 소망은 자주적이고 통일되고 민주적이며 번영된 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귀국은 호치민 선생이 염원하신 자주적 통일국가는 이룩하셨고, 지금은 번영된 국가를 건설하는 단계에 처해 있습니다. 바로 이 번영을 위한 경제건설에 한국 기업이 큰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G7’만 알아줄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과 상품도 평가해달라는 뜻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대사가 물었다. “어떻게 호치민 대통령의 유훈까지 그렇게 알고 계셨습니까?” “그거요? 어제 오후 서점에 가서 호치민 평전을 사 가지고 와서 호텔 방에서 읽다가 마침 그 대목이 눈에 뜨이길래 외워두었지요.”
그해 11월 초에는 남미 우루과이에서 열린 세계최고감사기구(INTOSAI) 총회에 참석했다. 회의 장소인 몬테비데오의 큰 호텔 사장이 마침 한인동포여서 반가웠고 그의 동포애로 라면 대접도 받았다. 그 총회에서 한국은 차기 총회 개최국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총회 유치를 위한 작업이 전부터 진행되어 온 터여서, 나는 마무리 투수 노릇만 실수 없이 하면 되었다. 총회와 이사회 석상에서 발표할 연설문을 여러 번 읽고 나서 우리 일행들 앞에서 오디션을 하고 발음과 억양을 익히는 등 사전 예습에도 최선을 다했다. 나흘 동안 각국 대표들과의 오찬, 만찬, 개별 면담, 각종 회의 참가 등으로 몸은 지쳤지만, 큰 보람을 경험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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