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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사법개혁 ‘아슬아슬’ 마무리 / 한승헌

등록 2009-04-26 18:40수정 2009-04-26 23:41

2006년 연말까지 활동 시한을 앞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그해 11월 20일, 정부중앙청사 회의실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계류중인 사법개혁 법안의 조속 처리를 촉구했다. 국무총리와 공동위원장인 필자(가운데)가 사개추위의 결의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06년 연말까지 활동 시한을 앞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그해 11월 20일, 정부중앙청사 회의실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계류중인 사법개혁 법안의 조속 처리를 촉구했다. 국무총리와 공동위원장인 필자(가운데)가 사개추위의 결의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79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밑(기획추진단)에서 올라오는 안건을 거의 요식행위로 처리하는 그런 기구가 아니었다. 사법개혁의 산실답게 무제한의 논의·토론이 거듭되었고, 첨예화된 의견 대립으로 밤늦도록 회의를 한 적도 있었다. 회의 진행과 흐름을 잡아나가야 하는 나는 허약한 체질에 피곤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위원회가 의결한 25개의 개정(또는 제정) 대상 법률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2005년 5월부터 2006년 7월 사이에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문제는 국회로 넘어간 다음부터였다. 여야간의 어수선한 정쟁에 휘둘려 개혁법안의 심의가 외면당하거나 지지부진했다. 사개추위의 활동 시한인 2006년 연말이 가까워 오는데도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은 8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상임위원회에 걸려 있거나 아예 상정도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법개혁의 핵심 법안은 눈흘김의 대상이었다.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과 연계시키며 ‘태업’을 계속했고, 사개추위 안을 뒤집으려는 ‘공작’도 난무했는가 하면, 직역과 지역 사정에 얽매이는 의원들의 고충도 여기에 작용했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야당의 본능적 거부감도 ‘개혁 저지’의 심리적 요인으로 꼽혔다.

2006년 11월 20일, 연말 해산을 앞둔 사개추위의 마지막 회의가 수송동의 위원회 회의실 아닌 정부중앙청사 9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가 끝난 뒤 10층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개추위 위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공동위원장인 한명숙 국무총리가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이어서 내가 위원회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그 뒤에도 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드나들었다. 언론에서, 야당이 사법개혁의 발목을 잡는다기에, 나는 그들을 찾아가 손목을 잡았다. 각 당 지도부를 방문하고 핵심 법안 통과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개인적으로 다 아는 분들이어서 우호적인 분위기였지만, 한나라당 쪽이 하는 말의 진정성은 함량이 낮아 보였다.

국회 의장단도 찾아갔고, 로스쿨 법안을 다루는 교육위원회 위원장 방에도 들렀다. 먼저, 김원기 의장을 만나 좋은 반응을 얻게 되어 ‘원기’가 났다. 부의장 두 분도 만나서 부탁을 드리고 교육위원장 방으로 향했다. 한나라당 소속이긴 하지만, 같은 법조인으로서 잘 아는 사이니까 말이 잘 통하겠지 싶었다. 그러다 문득 ‘황우려’라는 그분 이름이 떠올라 우려되는 바가 있었다. 한데, 그의 테이블 명패를 보니 ‘황우려’가 아닌 ‘황우여’였다. 그래서 우려는 없어졌는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혹시 ‘우여’곡절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과연 우여곡절은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위 소위에서 로스쿨법을 위원회 전체 회의에 넘겨 통과시키기로 여야간에 합의를 해놓고도, 하룻밤 사이에 한나라당이 표변해 버렸다. 일이 풀린다고 본 내 예측이 무참히 망가졌다. 그런 판국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나는 말했다. “이제 예측 가능성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앞으론 예측 불가능성에 기대를 걸겠다.” 언제, 상황이나 계산이 달라지면, 거짓말처럼 허망하게(?) 법안이 통과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해가 바뀐 2007년 4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대선 정국이 다가오는 시점이어서 나머지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투자와 준비를 해놓고 2008년 3월 개학을 고대하는 여러 대학과 학생·수험생들의 낭패와 손실은 막심해진다. 그런데 7월 3일 갑자기 ‘여야 로스쿨법 처리 합의’라는 긴급뉴스가 떴다. 하지만 밤 11시 반이 지나도록 종무소식이었다. 스포츠채널의 윔블던 테니스 생중계를 보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자상파 방송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었더니, 마침내 ‘로스쿨법 통과’란 긴급뉴스가 나왔다. 국회 회기가 끝나는 자정 3분 전의 ‘아슬아슬’이었다. 다른 미결 법안이 많이 남아서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핵심 법률 3개가 입법으로 완결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로스쿨법은 인가 학교 수와 입학 정원 문제로 논란이 많았지만, 법 시행 과정에서 큰 변고가 없이 진척이 되어 올 3월에 문을 열었다. 물론 문제점이 남아 있으나, 현행 사법시험 제도의 폐단을 극복하고 새로운 법조인 양성기관으로 발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참여재판도 아직은 생소하지만 ‘국민에 의한 사법’으로 발돋움하는 민주적 사법시스템으로 정착되기를 염원한다. 역사적인 사법개혁에 일조를 한 것은 나로서 큰 보람이었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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