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의 위원장을 맡은 필자(왼쪽 네번째)가 서울 중구 수송타워 들머리의 사개추위 돌간판 앞에서 법원·검찰·재야법조·학계·행자부에서 파견된 기획추진단과 함께했다. 이들은 이듬해 연말까지 사법개혁 작업을 수행하는 데 중추적인 소임을 다하고 원대복귀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7
2004년 3월 중순, 안병영 당시 교육부총리한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한국외국어대학교재단(학교법인 동원육영회) 이사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교육 또는 교육행정 분야에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답’이 뻔했다. 그러자 안 부총리는, 외대가 내분으로 소송에 휘말리다가 대학구성원·교육부·구재단 사이에 어렵사리 조정이 성립되어 그동안의 임시이사 체제를 벗어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사장 선출을 놓고 대학 구성원 사이에 다시 이견이 생겼고, 나를 영입하는 안에는 모두 찬성이어서, 교육부로서도 동감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끝내 사양한다면 학교법인의 정상화가 늦어져서 실기를 하게 된다는 말도 했다. 나에게 묘한 압박감을 주고 퇴로를 차단하는 그분의 설득에 넘어간 나는 두 번째 면담에서 수락을 하고 말았다.
취임식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알고 보면 저도 ‘외대’ 출신입니다. 외부대학 출신.” 학교 구성원들과 일체감, 친근감을 갖고 일해 보고자 그런 말을 했다. 새 이사진은 구성원·교육부·구재단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공영재단의 체모에 합당한 진용이었다. 그러나 1998년부터 관선이사가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문제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신력 있는 회계법인에다 법인과 학교의 업무 진단을 의뢰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 결과가 나와 이를 토대로 개혁을 시작하려는 참에 외대를 떠나게 되었다. 아홉 달 만의 ‘조퇴’였다.
2004년 12월, 청와대에 들어가 일하는 법조계 후배 한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 신설되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청와대 쪽의 요청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나보다 더 적임인 분을 추천했고, 그의 내락까지 내가 받아 오면 상부에 다시 건의하기로 했다. 나는 그 변호사를 찾아가 점심까지 사면서 간곡히 권고를 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결국 나는 설득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개추위 위원장이란 짐을 지게 되었다.
사개추위의 최종 의결기구인 본회의는 장관급 및 그에 상응한 민간 각계 인사로 구성되고, 국무총리와 민간 쪽 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정부 쪽에서는 총리를 비롯해 교육·법무·국방·행정자치·노동·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사법부에서는 법원행정처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나왔고, 민간 쪽에서는 공동위원장인 나와 김금수(노사정위원장)·박재승(대한변호사협회 회장)·송상현(서울대 교수)·장명수(한국일보사 이사)·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박삼구(금호아시아나 회장)·채이식(고려대 교수)·김효신(경북대 교수)씨 등이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본회의에서 다룰 안건을 사전 심의하기 위해서 차관급 및 그에 상응하는 민간 각계 인사로 구성되는 실무위원회(위원장 국무조정실장)가 있고, 법원·검찰·변호사회·학계에서 온 전문가와 행정 지원팀으로 구성되는 기획추진단이 있었다.
사법개혁은 이미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으나, 논의만 되었을 뿐, 이렇다 할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뀌곤 했다. 그러던 것을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대법원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2년 동안 연구 논의한 성과를 사개추위가 이어받아 2005년 정초부터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역전경주 최종 구간의 주자인 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처럼 대대적인 사법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8·15 해방 뒤에도 일본 법을 모방한 법이 많았고, 6·25 전란으로 법체계의 정비가 부진했으며, 장기간의 군사독재하에서 악법이 양산되고 법체계가 문란해졌는가 하면, 국민의 민주적 욕구 수준과 인권의식이 향상되었고, 나아가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선진 사법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 등을 들 수가 있겠다. 또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의 실현도 당연히 개혁의 지향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당면한 사법개혁을 제도의 단순한 수리가 아닌 리모델링, 재건축 내지 신축에 비유했다. 법조인으로서는 이런 역사적인 개혁작업에 정열을 쏟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기에 개혁안의 성안·심의·의결 전반에 이르기까지 내 역량을 다 기울였다. 한번은 어느 티브이방송에서 진행자와 이런 말이 오간 일도 있었다. “사개추위 위원장은 상근인가요?” “규정상으론 비상근인데, 상근을 하게 되어, 규정을 어긴 셈입니다.” “사법개혁을 책임지는 위원장께서 규정을 어기면 됩니까?”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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