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4일 필자가 평양 만수대 창작사에서 전주고 선배인 북한의 인민예술가 효원 정창모(왼쪽) 화백을 만나 그가 즉석에서 그린 화조 그림을 선물로 받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월북한 정 화백은 조선화의 대가로 북한은 물론 중국과 남한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6
내가 북한 땅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은 평양이 아닌 동해안 장전항이었다. 1999년 10월 25일 새벽, 밤새 동해 바다를 북상한 금강호의 뱃전 저편에 육지의 한 자락이 어슴프레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가 바로 ‘반국가단체의 지배지역’인 북한 땅인가. 배가 멈추고 마침내 첫발이 땅에 닿기 직전, 나도 모르게 감격의 제1성이 튀어나왔다. “아! 마침내 내가 북한 땅을 밟는도다.”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옆에 있던 현대상선의 ㄱ상무가 황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 밟는 것은 북한 땅이 아니라 현대가 깔아놓은 매트입니다.”(일행 폭소) 사실이 그렇더라도 모처럼의 영탄(詠嘆)을 그렇게 김빠지게 하다니….
한국언론재단 언론인 일행과 함께 한 금강산 방문은 좋은 계절, 좋은 날씨 속에서 감탄과 즐거움으로 시종했다. 금강산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했다.
첫 평양 방문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목사)의 초청으로 2000년 10월 24일에 이뤄졌다. 우리 동북아평화연구소 방북단은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국장으로 이미 북한을 20여 차례나 방문했던 박경서 박사가 이끌었다. 베이징공항에서 뜬 고려항공 여객기에서 내려다보는 북의 산하가 눈물겹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순안비행장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육로에는 줄곧 비가 내렸다. 미리 정해진 대로, 보통강호텔 투숙, 그리스도교련맹 방문, 봉수교회 방문, 만찬, 묘향산 관광, 국제친선전람관 참관, 룡문대굴 관광, 만경대 ‘고향집’ 방문, 학생소년궁전 참관, 여기에 일정에 없던 군중 매스게임 ‘아리랑’ 관람이 추가되었다. 남과 북이 서로 같지 않은 것 같으면서 같고, 같은 듯하면서도 같지 않은 점을 여러 가지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묘향산에서 만난 북한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은 것이 다른 공식 행사보다 더 흐뭇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평양행은 2003년 3월 21일이었다. 당시 내가 회장으로 있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북한돕기 협의를 위한 방북이었다. 인천공하에서 직항편으로 날아서 한 시간도 되기 전에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초청자인 민화협 쪽에서 허혁필 부위원장이 마중 나왔다. 그쪽에선 남한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기색이었다. 남에서 도와주는 제약시설을 가보고 나서 평양 제2인민병원과 평양육아원을 찾아갔다. 그 병원의 원장은 연구실과 병실을 샅샅이 보여주면서, 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렵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도움을 받고자 하는 심정도 감추지 않았다. 우리 공동모금회의 대북 지원문제는 뜻밖에도 성사에 이르지 못했다. 유산이 된 이유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시간을 갖고 추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북단을 실질적으로 이끈 ‘굿네이버스’의 이일하 회장(목사)과 이윤상 사무총장의 인도적인 대북 지원 경험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2005년 8월 22일에는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에스비에스>(SBS)의 방북단에 끼어 다시 평양을 찾아갔다. 조용필 평양공연을 성사시킨 방송사로서는 겸사겸사였다. 인천~순안 직항 전세기가 50분 만에 활주로에 착륙을 하고보니, 남북분단이 별 거 아니라는 성급한 생각까지 들었다.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 공연도 좋았고,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 방문도 의외였다. 그러나 나로서는 고교 동문인 인민화가 정창모 선배를 만수대 창작사 화실에서 만났던 것이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그는 즉석에서 화조 그림 한 폭을 그려서는 내게 선물로 주셨다. 전혀 예정에 없었던 이 장면은 일행들의 박수와 함께 카메라에 담겨서 서울에 돌아온 뒤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2006년 4월 26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직원들과 함께 가 본 개성공단에서는 남과 북의 ‘미니 통일’ 또는 실험적 동거의 신선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2007년 5월 28일 내금강 시범관광에 초청받아, 첫날 첫 버스로 남한 사람 미답의 내금강을 관광하게 되어 기념이 될만했다. 그 전날 밤의 축하연에는 남한의 통일부 고문들과 북한의 아태평화위 이종혁 부위원장 등 요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남북관계가 어이없이 악화되어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단계에 빠져들었으니, 참으로 착잡하고 걱정스럽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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