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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우여곡절 정년 연장, 박수칠 때 떠나다 / 한승헌

등록 2009-04-19 18:20수정 2009-04-20 18:20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첫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필자가 1년 반 동안의 ‘영광스러운 고역’을 마치고 이듬해 9월 28일 정년을 맞아 퇴임하던 날,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감사원을 떠나고 있다.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첫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필자가 1년 반 동안의 ‘영광스러운 고역’을 마치고 이듬해 9월 28일 정년을 맞아 퇴임하던 날,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감사원을 떠나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4
나는 퇴임할 날이 정해진 가운데 감사원장에 취임했다. 그날은 임기(4년)가 끝나는 날이 아니라 정년(65살)이 되는 날이었다. 다시 말해서 재임 기간이 4년 아닌 1년7개월(나는 ‘고봉으로 1년 반’이라고 했다)로 예정되어 있었다. 취임 초부터 기자들은 임기의 절반도 못 채우는 아쉬움에 대해서 묻곤 했다. “1년 반 동안에 할 수 없는 일은 4년을 주어도 어렵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느라 기진맥진해서 골인하는 것보다는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 나서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골인하는 것도 아름답지 않겠느냐?”라고 나는 대답했다.

다행히 감사원 직원들의 의식 수준과 공직자로서의 자세, 그리고 업무 능력 등은 나의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았다. 덕분에 조직의 운영과 업무활동은 대부분 내 의지대로 되어갔다. 물론 이루지 못한 일도 있었다. 감사업무 수행에 필요한 계좌추적권과 공직자 등록재산 실사권 확보가 여의치 못했다. 공직자의 부정·비리를 척결하자면 금융계좌 추적이 필수적인데, 그런 최소한의 감사수단도 미비했으니, 그것은 마치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나방을 잡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 공무원 재산등록의 내용을 고위직 일부의 것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그 정확성 여부도 따져보지 않은 채 쌓아두기만 하는데, 그래서는 공직자 재산등록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 등록문서의 실사를 감사원이 맡는 방안을 비쳐 보았다. 여기에 대한 역풍은 뜻밖에도 거셌다. 정부의 다른 부처에서도 반대의견이 나왔다. 내 생각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다수가 반대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발 물러서는 것도 민주주의의 정도라는 생각에서 아쉬움을 접었다.

어렵게 성취한 일도 있었다. 감사원장의 정년을 65살에서 70살로 연장한 감사원법 개정을 들 수 있겠다. 감사원장의 정년 연장은 감사원의 숙원이었다. 그런데 국가 3부 안에서 반대가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임기 중에 정년이 걸리는 원장은 자기 ‘수명’ 연장책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그냥 덮어두고, 정년과 무관한 원장은 개인으로서나 원으로서나 당장 절실한 문제가 아니어서 그냥 넘겨 왔다는 것이었다.

그런 보고를 들은 나는 오래전에 성안이 되어 있던 그 법 개정안을 직접 검토해 보았다. 감사기관의 수장다운 식견, 경험, 경륜 등을 생각한다면 그 정년을 70살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 타당성이 있었다. 나는 정년 연장이 되더라도 종전 규정대로 65살에 퇴임하겠다는 점을 신문·방송 등에서 미리 공언해 놓고 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미루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밀고 나가서 결말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정년 연장이 마치 감사원의 위상을 높이기라도 하는 것으로 알고 견제와 반대가 만만찮았다. 심지어 대법원에서도 감사원장의 정년을 어찌 대법원장과 같이 할 수가 있느냐는 견해가 비공식으로 흘러나왔다. 이런저런 장애(?)를 극복하고 감사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나는 그 개정안에, 이 법 개정 당시의 감사원장에게는 70살 정년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부칙에 못 박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대통령의 말씀도 있었지만, 그것이 정년 연장의 순수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국회 법사위에서는 한나라당 쪽의 반대에 부닥쳤다.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 원장의 정년에 관한 부칙을 빼자는 것이었다. 당 총재의 지침이라면서 한나라당 법사위 간사가 나보고 양보(?)하라는 설득을 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감사원장 정년 연장 문제는 내 뜻대로 법이 개정되었고, 나는 스스로 만든 부칙에 따라 감사원을 떠났다.

나의 감사원 마지막 날인 1999년 9월 28일, 비서실에서 짜 준 일정표대로, 오전에 국립묘지 참배, 감사위원회 회의 주재, 외부 인사 접견 등을 마치고, 오후엔 원내 부서별 기념촬영을 하고 나서, 이임식에 참석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이임사를 읽던 나는 눈물을 훔치느라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나로선 매우 당황스러웠던 그 해프닝이 언론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어 나는 더욱 민망해졌다. 감사원 마당에 줄지어서 나를 전송해 주던 감사원 가족들의 따뜻한 정과 눈길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퇴임 후 어느 모임에서 전 국무총리 강영훈 선생을 뵈었는데, ‘좀 더 하지, 왜 나왔느냐’는 덕담을 하셨다. 나는 ‘대과 없이’ 마친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고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과 없이 마치기가 대공을 세우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과연 공직사회 선배다운 말씀이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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